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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Mar 29. 2024

동생의 장례식장에서

  “고모들도 상복 입으쿠가? 일단 우리 꺼만 준비해달랜 했수다”


셋째 언니와 내가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올케는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도 어떻게 장례를 치러야 할지 진두지휘를 하고 있었다. 상복은 필요 없다고 하면서 무엇이든, 올케가 좋을 대로 하라고 했다. 

장례지도사가 동생을 보러오라고 우리를 안내했다. 영안실에는 냉장고가 줄줄이 보였고 그중 하나에 동생 이름이 쓰여있었다. 장례지도사가 냉장고 문을 열고 동생이 있는 냉장칸을 끌어당겼다. 동생의 얼굴이 보였다. 편안히 눈을 감고 있으나 평소보다 얼굴이 부어 보였다. 동생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울음을 토했다. 


갑자기 가슴에 횡하니 구멍이 났다. 허무하고 쓸쓸하고 억울했다. 마음은 무너지는데 어떻게 추슬러야 좋을지 몰랐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데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나? 그저 빈말의 위로가 아니라, 내 처지를 공감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아, 갑갑하다! 그때 떠오른 것이 옥희였다. 국민학교때 삼총사로 친했던 옥희는 젊었을 때 남동생을 잃었다. 옥희라면 내 마음을 알겠지. 나는 옥희에게 문자를 남겼다.


‘옥희야, 우리 덕이가 갑자기 죽었단다. 심근경색이래. 어떻게 마음을 잡아야 좋을지 모르겠다......’


동생의 영정 사진이 얹어지고 향불이 피어올랐다. 동생은 마흔이 안되어 보이는 젊은 날의 모습으로 엷게 웃고 있었다. 손님 맞을 준비가 끝나고 올케와 조카들은 검은 상복을 차려입었다. 나와 언니는 빈소 한쪽에 있는 쪽방 안에 캐리어를 밀어 넣고 식당 한쪽 구석에 앉았다. 


“이게 무슨 일이고? 엊그제 할머니 제사 집에서 만나신디......”


사촌오빠와 언니들이 와서 우리 곁에 앉았다. 모두가 동생보다 늙은 사람들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손님들에게 밥상을 나르거나 차라도 타서 날랐건만. 갑자기 내가 뒷방 늙은이가 다 되어버린 것만 같아 좀 씁쓸했다. 


슬프고 억울하고 기운 빠지고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도 배가 고팠다. 밥상이 차려지고 수저를 들고 밥을 먹고 있었다. 옥희가 들어왔다. 옥희는 밥을 먹고 왔다며 믹스 커피 한잔을 받아 앉았다. 내가 마음이 너무 이상하다며 너는 어떻게 견뎠냐? 고 물었다.


“그러게. 참 힘들었다. 그때는 서른 두살이라 너무 어렸어. 겨우 친한 친척 몇 사람과 부모님이랑 어떻게 장사를 지냈는지...... 준이가 결혼하고 싶어 했던 여자가 있었는데 엄마가 탐탁지 않아 해서 나도 반대를 했거든. 그 여자를 만나러 밤에 차를 몰고 가다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거야. 반대한 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 그 때문에 오래도록 앓았었다. 그래도 세월이 흐르니까 잊혀지더라.”


옥희는 오래도록 앉아서 나와 시간을 보내주었다. 우리는 그 옛날 옥희 동생 준이랑 은행 놀이를 했던 이야기며 내 동생 덕이와 함께 숨바꼭질하다가 넘어졌던 사건들을 회상했다. 뒤이어 노후며 치매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왠 중년 남성이 내게 다가왔다. 


“누님, 저 문수마씨!”


남동생 친구였다. 고등학교때 우리 집에 모여서 공부를 했던 친구라 자세히 보니 알아볼 수 있었다. 어느새 남동생 친구 몇몇이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던 것이다. 오랜만에 반갑다며 와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동안 몰라보게 많이 늙었구나! 저들도 나를 보며 그러겠지. 그래도 쟤들은 이렇게 살아있는데...... 동생은 쉬어보지도 못하고 힘들게 일만 하다가 떠났구나! 다시 마음이 아려왔다. 그래도 여럿이 모여 복닥대고 있어서 그런지 날씨가 변하듯 마음의 색깔도 쉬이 바뀌는 것 같다. 늙어가니 무디어져 가는 것인지...... 


어둠이 깔리고 나자,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왔다. 옥희는 더 늦어지기 전에 할 일이 있다며 일어섰다. 나는 옥희를 따라 장례식장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그리 춥지 않았다. 다음엔 좋은 일로 만나자고 얘기하며 손을 맞잡았다. 


사람들로 북적거리게 되자 나도 조용히 나와 호텔로 갔다. 세 시간쯤 눈 감고 잤을까? 밤 12시가 넘어갔다. 


‘지금쯤은 손님들이 다 가고 올케와 조카들만 쓸쓸히 앉아 있겠지.’ 생각하며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불은 훤하게 밝았지만, 생각대로 지하 1층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양쪽 집 화환들만이 층층이 도열한 채 나를 맞았다.


안으로 들어서니 빈소에서 올케와 조카들은 담요 하나씩 뒤집어쓰고 잠을 자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올케가 일어났다.


“아니, 고모 이 야밤에 어떵허연 왔수과?”

“걱정되영 왔져. 얼른 자라. 괜히 깨웠구나”


‘아, 예전엔 밤을 새웠었는데 이제는 아닌가보구나.’ 공연한 걱정을 했네.


속으로 생각하며 나는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았다. 향불을 사르고 동생을 쳐다보니 언제나처럼 그렇게 웃고 있다. 그 앞에서 올케와 두 아이는 잠들어있다. 


혼자서 연도를 올렸다. 향만 소리 없이 타들어 갔다. 한참 동안 꺼지지 않게 향불을 사르며 앉아 있노라니, 올케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계속 슬퍼할 수만은 없겠지. 밤이라도 긴장을 풀고 이렇게 자야겠지. 그래야 삼일을 버터 내겠지.


나도 한쪽 구석에다 파란 담요를 뒤집어쓰고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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