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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Aug 04. 2023

'여우굴'에서 나누는 꿈 이야기

꿈 분석 모임, 꿈밀당

  ‘여우 굴’은 지하 1층에 있다. 불빛이 약하지만 편안한 공간이다. 들어서면, 한쪽에는 책들이 즐비하고 오늘의 책방지기, 썬이 차를 준비하며 미소 짓는다. 기분이 좋다. 여덟 명이 모였다. 썬, 피노, 바람, 아이셔, 꽃무릇, 봉, 멘더, 그리고 나. 게다가 그날은 아이셔가 정성스레 과일을 준비해왔다. 잠깐 같이 음식을 나누며 얘기를 하다가 함께 돌아가며 책을 읽는다.

    

  융 심리학에서는 영혼이 확고한 실체이다...... 영혼은 무의식의 영역에 거주하면서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영혼이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거나 무의식을 표현할 때는 상징의 형태로 등장하는데, 꿈, 비전, 판타지 등 어떤 식으로든 무의식으로부터 상상의 형태로 흘러나온다...... (융 심리학적 이해, We )     


  내 영혼은 어떤 모습일까? 내 꿈에서는 왜 계속 학교가 등장할까? 내 무의식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기에 늘 시험 출제나 아이들 문제로 시달리는 것일까? 책을 읽으며 얼핏 생각이 스친다. 책 내용을 토론하진 않아 좀 안타깝기도 하다. 거기까지 역량이 미치지도 않지만, 꿈을 토론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책을 읽은 다음엔, 손을 잡고 눈을 감아 마음의 준비를 한다. 손을 푼 다음, 돌아가며 한 줄로 자신이 꾼 꿈을 말한다. 꿈을 안 꾼 사람은 그냥 넘어가면 된다. 썬의 꿈은 똥 무더기, 아이셔는 스탠드를 밝히고 있는 남편, 그리고 나는 부정행위(시험)를 꿨다고 했다. 지난 시간에 내 꿈을 토론했기에 빠지기로 하고, 먼저 썬의 꿈을 나누기로 했다. 썬이 한 줄 꿈을 상세하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꿈이 영화 같았어요. 눈이 펑펑 오는 날 자유를 찾아 우리 가족이 길을 떠났어요. 그러다가 아이를 발견하고 가게에서 그를 위해 뭘 사려다 가족과 떨어졌죠. 나머지 가족들은 안전하게 다리를 건넜는데, 갑자기 다리가 통제되고 총을 난사하는 부대가 나타나서 저는 가족에게 가지 못했어요. 모르는 사람들과 눈보라를 헤치며 길을 떠났죠. 굶는 날이 며칠 되었어요. 우리 일행에게 여러 가지 모양의 똥들이 보였죠. 별 모양, 달 모양 등등 전혀 더럽지 않고 맛있게 보이는 똥 무더기들이었어요. 실컷 똥을 먹고 화장실에서 싸고 또 먹고 했지만 그런 행위들이 전혀 지저분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별 모양의 똥이라니! 참 신기하다. 예전에 똥 꿈은 돈이 아니었나?’     


  들으며 얼핏 스친 나의 생각이다. 에구 상상력이 짧구나. 멤버들은 썬의 얘기를 들으며 각자 생각에 잠긴다. 자신이 생각을 정리하면서 질문을 하기도 한다. 시간은 언제였나요? 무슨 색깔이었어요? 남자아이예요? 여자아이예요? ...... 질문은 꿈에 따라 다양하다.      


  그러다 바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만일 내 꿈이라면, 다 큰 자녀들을 내보내는 데 대한 건강한 이별을 말해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해요. 가족들이 먼저 안전하게 다리를 건넜으니까.”

    

  썬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 수도 있어요. 큰아들이 좋은 직장을 잡게 되어서 안심됐거든요.”     


  어쩌면 가족과의 이별이, 자기 일에 자리 잡고 성장하고 있는 썬을 나타내는 건 아닐까요? 책방에서든, 뮤지컬에서든 제 몫을 잘 해내고 있잖아요? 똥은, 썬이 영적 자양분을 잘 섭취하고 있다는 표현이 아닐까요?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지 말고 일단 열심히 해보라는 것일 수도 있죠. 아이에게 뭘 사주려는 것은 내면의 아이를 챙기는 썬의 배려를 표현한 것인지도 몰라요. 천진한 아이처럼 존재하라는 의미는 아닐까요? 총을 난사하는 급박한 상황과 어쩌면 더러운 환경에도 썬이 개의치 않는다는 것은 내면세계가 단단해지는 썬의 모습을 똥 꿈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어요.     


