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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ear you: 재즈는 어떻게 말을 거는가

루꼴라와 케첩 사이, 들리지 않는 음악에 대하여

by 백현선

종종 재즈 음반이나 가수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듣기 편한 걸로요”라는 단서가 붙는다. 문제는 이 ‘듣기 편하다’는 기준이 사람마다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어떤 이는 부드럽고 느린 템포를 원하고, 어떤 이는 멜로디가 분명하길 바라며, 어떤 이는 그냥 낯선 음악이 귀에 거슬리지 않기만을 원한다. 그렇게 제시되는 ‘편안함’이라는 말은 막연하고, 때로는 모순적이다.


많은 이들이 재즈를 주변 소음을 덮기 위한 배경음악으로 찾는다. 자신과 주변을 거스르지 않는 소리. 흘러가되 눈에 띄지 않는 음악. 하지만 그런 용도로 소비되는 재즈는, 이 음악이 지닌 핵심적 속성과는 오히려 대척점에 있다.


대학원 시절, 교수님들이 자주 하시던 말이 있다. “너의 음악이 루꼴라의 배경음이 되게 하지 마라.”

재즈 연주가 흐르고 있는데, 청중은 루꼴라, 케첩, 와인을 찾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면, 그건 음악이 존재하지만 들리지 않는 상태라는 뜻이다. 음악은 단지 배경이 아닌, 순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경고였다.


재즈 씬에서는 즉흥연주를 두고 Statement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말 그대로 자신의 말을 한다는 뜻이다. 연주자는 악기로 질문하고, 응답하며, 반박하고, 제안한다. 관객들 역시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그 이야기의 청자가 된다. 그래서 재즈 클럽에서는 연주 도중 누군가가 “Yeah”라고 외치거나, “That’s it”이라 중얼대는 장면이 흔하다. 그건 단순한 감탄이 아니라 대화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내가 무대에서 들었던 말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도 그중 하나였다. “I hear you.” 그건 “네가 지금 말하는 걸 이해하고 있어. 공감해. 나도 여기에 있어.”라는 뜻이다. 즉흥연주는 그 순간, 연주자와 청중이 서로를 확인하는 살아 있는 말이 된다.


재즈는 배경이 아니다. 재즈는 말이다. 침묵 속에서 생겨나고, 리듬 속에서 이어지며, 끝없이 바뀌는 상호작용으로 완성된다.


들리지 않는 음악이 아니라, 말을 거는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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