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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Apr 21. 2023

그 친구는 지금쯤 아이를 몇이나 두었을까?

  화미가 활짝 웃으며 연희에게 다가가 종이로 곱게 포장된 물건을 내밀었다.     

  “연희야, 새로운 생리대 나왔나 봐. 향기가 참 좋아”


  나는 우연히 그 광경을 바라보며 그녀들이 쓰는 생리대는 뭔가 특별하리라고 생각했다.     

  연희는 큰 키에 쭉 빠진 몸매 그리고 시원한 이목구비에다 공부도 잘했다. 깡마른 몸에 하얀 피부를 가진 화미는 영어단어를 외우는데 하루에 8절지를 앞뒤로 서너 장 채울 만큼 공부를 열심히 했고 성적도 좋았다. 집이 부자여서 우리 학교 수학선생님께 과외를 받는 화미는 그 깡마른 몸에 어디서 기운이 나는지, 8절지에 영어단어를 쓰며 외울 때마다 책상이 덜그덕거렸다. 그때 내가 하루에 최대로 노력해도 16절지 두 장이었으니까, 그녀는 우리 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노력파였다. 


  연희는 우리 학년의 퀸카였다. 우리 시내의 남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으며 교련시간이면 앞에 나가서 기수를 맡았다. 게다가 1학년 말 무렵에 선생님이 ‘연희도 이과로 간다’고 말하며 이과로 등 떠밀 만큼 연희는 학교에서 대표되는 존재였다. 특별히 스카웃한 학생이어선지 많은 선생님들이 연희를 아껴주었다. 그 때문에 은근히 비토세력이 생겨났고 연희는 학교 회장 선거에 나가서 보기 좋게 떨어졌다. 그러나 학교 친구들의 질투에도 개의치 않고 항상 잘 웃고 발랄했다. 학교에서 맡는 역할이 그저 평범하게 되었음에도 늘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화미는 그녀의 단짝이었다. 둘은 무엇이든 함께 했다. 밥을 먹어도 같이 먹고 매점엘 가도, 교실 밖 푸세식 화장실을 갈 때도 함께 갔다. 79년 당시 학교에는 푸세식 화장실뿐이었는데, 그 당시엔 그렇게까지 붙어 다니는 친구는 별로 없었다. 나는 두 친구의 모습이 부러웠고 연희가 대단해 보였다. 


  고2 여름 어느 날 체육 시간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왔을 때였다. 연희와 화미가 교실 뒤쪽에 있는 별실로 들어왔다. 때마침 나는 거기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나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화미를 보았다. 평소와 다른 연희의 입에서 날카로운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준비됐어?”


  화미는 안경을 벗었고 연희가 화미에게 따귀를 날렸다. 화미는 굳은 표정으로 안경을 다시 쓰고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깜짝 놀랐다. 갑작스런 광경에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서로에게 무슨 지진이 난 걸까? 그렇게 살뜰하게 챙기던 친구에게 뺨을 때리고 모든 걸 뺨 한 대로 끝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 헤어져 들어가다니! 


  중학교 때부터 서로 일편단심이던 친구였고 일부러 같은 고교를 선택했으며 문과 성향인 연희가 화미를 따라서 이과반으로 올만큼 서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 사이였다. 그런데 그런 친구 관계가 그날로 끝장난 것이다. 무슨 이유인진 모르지만 그렇게 가장 믿었던 화미마저 등을 돌렸다.     

 

  연희는 외로웠고 학교에서 기댈 친구가 필요했다. 그녀가 나를 선택한 건지, 우연인지 함께 앉으면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자연히 함께 점심도 먹게 되었다. 함께 점심을 먹던 첫날, 나는 연희의 점심 도시락을 매우 기대했다. 연희는 옷차림도 상큼했고 교복도 가방도 좋은 것들이었다. 화미와 함께 매점엘 가서 간식을 사거나 학용품이나 별 쓸모없는 소품에다 돈을 쓰는 데서도 인색함이 없었다. 용돈도 없어서 매점에 못 가는 나에 비해 참 풍족하게 사는 연희였다. 그래서 그렇게 모든 화제의 주인공인 연희네 집에서 싸준 반찬이라면 매우 특별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연희가 꺼낸 도시락엔 까만 콩 조림에 멸치볶음이 전부였다. 매우 실망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연희와 함께 밥을 먹었다.     


 연희가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같이 가서 공부하자는 거였다. 

 연희의 집은 서문통 바닷가 근처에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이 덮인 작은 초가집이었다. 예상외로 너무나 초라해서 긴가민가 하는데 연희가 나와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연희는 시내 남학생들에게 받은 편지들을 보여주었다. 편지통 하나 가득 연서가 담겨 있었다. 답장하지 않으면서도 편지를 받는 것은 연희에겐 매우 즐거운 일 같았다. 음악을 틀어놓고 연희는 연서를 읽어내려갔고 그 소리를 들으며 밤이 깊어갔다. 그날 밤 2시가 넘도록 연희의 얘기를 듣느라 공부는 물 건너갔다.


  연희의 집에는 아빠도 엄마도 없었다. 연희는 외할머니와 둘이서 살고 있었다. 엄마가 일본에서 돈을 벌어 보내주는 것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많은 남학생들에게 흠모의 대상이었고 선생님들의 이쁨을 받는,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연희의 의외의 모습이 내겐 낯설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연희가 말했다.    

 

  “나는 이담에 아이를 많이 낳을 거야. 한 여섯 명쯤?”

  “그 애들을 다 어떻게 키우려고?”

  “많아서 돌보기 어려우면 식탁 다리에 하나씩 묶어서라도 많이 낳아 키울 거야”     


  인기 많고 발랄해 보였던 연희 뒤에 그런 외로움이 숨어있을 줄이야. 얼마나 외로웠으면 아이를 많이 낳는다고 저러는 걸까? 내게는 많은 언니와 동생이 있는데, 혼자인 것보다 그게 행복한 걸까? 2층인 우리 집이 연희의 집보다 서너 배는 큰데 정말 우리가 더 부유한 걸까? 나는 늘 우리 집이 가난하고 배고프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연희가 초라하고 불쌍해 보였다. 


  연희는 재수해서 서울의 ㅅ여대에 들어갔고 화미는 ㄷ여대로 갔다. 졸업할 때까지 두 사람은 여전히 멀어진 상태였다. 대학 2학년 때 우월한 기럭지에 파란 청바지가 돋보이는 연희를 우연히 만났다. 연희는 여전히 밝고 잘 웃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연희가 모 대학 언어학당에 한국어강사로 출강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이 내가 들은 마지막 소식이었다.    

  

  우연히 비틀스의 Yesterday를 듣다 보니, 연희가 연서를 들려주던 여고 시절이 생각난다. 창호지 문풍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도 들리는 듯하고, 지붕 낮은 그 방에서 연희와 함께 누워 음악을 듣던 광경도 떠오른다. 그때 연희는 왜 화미와 깨졌을까? 그보다 연희가 말했던 식탁 다리와 아기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연희는 지금쯤 아이를 몇이나 두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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