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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Oct 02. 2023

꽃보다 예쁜 당신, 사랑스러운 너, 안녕!

   어쩌면 이번이 둘째 언니의 마지막 여행일지 모른다. 제주도의 작은 구멍가게에 앉아서 삶의 대부분을 보낸 둘째 언니를 위해, 남산 타워 구경에 나섰다. 남산 파출소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와 둘째 언니, 그리고 셋째 언니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허리가 구부러진 둘째 언니가 땅만 보고 걷는다. 나는 양산을 높이 들어 둘째 언니의 등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셋째 언니는 걷는 길에 나무 그늘이 많아 다행이라고 사전 조사한 나를 칭찬해 주었다. 남산케이블카 타는 곳까지는 8분, 다행히 오르막이 없었다. 둘째 언니가 앉아서 쉴 돌담도 있었다.  5분이나 걸었을까? 지팡이 집고, 걷는 게 힘이 드는지 둘째 언니가 주춤거린다.


  “언니, 앉앙 쉬었당 갑써”

  “어”


  셋째 언니의 말에 둘째 언니가 돌담에 앉았다. 둘째 언니가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쉰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고 이마에 땀이 맺혔다. 평일이라 그런지 우리 외엔 걷는 사람이 없이 한산했다. 몇 분 만에 걸을 만한지 둘째 언니가 다시 일어선다. 천천히 걷던 둘째 언니는 다시 한번 더 주저앉아 쉬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남산케이블카 입구가 보였다. 반가웠다. 케이블카 1층 데스크에 가서 휠체어가 있는지 물었다.


  “대기 시간이 길면, 서 있기가 힘들 것 같아서 빌리려는 거거든요”

  “오늘 대기 시간은 짧은데, 가서 돌아다니려면 휠체어를 타시는 게 나을 거여요.”     


  젊은 남자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하더니 어디선가 휠체어를 가지고 돌아왔다. 둘째 언니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휠체어를 받았다. 둘째 언니가 처음으로 휠체어에 앉는다. 엉거주춤하다. 나도 처음 휠체어를 잡았다. 남자 직원이 발은 이렇게 고정하는 거라며 발판에 언니 발을 올려준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외국인 부부가 서 있었다. 드디어 케이블카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케이블카로 휠체어를 올려야 하는데 어떻게 운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바퀴가 잘 안 굴러간다. 무겁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언니가 무겁다. 무엇인가 들어 올릴 장치가 있을 텐데, 잘 모르겠다. 급 당황스러운데 외국인 남자가 힘주어 들어 올려줬다. 덕분에 케이블카 안으로 휠체어를 밀어 넣었다. 참 고마웠다. 반대쪽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올라왔다. 둘째 언니가 사람들 사이에 파묻혔다. 밖이 잘 안 보이겠지만 어쩔 수 없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드디어 남산이다. 휠체어를 밀고 남산 아래를 내려다보기 위해 움직였다. 오르막 경사면이 나오자 역시 힘들다. 중년 여성이 다가와서 이렇게 움직이는 거라고, 시범을 보여준다. 밀어 올리는 게 능숙하다. 그곳에서 근무한다며 내리막 경사면을 내려갈 때는 뒷걸음질을 치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하다. 덕분에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따뜻해지는 것 같다.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나는 남산 타워 꼭대기에 있다는 레스토랑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셋째 언니가 그냥 돈가스나 먹자고 했다. 남산 타워 지하층에 있는 돈가스집으로 갔다. 언니들은 치즈 돈가스를 나는 샐러드 돈가스를 시켰다.     

 

  “예전에는 음악이 흐르는 레스토랑에서 돈가스 먹는 게 제일이었는데 마씨!”

  내가 추억을 꺼내 들자, 둘째 언니가 한 마디 던진다.

  “옛날엔 곤밥(쌀밥)만 먹어도 좋았주”

  “언니, 옛날에 동문통 살 때, 기억 남쑤과?”

