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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May 10. 2024

언니의 복사뼈

둘째 언니의 두 팔은 그저 무기력하게 흔들거리기만 했다. 두 팔은 바닥을 딛고 서서히 고개를 내리며 엎드릴만한 힘이 없다. 할 수 없이 둘째 언니는 아예 얼굴을 병원 침대에 파묻힌 채 머리를 밀어내듯 몸을 부리며 엎드렸다. 


나는 언니의 양말을 벗겼다. 복숭아뼈가 있는 부분이 500원 동전보다 크게 구멍이 나 있고 벌겋게 드러난 살 위로 허연 뼈가 보인다. 양쪽 복사뼈 부근이 다 화상을 입었는데 그나마 한 곳은 심하지 않아 다행히 다 나았다. 간호사가 아픈 곳에 적외선 주파기를 들이대었다. 매일 하루에 10분 정도 광선치료를 시작으로 소독하고 약을 바른 지 석 달이 지났다. 그러나 화상 부위가 잘 좁혀지지 않고 여전히 진물이 흐르고 있다.


언니가 그렇게 된 것은 저온 화상 때문이다. 언니는 몸을 옆으로 돌려 잠을 잤고 가게에 사람이 오지 않을 때는 그렇게 누워서 가게를 봤다. 언니의 가겟방은 연탄보일러라 지금은 쓸 수 없는 상태로 남았다. 그 대신 언니는 방바닥에 전기장판을 깔아놨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게 누웠었나 보다. 내가 내려가서 발견했을 때, 언니의 전기장판의 센서가 고온에 있었다. 


“언니 매일 이렇게 하고 있었어?” 

“응”


가슴이 답답해졌다. 화가 나서 소릴 질렀다.

“아니, 밤에 잠잘 때는 취침에 놓고 자야지!”


언니는 두 눈만 끔뻑거렸다. 그러나 언니는 내가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모른다. 자신이 온도 센서를 조절하지 않아 계속 고온인 바람에 발목이 익었다고 생각 않는다. 남이 자기의 복사뼈 부근을 도려냈다고 믿을 만큼 언니의 망상은 심해져 있다. 아무런 핏자국이 없고 고통도 없이, 잠자는 새에 그런 일을 벌일 수 없다고 얘기해도 소용이 없다. 병이다. 그러니 언니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니는 그렇게 살다가 죽을 것이다.


모모 피부과에서는 피부 재생 주사를 더 이상 안 맞는다니까 그런 건지,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다고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할 수 없이 화상병원으로 갔다. 며칠을 입원해서 수술을 기다렸다. 그러나 노인이라 수술을 해도, 안 해도 6개월이 걸려야 낫는다고 한다. 결국, 수술 없이 피부의 재생 능력을 기다릴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드레싱만 잘 해주면 되는 것이었다.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돈도 별로 없는 언니의 주머니를 긁는 것 같아 씁쓸했다.


언니는 예순아홉, 아직 치매를 앓기엔 젊은 나이지만 치매가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근육에 힘이 없어 양치질도 힘들어한다. 언니가 지팡이를 사용한 지는 1년쯤 되어간다. 그러니까 언니가 자연스럽게 머리를 바닥에 댈 만큼 두 팔에 힘이 있었던 것은 1년쯤 전이라는 말이다. 언젠가부터 서서히 빠지기 시작한 근육을 지방으로 채워선지, 아무도 언니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했다. 언니 자신도 몰랐다. 그러다 임계점에 이르렀고 갑자기 언니는 지팡이를 짚고서야, 집 밖으로 나다닐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언니에게 밖에 나가 운동하라고 했다. 하다못해 헬스장에 돈 내고 가라고 했다. 돈을 내면 가게 된다고! 그럴 때마다 언니의 대답은 ‘그러마’고 했다. 그러나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니에게 운동하라고 말하던 나조차도 이렇게나 심각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제야 ‘사람들이 요양원에 가서 침대에 누워만 있다 보면, 움직일 힘이 없어 무기력하게 죽어간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어느 즈음부터였을까? 언니는 서서히 마음에도 병이 들었다. 망상이 심해져 있었다. 무엇이 먼저 찾아왔을까? 근육 무기력증일까? 망상일까? 집에서 혼자만 오랫동안 있으면서 병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홀로 있기 좋아해서 움직이지 않다 보니, 근육도 없어지고 뇌 속의 뉴런 사이의 연결도 끊어지면서 심리적인 병이 도진 것일까? 그러니까, 어쩌면 언니의 심리적인 병 때문에 운동도 못 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언니의 삶은 망가져 버렸다. 언니의 삶을 망가뜨린 것은 언니 자신일까? 언니에게 무심했던 우리의 잘못은 없을까? 그런데 우리 자매들도 각자 살기에 너무 바빴었다. 그러니 그저 속상할밖에. 아무에게도 기대려 하지 않았던 언니였는데, 이제는 뭔가를 하려면,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늙음과 병이 한꺼번에 들이닥쳤고 우리는 둘째 언니를 버거워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둘째 언니와 함께 있게 되면 번번이 화를 내게 된다.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까? 둘째 언니는 말이 없다. 

나는 헬스장에 가서 돈 쓰는 것도 아까웠어. 그렇게 집안 살림에 보탰다.

너희들에게 혹여나 부담 갈까 봐 꼭 필요한 때 외엔 전화도 못했어.

암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어머니 병수발도 거의 다 내가 했잖아. 참 힘들었어.

 ......


어쩌면 언니는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억울할 텐데, 가타부타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다 밤이 되어 잠이 들면 꿈을 꾸는지 계속 무슨 말을 하며 잔다. 낮에 못 했던 말을 잠자며 하는 것인지 모른다. 


제힘을 내지 못하고 팔을 흔들거리는 언니...... 앞으로 그 몸뚱어리를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나? 제 걱정하는 줄도 모르고, 둘째 언니는 곤히 잠들어있다. 오늘도 여전히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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