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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Aug 31. 2023

아부다비에서 온 편지(2)

'뜨거운' 위로

8월 30일. 어제 아부다비 아침 기온 31도..

요 며칠 아침기온 35도를 유지하다 어제 아침에 갑자기 31도가 되었다. 사실 너무 뜨거운 나라다 보니 기온을 확인하지 않고 그저 피부로 와닿는 느낌으로 오늘은 많이 뜨겁다. 덜 뜨겁다. 고 했는데..

어제는 아이들 아침 등굣길에 큰아이가 먼저 "어? 이상하다?"라고 했다. "뭐가?" 그랬더니, "엄마, 숨이 쉬어져."라고 하는 게 아닌가. 하하하..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우와, 습기도 없고, 기온이 내려갔나 봐" 하고 대답했다.

숨이 쉬어진단다. 다들 아부다비가 얼마나 덥냐고들 물어오는데... “숨이 안 쉬어질 정도야. “하고 이야기하곤 했었다. 이제 숨을 좀 쉴 수 있을까?  

이곳의 가장 더운 때임을 알려주는 안개는 어느샌가 사라지고, 또 습기가 사라지고 그렇게 선선한 기운으로 가는 8월 말. 아니, 그래도 아직 이르다. 여긴 뜨거워도 너무 뜨거운 나라. 적도와 가까운 곳. UAE!

아부다비에서는 나무와 꽃과 새를 보기가 힘들다.  차 타고 지나가다가 예쁜 나무나 꽃을 발견할 때가 있는데 운전 중이라 내리지 못해 아쉬울 때가 종종 있다. 그때마다 자전거가 타고 싶어 진다. 가장 뜨거운 시기에 아부다비에 와서 엄두도 못 내던 자전거를 이제 슬슬 꺼내볼까 싶다.


아부다비의 선라이즈. 새벽 5시 40분쯤 해가 뜬다. 선셋 같아 보이는 선라이즈다. 황홀한 순간, 새벽 5시 40분.


아이들과 나는 모험 중이다.  언어, 문화, 종교의 장벽을 넘어서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기 아부다비는 아랍어를 쓰기도 하지만 주로 영어를 쓴다

다들 한국에서 아이들 영어교육을 열심히 시키고 온다고 하던데.. 나는... 그냥 왔다.

무슨 배짱이지? 하면서도 부딪혀보자. 싶어서 그냥 왔다.

'준비 없이 그냥 온건 무모한 선택이었어.' 하며 후회하던  며칠이 지났다. 나는 그렇다 치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얼마나 답답할까? 등교 첫날, 둘째 날, 은유는 펑펑 울며 들어갔다.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은유야, 오늘 즐거운 일만 생길 거야." 하고는 뒤돌아서 학교를 빠져나왔다.

큰애는 특유의 느림과 차분함(답답하리만큼 차분하다)으로 일관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괜찮은 거겠지? 그렇다고 내가 불안하다거나 한건 아니지만, 우는 둘째를 등지고 나오는 엄마의 마음은... 으앙.. 힘들다~

첫날과 둘째 날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놓는 아이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친구들, 피부색도 다르고 먹는 음식(도시락), 키도 다르고 생활습관도 다르겠지.

첫째 날 하굣길에 큰아이는 "말은 안 통하지만 뭐, 나름 재미있어." 하고 이야기했다.

작은 아이는 학교에 다시는 안 간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아이코, 귀여워라~

둘째 날 "가기 싫어, 가기 싫다고."를 외치며 학교 문 앞에서 울던 은유. 하교 후 나오는 발걸음은 가볍고 또 미소 띤 얼굴을 하고 있었다.

셋째 날은 교문 앞에서 "내가 오늘은 안 울고 들어가 준다." 하고 말한다.  허허..고오맙다..푸하하하...

큰애는 시종일관 "괜찮아, 나름 재미있어."  "오늘은 남아프리카 친구를 사귀었어." 하며 나름 적응해 가는듯하다.

나에게 "엄마! 난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는 영어로 뭐야? “ 또 ”너는 속눈썹이 참 예쁘구나."는 영어로 뭐지? 하고 폭풍 질문을 하는 은서.  오! 좋았어. 바로 그거다. 순간 내 머리에 전등이 켜진다. 그래 바로 그거지. 배움은 갈증에서부터 시작되는 거야.

무엇보다 배움의 주체가 본인이 되려면 '갈증'은 꼭 필요하구나 싶은 순간이다.

큰아이의 질문 세례... 그리고 영어 스펠링 대신 영어 발음을 한글로 메모해 뒀다가 반 친구에게 써(?) 먹는다. 이런 걸 서바이벌 영어라고 하던가.. 하하

작은 아이는 "엄마, 나 친구들한테 영어 한마디 했어" 한다. "무슨 말?" 했더니  "응, 아임 사우스 코리안. 노 잉글리시"라고 했다나.

아직 한글도 모르는 아이. 앞으로의 날들이 기대된다. 언어는 문화이자 도구라는데.. 이 아이들이 아부다비에서 듣고 보고 느끼는 문화와 감정들은 어떤 것들로 쌓여갈까?

어제 하굣길에 우리 집 건물 엘리베이터에서 한국인처럼 보이는 가족을 만났다.

나도 모르게 "오! 안녕하세요?" 하고 입꼬리를 한껏 올려 인사했다. ‘타국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반가운 건가?’ 싶었다. 상대도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도 모르게 "아 우리 애들은 영어를 몰라서 소통이 안되어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젠장!

괜찮다고, 애들은 잘하고 있다고, 자기 최면 같은 걸 걸어가며 '나 나름 괜찮네.'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 앞에서 흥분한 채 말을 했다.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마치 "저 너무 힘들어요. 좀 도와주세요."라고 하듯 마음의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다 그래요. 일 년 만 지나면 다 괜찮아져요." 하고 말하는 그분의 한마디가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집 앞에 왔을 때. 우리들의 친구 '아이리스'가 몸을 늘어뜨리고 낮잠을 자고 있는 게 보였다 "아이리스, 우리 왔어. 우리는 오늘도 씩씩하게 다녀왔어. 아이리스, 밥은 먹었어? 덥진 않고? 조금 더 자."    "냐아옹~냐아아옹" 아이리스가 대답한다. 마치 "응 고생했어. 난 밥은 먹었지, 너희도 좀 쉬어" 하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아이리스는 주인이 떠나버려 여기 이웃들이 함께 키우고 있는 고양이.


내 한마디 한마디에 "냐아옹"으로 대답해 주는 아이리스.

같은 동 이웃의 "다 괜찮아져요" 하며 내게 건네는 말.

"나름 재미있어" 큰아이의 말.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위로로 다가온다.  아부다비의 뜨거움과 함께. 내 주변 친구들의 위로의 말이 아주 따끈하게 내게 에너지로 다가온다.  뜨겁다 뜨겁다 하지만 이곳의 열기도 언젠간 식겠지. 그러고 보면, 온도라는 게 참 재미있다. 이곳의 온도, 우리들이 주고받는 언어의 온도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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