  셋째 언니가 꺼낸 말에 옛 기억이 떠올랐다.     


  둘째언니와 셋째 언니가 언덕배기 달동네에 방 한칸을 빌어 살 때였다. 둘째 언니가 고교 3년, 셋째 언니가 고교 1년인 때다. 어쩌다 언니네 사는 자취 집으로 놀러 갔다. 셋째 언니가 반지기 밥(쌀반 섞은)에 멸치볶음과 김치를 반찬으로 내주어 맛있게 저녁 식사를 했다. 밥도 부드러운 데다가 달콤하게 볶은 멸치가 입에 짝짝 붙었다. 나는 언니네가 늘 그렇게 먹고사나? 궁금했었는데 오랜만에 올라온 동생을 위해서 시장에서 조금 사 왔던 것이었다.


  언덕 위의 집이라 내려다보이는 집들의 불빛이 아롱다롱 아름다웠다. 아무런 근심이 없는 평화로운 밤 같았다. 그런데 언니들의 얘기가 내 귀를 울렸다. 누가 휴학해서 돈을 벌 것인가를 서로 고민하면서 두런두런 얘기하는 거였다. 그 당시 일본에 밀항 간 아버지가 돈을 보내주지 못해서 집안이 어려웠나 보다. 그 소리에 걱정하며 잠이 들었었다. 어찌어찌 위기는 지나갔고 언니들은 무사히 고교를 졸업했다.


  언니들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타워 꼭대기로 올라갔다. 전망대에 이르러 휠체어를 유리창 쪽으로 밀었다.


  “언니, 저어기 푸른 기와집이 있지? 저기가 청와대야.”     


  셋째 언니가 손으로 멀리 가리키며 말했다. 언제나처럼 별 감흥을 나타내는 법 없는 둘째 언니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눈을 맞췄다. 수많은 아파트촌도 눈으로 들어왔다. 저 아파트 한 채가 수십억 간다고 둘째 언니에게 말해주었다. 햇빛은 찬란했지만 뿌연 공기에 아파트촌은 흐려져 있었다.


  휠체어에서 내려 언니가 천천히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다시 도심의 풍경이 눈으로 들어왔다. 둘째 언니는 푸른 숲과 그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촌을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둘째 언니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한강 변 아파트가 몇십억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돈다발들이 눈 앞에 펼쳐진 세상에 놀라서 그러는 걸까? 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냥 가게에 들러붙어서 오래도록 살다가 사그러질 자신의 운명을 생각이나 해봤을까? 갑자기 ‘다시는 살아서 이곳에 올 일이 없을 둘째 언니’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마음에 싸한 바람이 불어왔다. 어쩌면 둘째 언니와의 구경은 앞으로는 영영 해볼 길이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전망대를 돌다가 ‘꽃보다 예쁜 당신’이라고 쓰여있는 유리창 앞에 섰다. 셋째 언니가 나와 둘째 언니에게 얼굴에 두 손을 갖다 대고 웃으며 바라보라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사진을 찍었다. 둘째 언니와 눈이 마주쳤다. 둘째 언니가 곰살스럽게 늙고 있다. 그 모습이 사랑스럽다. 꽃보다 예쁘다는 게 언니의 저런 표정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 오랫동안 구멍가게 안에서 늙은 호박처럼 익어가면서도 불평 없이 담담하게 살아내고 있는 둘째 언니다. 그래서 그런지 화장기 없는 둘째 언니의 둥근 얼굴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사랑스러운 너’라고 표시된 화살표 아래에서는 셋째 언니가 둘째 언니를 가리키며 활짝 웃는 포즈를 취했다. 단 한마디가 쓰여있을 뿐인데 그곳에 서서 이런 표정, 저런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게 참 좋았다. ‘안녕’이라는 푯말이 들어왔다. 셋째 언니가 둘째 언니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라고 했다. 셋째 언니가 말없이 손을 들었다.

  안녕! 손을 흔드는 언니 뒤로 하얀 구름이 떼 지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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