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 대신 접근으로 살아가는 방식
요즘엔 모든 게 구독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익숙한 클라우드 스토리지 서비스부터 음악·영상 스트리밍, 내가 쓰는 음악 사보 프로그램, 가구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휴대폰, 자동차, 집 또한 구독 서비스가 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처음엔 구독이 마치 긴 할부와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소유권을 전혀 얻을 수 없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우리는 돈을 내고 있지만, 무엇을 갖고 있는지는 애매하다. 정확히 말하면 접근 권한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얼마 전 공연을 앞두고 편곡을 몇 마디 수정해야 했다. 늘 쓰던 사보 프로그램에서 인증이 만료되었다는 오류가 발생했다. 계정은 정상인데 프로그램은 나를 사용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몇 년째 이 프로그램을 쓰고 있고, 매달 결제를 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필요한 순간에 나는 그 악보에 접근할 수 없었다. 내가 만든 악보였지만, 나는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일정 기간 허가를 받았을 뿐이었다.
구독은 편리하다. 자동 결제, 자동 업데이트, 자동 백업. 파일을 잃어버릴 걱정도 줄어든다. 하지만 그 편리함은 늘 전제 위에 놓여 있다. 접속이 가능할 것, 서버가 유지될 것, 회사가 계속 존재할 것.
기업의 독과점에서 발생할 수 있는 권력을 견제할 수단은 점점 사라진다. 자본 만능주의인 현대 사회에서 이는 더 심해진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권력이 더 이상 노골적인 억압의 형태로만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강요받지 않아도 스스로를 관리하고,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는다. 그는 이를 통치성이라고 설명했다.
구독 서비스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누구도 강제로 결제하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 가입하고 자동 결제를 설정한다. 그리고 해지하지 못하는 이유를 스스로 만든다. 이미 자료가 다 여기 있고, 이 기능이 필요하니까. 우리는 통제된다고 느끼기보다, 합리적으로 주체로서 행동한다고 느낀다.
나만 해도 구독하고 있는 서비스가 여러 가지다. 하나둘 모이니 제법 큰 액수가 되었고, 수많은 자료들이 온라인에 얽혀 있다 보니 무엇 하나 쉽게 해지하기가 어렵다. 하드카피로 백업을 해두긴 했지만, 모두 다 같이 행동하지 않는 한 이 온라인이라는 거미줄에서 벗어나기란 요원해 보인다.
그리고 나는 재즈를 하는 사람이다. 즉, 저장되지 않는 시간을 좇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들은 점점 더 플랫폼 안에 묶여 있다. 내가 만든 악보는 서버에, 음악은 스트리밍 플랫폼 안에서 재생된다. 관객과의 연결 또한 알고리즘을 통과해 도달한다.
모든 걸 알고리듬화시키는 요즘 세상에서, 나 자신보다 내 핸드폰이 보여주는 것이 더 나에 가깝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내 소비 패턴을 이용해 뜨는 광고와 글, 영상 추천. 이게 정말 나라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선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이미 선택된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는 건 아닐지 자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