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 Apr 30. 2024

아부다비에서 온 편지(14)

‘루브르 아부다비’에서 본 영화


에미레티 영화

Sharp Tools, <날카로운 도구, 새로운 스레드>

2017, 누 줌 알가넴 (b. Dubai 1962)

나하르 프로덕션


경주에 살 적에도 국립경주박물관을 내 집 드나들듯이 했던 나..

여기 아부다비에 와서 '루브르 아부다비'의 연간회원이 되었다. 머리가 복잡할 때에나 쉬고 싶을 때는 박물관을 찾는 편이다.  일단 루트 대로 걸으면 되어서 그저 걷다 보면 가벼워지는 느낌이 좋고, 또 눈도 즐거우니.. 내게 이만한 휴식은 없다 싶을 때가 많다.


얼마 전 루브르 아부다비 한편 자그마한 공간에서 작은 스크린에 비친 영화를 무심코 지나친 적이 있다.

그러다 다시 루브르에 간 날, 그 자리에 잠시 앉았다.

영화 제목도 내용도 모른 채. 그냥 앉아 있었다. 관객은 나뿐이었던 날.

장면 장면이 무언가를 자꾸 떠올리게 했다. 예술, 삶, 죽음에 대해, 그리고 존재에 대해..

영화를 다 보지 못했지만 그날의 여운이 남아있던 차였다. 하지만 시간이 꽤 지나 그 영화는 잊히려고 할 때쯤 다시 찾은 박물관에서 아직도 그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왠지 반가운 마음. 자리에 진득하게 앉아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랍에미리트 원주민을 에미레티라고 한다.  에미레티 영화이고 주인공은 이 나라 예술가 하샨 샤리프.

제작자는 이곳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에미레티 영화 제작자이자 시인인 누 줌 알 가넴, 그가 만든 예술 다큐 영화이다.

이 영화를 통해 UAE의 가장 중요한 예술가이자 걸프 지역 개념예술의 아버지인 하샨 샤리프의 삶과 작품을 되돌아본다. 누줌의 시적인 구절이 구사되어 있는 감동적인 초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샤리프의 예술에 관한 통찰력들을 살펴볼 수 있는 영화이다.

그는 예술과 삶을 구별할 수 없었던 인물이었다. 샤리프의 지속적인 몸짓은 새로운 예술 개념을 보여준다.


영화의 제목은 <Sharp Tools>이다.

영화 속에서 자주 시적 표현들이 나오곤 한다. 한 예술가의 삶의 여정을 돌아보며 삶과 죽음, 사랑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들을 이어간다.

영화 속 장면 중 몇 장면을 떠올려보자면, 주인공의 젊은 시절 그러니까 예술가의 길로 들어서던 그 시절이 흑백 처리된 사진으로 보이며 그는 이야기한다.




<사막>

나는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모래 언덕 뒤로 사라질 때까지 걸었다. 예술의 여정 또한 걷고 걷는 여정이다. 우리는 그 길에 흔적을 남긴다.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시>

나는 시를 읽지 않지만 시인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시인이다.

나는 시를 읽지는 않지만, 시인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걸 듣는다.

시의 정수, 시는 영감이다.


<친구>

친구는 나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들은 내 곁에 많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사랑은 매우 크다.

그들은 사랑으로 가득 차있다.  내 곁에는 거의 없는 친구들, 죽음은 육신의 죽음이다. 그들은 중요한 것들을 남겼다. 그들은 사라졌지만 그것은 정상적인 일이다.



우리가 예술이라고 칭하는 많은 것들.

그렇지만 팍팍한 현실의 삶에 녹아든 예술을 발견하지 못할 때가 더 많지는 않았나 생각 해본다.

매일하는 집안 일과 매일 만나는 사람들의 관계, 매끼니를 챙기는 일, 잠을 자는 일도... 생각 해보면 이 모든 일들이 일상이라고만 말 할수는 없을 것이다. 예술적으로 사는 삶, 매 순간 마음을 다해 정성들여 살아내는 삶, 그리도 내 곁의 친구들을 사랑하는 일. 죽음에 대해 늘 열린 마음으로 한걸음씩 걸어가는 것 또한 영화의 주인공 모습처럼 삶의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아부다비에서 온 편지(1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