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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Apr 07. 2023

고하르방

  저녁에 혼자 있을 때면, 가끔 고하르방이 생각난다. 

  성이 고씨인 그를 우리들은 하르방(제주에서 할아버지를 일컫는 이름)이라고 불렀다. 어릴 때여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그는 결코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5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그런 그가 고하르방으로 불린 까닭은 그가 기른 어수룩한 수염 때문이리라. 그는 머리카락만큼이나 검은 수염이 더부룩한 데다 늘 검정 색깔의 옷을 

입고 다녔다. 어깨는 다소 웅숭그린 듯한 그가 멀리서 어정어정 걸어오기만 해도 우리는 ‘고하르방’이라 부르며 도망가곤 했다.


  그는 우리 마을 끝자락에 있는 성당 옆에 살았다. 구멍 뚫린 돌담으로 둘러쳐진 곳에 가빠(눈비를 막기 위하여 방수포로 만든 덮개)를 지붕으로 씌우고는 보리낭 짚으로 바닥을 깔아놓은 곳이 그의 집이었다. 그는 날마다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궂은일을 해주고 밥을 얻어먹었다.     


  고하르방이 우리 집에 와서 해주는 일은 똥 돼지우리에서 짚을 퍼내어 거름을 만드는 일 따위였다. 점심나절, 그가 일할 동안에 어머니는 삼양 라면을 끓이곤 하셨는데 그때는 라면이 귀한 음식이라 끓이는 냄새만 맡아도 나는 침이 꼴깍 넘어갔다. 나는 한 숟갈이나 얻어먹을 수 있을까 내심 기대하며 어머니 옆에 주저앉아 어머니를 쳐다보곤 했다. 어머니는 언제 했는지 하얀 곤밥을 푸고 김치에다 국물이 잔뜩 든 꼬실꼬실한 라면까지 보기에도 먹음직하게 한 상을 차려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일을 마친 그의 입으로 곤밥이 넘어간다. 쓰다 달다, 말 한마디 없이 그는 먹기에 열중한다. 하얀 밥알과 대조적으로 누런 이빨이 듬성듬성 비치고 땀을 흘리며 국물까지 삭삭 비운다. 그럴 때면 나는 곤밥을 먹는 그의 처지가 부럽기도 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제사가 끝난 뒷날 아침에 동네 사람들에게 제사떡을 돌리곤 했는데, 거기에는 고하르방도 포함되었다. 그곳은 싹싹한 사라 언니가 소쿠리에 떡을 넣고 친구와 함께 찾아가곤 하였는데, 언니는 성당 옆까지 가서 움막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소리쳐 부르는 것이다.     


  “고하르방! 고하르방! 나왕 떡 잡숩써”     


  어떤 날은 사라 언니가 친구와 함께 들꽃을 가득 꺽고서, 불쌍한 고하르방을 위해 움막 앞길에 양 갈래로 뿌려놓고는 그를 불러 외치곤 했다.    

 

  “고하르방! 고하르방!”

  어쩌다 그가 어슬렁거리며 움막 밖으로 나타나기라도 하면 언니들은 달음질쳐 도망을 쳤다.    

 

  그러다 보름달 뜨는 밤이면 평소엔 말 없던 그가 어디선가 술을 퍼마시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어두운 그의 움막 속으로 사라지곤 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마누라도 자식도 없어 외로워서 그런다고 불쌍히 여겼는데, 낮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똑같은 검은 옷을 입고 동네를 허정거리며 다니다가 일거리를 찾곤 하였다.  

   

  이제 어른이 돼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고하르방은 어떻게 그 시절을 견뎌냈을까? 겨울이 되어도 난방은커녕, 바람 숭숭 들어오는 돌담에 거적 대기 하나 덮고서 지내야 했을 그의 처지가 눈앞에 그려진다. 동네 사람들은 그가 불쌍해서 밥이나 떡을 나누기도 했지만 그가 사는 움막을 적극적으로 개조해주려 하진 않았다. 각자 농사짓고 허덕거리며 자기 삶을 사느라 그런 생각이 미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사람이 고프고 사랑도 고팠을 텐데 그는 그렇게 혼자 살았다. 아무에게든 말하지도, 해 끼치지도 않고 하루 벌어 하루 먹으면서.


  그에 비하면 나는 돈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오랜 친구들과도 잘 교류하고 있다. 게다가 퇴직한 직장 동료들과 여행도 다니고 다양한 취미 생활을 해서 나름 생기있게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약해져선지, 나는 외롭고 허전함을 잘 참아내지 못한다. 그럴 때면 누군가를 찾고 전화로라도 허전해지는 마음을 털어내고 위로받으려 애를 쓴다. 


   외롭고 고달픈 생활을 원해서 한 건 아니었겠지만 누구에게도 신세 한탄하는 법 없이 온전히 삶을 살아낸 고하르방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이런 나에 비하면 그는 철학자 같다고나 할까.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시골을 떠나왔기에 그 후로 고하르방이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가 죽어 묻혔더라도 흔적 없이 사라질 만큼 이제는 세월이 흘렀다. 혼자서도 바둥거리며 똥을 굴려대는 쇠똥구리처럼 삶을 살다간 고하르방, 그처럼 나도 잘 살아내야 할텐데......     


  오늘도 소리 없이 어둠이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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