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바리우다 Nov 03. 2023

둘째 언니의 전화

  내가 기타 치러 가는 곳은 동사무소에 있는 문화센터다. 매주 화요일마다 1시간 30분 동안 열댓 명이 모여 교습을 받는다. 1년 동안 배웠던 결과물에 대한 발표회가 이틀 뒤면 열린다. 그것 때문일까? 왠지 마음이 우울해 있었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의기소침하기도 하고. 어쩌면 날씨가 흐릿해서 그러는 건지도 몰라.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팀원 두 사람과 함께 발표곡을 연습했다. 기타 선생님이 도착하고서 리허설 겸해서 발표할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두 사람과 함께해서 그럭저럭 잘 마칠 수 있었다. 나머지 시간도 함께 노래 부르며 기타를 두드리다 보니 정신없이 흘렀다. 기타가 끝나고 나서 같은 동네에 사는 기자씨와 나란히 걸으며 얘기를 나눴다.     


  “엄마를 떠나보내고서 이틀 동안 울었어요. 마음에 가책이 돼서...... ”     


  기자 씨의 엄마는 올해 92세, 딸들이 돌아가며 고향에 있는 친정엄마를 돌봐왔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가 누워서만 지내는데 똥오줌을 받아내는 게 이젠 힘에 부치게 되어 결국 요양원 생활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한사코 자기 집을 떠나려 하지 않았고 딸은 그런 엄마를 달래느라 거짓말을 했다 한다.


  “엄마, 윤석열 대통령 알지? 그분이, 엄마가 가는 그 집(요양원)을 위해 돈을 이만큼 많이 마련해놨대. 그런데 그분 엄마도 지금 그 요양원에 있고, 내 친구 미정이네 엄마도 요양원에 있대”


  그런 얘길 하면서 요양원이 살기 좋다는 말을 구구절절이 읊어대며 엄마를 요양원에 보냈다는 것이다. 다행히 요양원에서는 친절하게 엄마의 활동사진을 찍어 보내주고 엄마도 프로그램을 재밌어한다고 한다.     

 

  “잘됐네요. 그곳에서 친구를 사귈 수도 있으니 혼자 집에 누워만 지내는 것보다 얼마나 좋아요?”     

  기자씨를 위해 맞장구를 치다가 둘째 언니 생각이 났다.

  ‘아, 언니 때문에 맘이 무거워서 그런가 보다.’  

   

   둘째 언니가 전화를 주었다. 

  “나 이~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카?”     


  늘 언제나처럼 다짜고짜로 꺼낸 둘째 언니 얘기는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어떤 환자가 허리에 시술을 받았는데, 시술 후 바로 허리를 펴서 걷더란 얘기였다. 둘째 언니는 오랫동안 허리를 굽혀 살면서도 운동을 안 해서 노화로 굽어진 건데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언니에게 그런 시술은 없다며 잘 알아보라 했다. 뒷날 다시 언니가 전화했다. 가톨릭 병원 의사가 신경성형술을 했으며, TV에 나왔으니 전화를 걸어 알아봐 달랬다. 할 수 없이 나는 유튜브로 신경성형술을 알아보고 결국 가톨릭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정말 허리가 펼 수 있을지, 무슨 처치를 받아야 할지, 금액은 어떻게 되는지, 담당과의 간호사 얘기로는 그 모든 것이 담당 의사의 진료를 받고 난 뒤에 결정된다고 한다. 수술할 경우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까지 내가 듣기에는 모든 게 부정적으로 여겨졌다. 나는 언니에게 그 설명을 하면서 내심 언니가 포기하길 바랐다. 그런데 언니는 의외로 진료만이라도 받겠다고 서울로 오겠다는 것이어서 할 수 없이 나는 진료 예약을 했다. 

  언니는 처음으로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와야 한다. 나는 둘째 언니보고 스스로 비행기를 예약하라고 했다.


  “니가 비행기 표 예약해 도라. 가서 돈 주마.”


  화가 뻗쳐올랐다. 언니는 말 한마디면 끝나지만, 나는 인터넷 뒤지랴, 가톨릭 병원에 전화하랴, 전화 연결이 잘 안 되어, 다시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랴 벌써 여러모로 지친 판이었다. 그런데 비행기 표까지 예약해 달란다.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다. 나는 화를 내며 비행기 표를 보낼 수 없으니 언니가 알아서 예약하라고 했다. 그러다가 마음이 약해져서 결국 내가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렇지만 둘째 언니가 핸드폰이 없으니, 키오스크를 사용해야 한다. 나는 다시 키오스크 사용하는 방법을 전화로 얘기했다. 

    

  “언니, 공항에 가면 네모난 화면인 키오스크를 찾아. 사람들이 거기 서 있을 거야. 가서 00 항공사를 찾아 버튼을 눌러. 그런 다음 불러준 예약 번호를 쳐서 넣어......”     

 그래도 안 되면 주변에 부탁을 해보고, 없으면 해당 항공사 데스크에 가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어차피 자주 올지 모르니 일단 키오스크 사용법은 익히도록, 말로 연습을 시켰다.    

 

  “기계 앞에 가서 00항공 찾고 예약 번호에 U7V53Z 치믄......”     

  언니의 대답이 제대로 되기까지는 몇 번이나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그런데도 걱정이 되나 보다. 언니가 서울 공항에서 나를 찾아야 하는데, 잘 못 찾으면 전화라도 해야 할 텐데, 핸드폰이 없으니 어떡한다? 어쩌면 그보다 더 걱정인 것은 앞으로의 일이다. 벌써 나는 둘째 언니를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해서, 나의 약속을 2개나 취소했다. 집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서 밥도 못 얻어먹고 있을 언니 때문에, 밖에 오래 머무를 수 없어서다. 


  만일 언니가 오랫동안 서울 병원으로 왔다갔다 하게 되면 나의 생활을 어떻게 되는 거지?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한다면, 내가 언니를 잘 모실 수 있을까? 매일 음식을 준비하고 생활해나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텐데...... 이런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이 머리를 흔들어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 같다. 잘못할 것 같고 그래서 우울하고 자신감이 없고 의기소침한가 보다.


  게다가 기자씨의 얘길 들으니 언니가 점점 늙어가면서 내게 의지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까지도 보태게 된다. 언니가 오래 살면서 치매나 누워 있게 된다면 요양원에 가야 할 텐데 그건 또 어떡하지? 한 달에 최소한 몇십 만원씩 드는 요양원비는? 중간에 병원엘 가야 한다면 누가 나서야 하나?


  이번 일은, 신경성형술을 받고 싶은 소박한 언니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나 하고 나중에 후회하게 될까 봐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뭘 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별별 걱정이 머리를 비집고 이리 틀었다 저리 틀었다 한다.     

  날이 흐릿하다. 마음은 더 어두워진다. 에휴, 한숨을 크게 내쉬고 고개를 뒤로 젖혀 본다.

  언니는 서울로 잘 올라올 수 있을까? 지팡이 집고 짐은 어떻게 하나? 서울에서 나를 찾는 게 무리가 되진 않을까? ......     


  어떻게든 되겠지. 

작가의 이전글 누가 등을 조금만 더 밀었더라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