  바람에 이어서 피노, 아이셔, 멘더, 꽃무릇 등이 의견에 의견을 개진하며 얘기를 이어갔고 봉이 그 의견을 통합하여 정리하면서 긴 시간이 마무리되었다. 나 또한 썬이 보여주는 편안함이, 그녀가 지닌 심리적 단단함에서 오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스스로 자존감이 단단해져야 타인에게도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으니까.     


  썬의 꿈을 얘기하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다음으로 짧게 한 장면을 기억하고 있는 아이셔의 꿈을 나누었다.    ‘남편이 아이셔를 위해 옮겨놓은 스탠드, 빛이 잠을 방해했지만, 화가 나지 않았다.’는 꿈이다.     


  그동안 아이셔가 동네 사람의 무고로 맘고생이 심했는데, 그녀의 결백이 밝혀졌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남편이 많이 도와주지 않아서 섭섭한 마음이 있었단다. 며칠 전, 남편이 전화 통화를 하면서, 자신을 위해 목청 높이는 걸 우연히 들었다고 했다. 그동안 남편이 알게 모르게 자신을 지지해주고 있었던 걸 꿈 얘기를 나누면서 새삼 느끼게 된 것 같다. 원하던 스탠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스탠드를 가져다 불을 밝혀준 것이 남편이었다. 그것은 아이셔의 의식을 밝혀주는 등불 같은 역할을 하는 남편을 뜻하는 건 아닐까? 이런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그간의 과정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어려운 일을 맞닥뜨렸을 때 얼마나 무기력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가족의 소중함까지 얘기하면서 아이셔의 표정이 더 밝아지는 것 같았다.  

   

  함께 꿈을 분석하다 보면, 꿈꾼 사람의 내면 상황을 무리 없이 살펴보고 그 심리를 잘 다독여 주면서 서로 공감하기도 한다. 돌아가며 꿈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나를 꺼내 보이게 되기 때문에, 나를 말하고 타인으로부터 지지받거나 객관적으로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꿈이 대화를 풍성하게 해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만 드러내는 데서 오는 불안이 있다. 그러나 ‘이건 꿈이었어’라는 말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부담스럽지 않다. 그리고 꿈은 자신의 무의식이 자기에게 해주는 말이라고 하지 않는가? 혼자 그것을 들여다보기는 어렵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이렇게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꿈 분석 모임은 그냥 수다만 떨게 되는 데서 오는 공허감이 없다. 게다가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서 책을 읽고 토론하는 데서는 얻을 수 없는 친밀감도 있다.     


  아이셔의 꿈 분석이 끝나자 예정된 2시간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도나 노비스 파쳄(Dona Nobis Pacem)을 부르며 다음 주에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그런데 대체로 내 꿈은 뿌옇고 흐릿하고 짧다. 어떨 때는 꿈을 꾸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기억이 나질 않을 때도 많다. 꿈에도 무슨 문학적 장치가 있는 게 아닐까? 단답형 같은 짧은 글쓰기만 하는 나의 상상력이, 여지없이 꿈에서도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꿈도 이과 형으로 꾸는 게 아닌가 싶다. 30년이 넘도록 그렇게 가르치고 사고해왔으니 풍성하게 맥락을 펼치는 것이, 쉽지 않다. 뭐가 한계일까?   

  

  오늘도 나는 책 한 권을 가방에 챙겨 넣고 '여우 굴'로 향하면서 두루 사방을 살핀다. 초등학교를 지난다.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공원엔 유치원 아동들이 꼼지락거리며 풀들을 뒤적이고 있다. 다른 쪽에서는 선생님들과 함께 종종거리며 병아리 같은 아기들이 걸어오고 있다. 내 꿈에 저런 애들이 나오면 좋을텐데!      

  나는 홀로 미소를 짓는다. 퇴직하기 전에는 가져보지 못한 여유다. 싱싱한 생기가 나에게서 피어나는 순간이다. 꿈 하나를 챙기고 가지 않아도 괜찮다.     


                                                               -- 여우책방 협동조합 카페에 있는 썬의 글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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