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해 줄 수 없는 일
두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청소기를 돌리는 중이었던 나는 반갑게 친구들을 맞았다.
한 친구가 나에게 “엥? 지금 손수 청소기를 돌리고 있는 거야? 이 넓은 거실을?.”하고 말했다. ‘응? 무슨 소리지?’ 잠시 갸우뚱하다가
“응, 청소기가 하잖아.”하고 내가 말하자 친구는 “로봇 청소기가 다 해주는데 누가 요즘 청소기를 밀고 다니냐?”하는 것이다.
순간 멍해졌다. 나는 통돌이 유선 청소기를 벗어나 무선 청소기를 산지도 몇 년 안 되었는데 이건 무슨 문화충격인가.
값도 값이지만 이제 정말 청소마저 로봇이 하는 시대가 되었구나 싶었다. 물론 로봇 청소기를 알고는 있지만, 최근 들어 구석구석 청소하는 재미를 느끼고 있는 내게 친구의 말은 그다지 매력적인 말로 들리지는 않았다.
얼마 전 한 친구의 집에 놀러 가서도 잠시 원시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친구 몇몇이 모여 점심을 먹었다. 친구가 만든 음식들을 맛있게 먹고 설거지는 내가 하겠노라고 싱크대 앞에 섰다.
나를 보던 친구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야, 야 그만해. 하지 마.” 설거지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니야, 밥도 얻어먹었고 소화도 시킬 겸 내가 할게.”하며 싱크대 앞에서 그릇을 쥐었는데, “야, 설거지는 식세기(식기세척기)가 하는 거야. 뭐 하러 싱크대에 서있냐. 이리 와 앉아.”하고 말하는 것이다.
“응? 그래?”하며 멋쩍었던 나는 돌아와 식탁에 앉았다.
잠시 또 멍하니 코끝만 바라보다. ‘아, 설거지도 식기세척기가 하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식기세척기를 알고는 있었지만 내게는 그렇게 필요하지 않은 도구라 생각했는데…
얼마 전 쓴 글에서도 설거지 자리는 ‘명상자리’라고 여기고 지낸다고 했었다.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원시인이라도 된 듯 현실감각이라고는 없는 사람이 바로 나인가 싶었다.
AI가 글도 써주고 음악도 만들어주고, 일도 해준다. 요즈음은 말이다.
모두들 앞으로 더 그러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잠시 ‘AI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로봇이, 기계가 일처리는 빠르고 정확하겠지만 그 외에 감정교류, 눈빛 교환, 우리가 공명이라 일컫는 마음을 주고받는 행위들까지 대신할 수 있을까?
아니, 대신한다고 해도 그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까?
덜컥 겁이 난다. 그런 시대가 찾아와 사람들이 친구보다 로봇을 더 찾을까 봐. 돈으로 뭐든 다 할 수 있는 시대에 내 감정까지 로봇에게 돈 주고 맡기게 될까 봐.
온, 오프라인에서 요가 수련 안내를 하고 있다.
한국 시간 새벽 5시 반, 나는 자야 할 시간임에도 굳이 사람들과 ‘몸 깨우기’라는 이름으로 요가 수련을 한다.
최근 들어서는 일주일에 두 번 여기 아부다비 친구들과도 요가를 시작했다.
오전에 1시간 수련을 한다. 서로 건강을 지켜내자며 시작한 이 수련은 사실 몸너머의 마음을 이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정성껏 요가 안내를 한다. 그리고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다. 요가 수련시간은 한 시간인데 차담시간은 두 시간이 훌쩍 넘을 때가 많다.
아줌마들의 사소한 수다라도 좋고, 하소연, 일상의 푸념이라도 좋다. 그렇게 시작된 마음 나누기 시간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몸, 마음이 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이 좋은 기운들이 잘 흘러갈 수만 있다면 그 과정이야 조금 가벼워도 좋다고 생각했다.
진심이 통하기라도 한 걸까? 친구들은 요가 수련도 편안해했고, 차담시간에도 자신들의 삶 속 고민들을 나누어 주었다.
새삼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일은 이런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향기로운 차를 함께 마시고, 마음을 듬뿍 나누는 일. 다음 요가 수련시간이 기다려지는 마음을 갖게 되는 일.
‘로봇 청소기도, 식기 세척기도, 모두 주부들을 힘껏 돕는 일꾼들이라지만 이 일만큼은 못할걸!’하는 생각이 들자 왠지 가슴이 뜨끈해져 오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 알아주고 서로를 공감하는 것.
기계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그 일은 심장을 가진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또 다음시간 요가 매트에서 마주할 친구들이 기다려진다.
가슴을 활짝 열어 자연의 기운을 들이마시고, 서로에게 따뜻한 콧김을 내쉬자.
생명이 있는 존재들에게만 있는 ‘온기’를 맘껏 나누자!
(사실 이 글을 써야지 생각한 것도 오늘 저녁 설거지 자리, 싱크대 앞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