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5)

이른 아침에...

by 정현

아빠.

이제 한국 온 지 18일째 날.

오랜만에 새벽 수련을 했어요. 동트기 전 일어나 아랫방 창을 열고 문도 활짝 열고 앉으니 길 가던 고양이가 문지방 위에 앉아 날 쳐다보네.

엄마집에서 쓸 요가 매트를 사두길 잘했지. 계속 뻐근했던 허리와 어깨를 시원하게 풀고 여섯 시 반쯤 산책을 했어요.


온갖 풀벌레 소리, 새소리가 들리는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내린 논길을 걷다가, 늘 내 머릿속을 맴도는 벼농사 생각에 빠졌어요. 나는 늘 흔히 말하는 시대에 뒤처지는 생각들을 하곤 해요. 편하게 지낼 수도 있지만 몸을 움직여 노동을 하고 공부하고 나누는 삶이 좋아요. 그런 면에서 벼농사는 내게 오랜 꿈과 같은 일... 기회가 닿으면 좋겠어요.

작고 소중한 개구리, 그리고 벼.


산책길에 벼에 붙은 개구리를 유심히 봤어요. 미동도 없는 작은 개구리가 귀엽고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햇살에 비친 거미줄은 아주 예술 작품이에요. 이른 아침 산책에서만 볼 수 있는 이슬 맺힌 거미줄과 벼 끝의 영롱한 물방울.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이렇게 충만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니. 자연이 주는 여름 선물이에요.


산책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장 아줌마 집을 지났어요. 이장 아줌마는 늘 내게 잔소리를 해요. 어제는 지나는 나를 세워놓고 “너 잠은 아랫방에 자냐? 엄마가 혼자 적응하려면 엄마 옆에 자면 안 된다.”하면서 걱정 어린 잔소리를 하더라고요.

이장 아줌마는 나이 40대에 남편을 잃은 후 더 대장부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오랜 시간 혼자 지낸 노하우들을 하나씩 들려주네요.


팀 켈러의 책을 읽고 있어요.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라는 빅퀘스천을 던지는 책이에요.

아빠의 죽음으로 내게 수많은 질문들이 떠올라요.

나는 내 앞에 놓인 일과 사람을 더 사랑하며 살 거예요.

또 편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