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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Sep 07. 2023

멍게 언니

  칠순이 가까운 둘째 언니는 평생 다섯 평짜리 가게에 붙박여 살아왔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0년 동안은 친구도 거의 찾는 법 없이, 혼자 생각에 잠겨서 살았다. 아침 8시에 눈을 뜨면 가게 문을 빼꼼히 열어놓고, 가게에 딸린 방에 누웠다가 아침을 먹고 앉아서 가게를 보기 시작하면 밤 10시가 되어서야 문을 닫는다. 


  “끄응 끄응”


  둘째 언니가 이를 닦는다. 힘을 내느라 소리까지 내지만, 아래위로 움직이는 언니의 팔은 더디게 아주 더디게 움직인다. 언니는 가게에 딸린 옹색한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1시간이 넘도록 양치질을 한다. 이가 다 망가지니 그만하라 해도, 소용이 없다. 


  그런 둘째 언니가 셋째 언니 아들의 결혼식을 보러 서울로 올라왔다. 혼자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둘째 언니를 위해서 셋째 언니가 공항으로 마중 갔다. 나는 둘째 언니를 보러 셋째 언니 집으로 갔다. 


  “언니~”

  셋째 언니네 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응, 어서 와라.”


  셋째 언니와 형부가 웃으며 나를 맞는다. 그러나 둘째 언니는 나를 보고서도 여전히 사과에 손이 간다. 아무도 먹지 않는 동안에도 혼자서 먹기에 열중한다. 아이 같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셋째 언니 내외가 시장을 보러 간단다. 그 사이에 둘째 언니가 목욕한다고 나섰다. 언니가 혼자 목욕을 하려면 적어도 3시간 넘게 걸린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언니를 따라 화장실로 들어갔다.


  “언니 등 돌려 여기 앉아봐, 내가 목욕시켜 주께.”


  둘째 언니가 욕조에 있는 방석에 앉았다. 맨몸으로 두 눈을 껌벅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귀여운 아기곰 같다. 언니의 어깨가 아주 둥글다. 혼자 우두커니 앉아서 가게만 지키던 세월 탓인가? 너무 살이 쪄버렸다. 우선 팔에 비누 거품을 묻히고 벅벅 씻어내렸다. 언니의 살이 부드럽다. 돌아가며 가슴, 배, 등을 닦아 내리고 머리도 샴푸로 감겼다. 다리를 씻길 차례가 되자 언니보고 스스로 해보라고 했다. 언니는 슬로우비디오를 넘기듯 천천히 비누 거품을 내더니 힘겹게 다리 아래로 밀어 내렸다. 답답해진 나는 욕조 가장자리에 언니의 발을 올려 재빨리 씻어버렸다. 


  내친김에 양치질까지 밀어붙였다.

  “언니, 앙하고 입을 벌려봐!”


  언니는 내 말에 고분고분 따랐다. 나는 언니의 앞 이빨에 칫솔질을 하다가 어금니를 닦기 위해 언니의 턱 밑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입을 벌린 언니가 커다란 아기처럼 다가온다. 


  “이빨은 대충 닦았으니까, 밤에 다시 닦아”


  목욕을 끝내는 내 얼굴에 땀이 맺혔다. 언제나 무표정한 둘째 언니, 고맙다거나 시원하다는 말도 없다. 그 말이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타인과 교감 못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저렇게 해서 어떻게 노인회관엘 가지? 때가 되면 가게에서 벗어나 가야 할 데가 있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20대일 때 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갈색 모자를 쓴 처녀가 그려진 하얀 티를 하얀 바지 안에 집어넣고 갈색 허리띠를 잘록하게 동여맸다. 그리곤 긴 머리를 날리며 날렵하게 움직여 다녔었다. 그러던 언니는 어디로 갔을까? 노인이 되면 누구나 행동이 느려지기는 한다. 그러나 언니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너무나 늙어버렸다. 아니, 마치 퇴화되어 버린 것 같다.


  “언니, 나는 언니가 다리를 올려서 자전거 타기 운동을 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겅헌 언니는 어디 갔수과? (그런 언니는 어디 갔어요?)”


  언니는 히죽이 웃기만 했다. 나와 언니는 여덟 살 차이가 난다. 언니는 이제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다. 지팡이 없이는 걷지도 잘못한다. 그러나 나는 가끔 공원 둘레길을 뛰기도 한다. 앞으로 8년 후면 나도 언니처럼 될까? 아니다. 언니보다 나이가 더 많은 70대인 동네 언니도 허리가 꼿꼿하게 잘만 걷는다. 나도 뛰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둘째 언니처럼 늙을 것 같진 않다. 무엇이 언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둘째 언니가 4, 50대일 때, 나는 전화할 때마다 언니에게 말했었다. 헬스장에 가서 런닝머신으로 걷기라도 하라고. 나중에 병원 가서 돈이 더 들기 전에, 건강을 챙기려면 운동이 꼭 필요하다 강조했었다. 친정 동네는 오래 걸을 마땅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응 알았져.”


  언니는 대답은 늘 그랬다. 그렇지만 말뿐이었다. 나도 언니에게 운동을 강조하긴 했지만, 언니가 꼬부랑 할머니가 된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친정에 내려가서 둘째 언니를 볼 때마다 웅숭그려 앉은 모습을 타박하면서도 말이다.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동백꽃이며 이중섭 미술관을 구경하느라 걸어서 함께 돌아다녔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지도 못할 옛일이 돼버렸다. 오랫동안 혼자 구부정히 앉아서 생각만 하다가 긴 세월에 덜커덕 허리까지 꺽이다니...... 가게가 언니를 먹여 살렸던 것일까? 아니면 언니를 잡아먹은 것일까? 


  둘째 언니는 무엇을 위해 가게에다 몸 바쳤을까? 

  처음엔 우리 집을 위해서였다. 언니 덕에 우리는 더이상 돈 걱정 없이 학교에 다녔고 쌀을 샀고 반찬도 제법 해서 먹었다. 그러나 다들 결혼을 하고 자리를 잡게 되었을 때 늙어가는 어머니를 빼고 둘째 언니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배운 짓이 도둑질이라고, 언니는 그렇게 가게에 눌러앉았다.    

  

  멍게는 어렸을 땐 올챙이처럼 꼬리를 치고 열심히 돌아다니며 먹이를 구하고 산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모든 기능을 없애버리고 바다 한 곳에 뿌리를 내린다. 그리곤 그저 몸 안으로 들어오는 바닷물 속의 먹이나 걸러 먹으며 여생을 보낸다. 스스로 퇴화를 선택한 것이다. 


  둘째 언니는 그런 멍게를 닮았다. 원래부터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가겟방 한구석에 들어앉다 보니 언니는 다리근육도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머리 근육도 쓸 일이 없었나 보다. 그래서 지금은 잘 걸을 수도 없고 미묘한 인간관계도 잘 모른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어떻게 해줄 방법도 없다. 그저 오늘도 전화를 든다.     


  “언니 오늘은 어디까지 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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