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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Oct 08. 2023

성적 벽보

  복도에 성적 벽보가 붙는 날엔 우리 모두 빼곡히 붙어서서 두 손을 모으고 성적 벽보를 바라봤다. (여기서 성적 벽보란, 가로 10m*세로 50cm 정도의 길게 붙인 종이에, 석차 순으로 모의고사 성적을 나열한 벽보를 말한다.)


  성적 벽보에 오르는 사람은 누구일까? 혹시나 내 이름이 먼저 모의고사보다 앞에 나오진 않았을까? 1등을 한 친구의 모의고사 점수는 얼마일까? 각자 궁금증을 가지고 누구보다 먼저 보려고 발가락을 세우곤 했다. 성적 벽보에 붙는 이름이 조금씩 들락날락했지만 대체로 거기가 거기였다.


  그런데, 낯선 이름이 성적 벽보에 등장했다. [미희]. 그것도 전체 석차에서 몇 등 안에 드는 우수한 성적으로! 당장에 미희는 우리 학년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그 사건이 내겐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문과로 간 친구에게 물어봤다.      


  “미희...... 글쎄 다들 희한하게 생각해. 그렇게 잘할 줄 아무도 몰랐거든.”     


  여고 3학년 때,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의고사를 치렀다. 그러고 나면 얼마 후 결과가 3학년 중앙 복도 위에 걸렸다. 옆으로 길게 펼쳐진 성적 벽보에 등장한 학생들은 300명 중에 30등까지였고, 몇 반의 누구가 몇 등인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나는 1학년 때보다 성적이 올라가고 있어서 성적 벽보에 걸리는 내 이름을 보는 것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시골에서 올라와서 아는 친구가 아무도 없던 내가, 그나마 이름 석 자를 드러낼 수 있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기뻐했다고나 할까? 그만큼 인정받는 것에 애달아 있었나 보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어린 내가 안쓰럽기 그지없지만.     


  성적 벽보에서 미희를 처음 발견하던 날, 나는 복도에 서서 미희가 누군지 살펴보았다. 친구가 가리킨 미희는 꼿꼿이 허리를 세운 채, 눈을 내리깔고 책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영락없는 모범생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30등 안에 들지도 않던 친구가 어떻게 그렇게 치고 올라갈 수 있을까? 이따금 나는 그녀가 경탄스러워 그쪽 교실로 향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 애가 단정하게 날이 선 하얀 카라에, 허리가 날렵한 교복이며 살짝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외모까지 멋진 그 애를 한없이 부러워하면서 힐끔거렸다.  

   

  한동안 그녀를 라이벌 삼아 나를 더 다그치며 공부하고자 몸부림치기도 했다. 밤 9시에 야자를 끝내고 나서도 책과 공책을 가득히 넣은 돌덩이 같은 책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섰다. 찌그러지듯 꽉 찬 버스에 오르면서도 2시 전에는 자지 말고 공부해야 한다고 이를 깨물었다. 그런데 쏟아지는 잠을 어찌하랴. 나는 번번이 11시를 넘기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동네 친구를 불러다 같이 공부도 해보고, 친구네 거실에서 앉은뱅이 밥상에 서로 앉아서 용을 써봐도 소용이 없었다. 코피가 흐르도록 안자며 공부하는 친구에게 새벽 2시를 넘기는 비결이 뭐냐고 물어봐도 헛일이었다. 나는 언제 미희처럼 성적을 급상승시킬 수 있을까? 그녀가 마냥 부러우면서도 확확 오르지 않는 성적에 절망스럽기도 했다.     


  그 후에도 모의고사를 치를 때마다 여전히 나보다 우월한 미희의 석차를 성적 벽보에서 마주했다. 드디어 나는 ‘그녀처럼 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를 절감하면서 은근히 미희를 우러러보게 되었다. 그러다 학기말고사가 끝났다. 

  막 방학을 향해 가고 있던 어느 날, 뜬금없는 소문이 내 귀에 들어왔다. 미희가 휴학했다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왜?” 

  나의 질문에 친구가 해준 대답은 내 뒤통수를 크게 한 대 갈기는 거였다.     

  “글쎄, 너 효선이 알지? 걔가 전교 1등이잖아. 모의고사 때 미희가 항상 효선이 뒤에 앉는데 효선의 시험지를 따라서 표시했던 거래. 그러다 딱 걸렸어. 애들한테.”     


  그러니까 미희가 모의고사를 잘 본 것은 컨닝 때문이었다는 말이다. 모의고사는 번호순으로 앉는다. 게다가 감독을 잘 않는다, 그런데 효선이가 시험지에 정답을 사인펜으로 짙게 동그라미를 해서 보기 쉬웠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들키면서 문과반 아이들 사이에서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얘기가 왕왕이 돌았나 보다. 그러나 휴학해서 1년을 꿇어야 한다니, 나는 미희가 불쌍했다. 성적에도 반영이 안 되는 모의고사를 컨닝한 대가로 휴학이라니. 어쩌면 미희는 성적 벽보의 희생양인지도 모르는데......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쏟아졌을 때 나는 그 애를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러나 그 애는 괴로웠을 것이다. 어쩌다 효선의 답안 표시가 눈에 들었고 그걸 그대로 베껴서 전교 석차가 눈에 띄게 좋아지니, 계속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빠지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우리가 얼마나 성적 지상주의에 내몰리며 살았는지 알 것 같다. 전국에서 모의고사를 보고 학교들이 줄 세워진다. 교장이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교무 회의에 붙여지고, 묘책이 나온다. 성적 벽보를 붙여서 경쟁심을 더 부추기는 것이다. 그것이 교육적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효과가 중요하다. 그게 우리가 받아온 교육방식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수능 성적에서 앞서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젊은 영혼들이 불에 달구어지고 있는가? 예전엔 그래도 고3 때가 전부였다. 지금은 어떤가? 더 어릴 때부터 돌격하고 있지 않나? 우리는 그런 걸 교육이라 불으며 내몰고 또 내몬다. 이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생존 문제가 대입이라는 한곳에 모아진 것이다. 그래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외통수 같다. 아,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는 이 소모전에 매달려야 할까?     


  지금도 나는 길고 긴 하얀 성적 벽보에 멋지게 써 내려간 검정색 이름들이 떠오른다. 그 성적 벽보를 지나 눈을 내리깐 미희가 얌전하게 복도를 걸어간다. 모든 눈총이 쏟아지던 그 시간이 얼마나 가시밭이었을까? 어쩌면 휴학이 그녀에겐 안식처로 도망가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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