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바리우다 Jul 19. 2024

고참 교사 을순씨

 내가 을순 샘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출근 이틀째였다. 그녀는 나이가 서른이 넘는 노련한 여교사였는데 이름이 특이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그날 나는 4교시 될 때까지 1시간 수업을 하고, 내 업무를 파악하고 교재 연구를 했다. 대학원 생활 보다 여유가 있었고 교재 연구도 즐거워 시간은 잘도 흘렀다. 점심시간에는 근처 식당에서 백반을 배달해주었다. 나도 거기에 동참했다. 남, 여 구분 없이 8명쯤 둘러앉았다. 남자 교련 선생님이 친절하게 국을 퍼주면서 말씀하셨다. 


“이 집 아줌마가 손맛이 좋아요. 먹을 만할 겁니다.” 


그분은 서글서글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꺼냈고 그 덕분에 어색함이 없이 식사 시간이 지나갔다. 점심 후 갑자기 직원 조회가 다시 열렸다. 갑자기 중간발령으로 국어 담당인 을순 샘이 떠나게 되었고 대신할 신규 교사가 왔기 때문이다. 그때야 나는 을순 샘의 존재를 알아보게 되었는데, 그녀는 마침, 내 앞에 있는 환경과에 자리하고 있었다. 


을순 샘은 검소하게 코발트색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작은 키 임에도 목소리는 당찼다. 그녀는 이렇게 정신없이 발령 나기는 처음이라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신참 국어교사가 그 옆에 와서 섰다. 그녀로부터 자리와 담임을 넘겨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을순 샘은 급히 짐 싸느라 그런지, 학급에 대한 안내나 당부 없이, 책과 출석부와 교무 수첩만 남겼다.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 나 같으면 마음이 뒤숭숭할 텐데도, 신참 국어교사는 나와 달리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날 오후 6교시 정규 수업이 끝나고, 이임 및 부임 인사를 하기 위해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였다. 맨 처음엔 을순 샘의 이임 인사가 있었다. 그녀는 당찬 목소리로 도중에 떠나서 미안하다며 새로운 선생님이 더 잘 해주실 것이라고 인사를 마쳤다. 표현을 않는 건지 몰라도 학생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왠일인지 서운해하는 아이들이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담임이 너무 무서워서 그럴까? 나까지 무섭게 느껴진 걸 보면. 그런 생각을 얼핏 했다. 나도 단상에 올라서 인사를 했다. 무슨 얘길 했는지는 기억에 없으나 나를 쳐다보던 눈길이 순수하고 따뜻했다고 기억한다. 그게 그날이었는지, 아이들과 정을 나누며 축적된 기억인지는 모르겠다.


식이 끝나고 교무실로 돌아왔다. 약간은 어수선한 가운데, 떠나는 을순 샘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춘천으로 가게 되어서 신이 난 모양이었다. 춘천에서 아침마다 일찍이 출퇴근하던 동료들은 부러워하며 그녀에게 덕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녀는 당당하고 자신 있는 표정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축하를 받았다. 내 옆에 앉은 짝꿍 영어 선생님이 작은 목소리로 그녀의 아빠가 모 대학 교수라며 그녀가 새로 생긴 자리에 뽑혀 간다고 말해 주었다. 단단한 백(back)이 있는 그녀가 나는 부러웠다. 나도 그런 백이 있다면 그저 원하는 연구나 하며 대학원에서 자리를 잘 잡고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던 가운데 교무실 문 가까이에 있던 여교사가 지갑이 없어졌다는 볼멘소리를 했다. 분명 집에서 갖고 나온 것 같은데, 이상하다는 것이다. 모두 운동장에 나갔었고 막 운동장에서 돌아온 뒤였다. 교사들은 교무실에 누가 왔다 갔는지 아무도 몰랐기에 대책이 없어 보였다. 모여있던 사람들이 흐지부지 흩어졌다. 해당 부서 사람들이 함께 이리저리 뒤적이기는 했지만 잃어버리면 찾을 길이 없는 것 같았다. 나도 그냥 어색하게 엉거주춤하고 있었다. 


 환경부에 앉은 여자 교련 선생님이 목소리를 낮추며 넌지시 말을 했다.

  “아무래도 A 아저씨가 아닐까? 지난번 도난 사고 때, 그 아저씨가 교무실에서 나오는 걸 봤다고 하잖아.”


  진행되는 얘기로 보아 학교 아저씨 중 한 명을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짐을 싸던 을순샘이 말을 받았다.

  “그러게. 나도 한번 털렸어. 벌써 몇 번째야?”


 짝꿍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도난 사고가 여러 건 있었다면서 내게 주의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자 교련 선생도 요주의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당시엔 친절하고 서글서글하게 말을 잘 섞는 선생님이 요주의라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진 않았다. 나중에 그가 여러 학생의 수업료를 받아 챙겨 넣고서는 입을 씻는 사건이 생겨서야, 참뜻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기성이 농후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부임한 후에 교무실에서의 도난 사고는 한 건도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2년 뒤 어느 날, 같이 발령받은 신참 교사와 잡담을 하던 때였다.


“우리가 발령받던 날 있잖아, 그날 도난 사건 있었지? 그거 떠나간 을순 선생님 짓이었어!”

정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는 듯했다. 그녀는 입심 좋게 최근의 일이라며 내게 얘기해주었다. 


을순 샘은 생리할 때마다 도벽이 도져서 여러 번 다른 사람 물건을 훔쳤나 보다. 그러다 꼬리가 밟혔고 수상히 여기던 그 학교 선생들이 현장을 덮쳤다고 한다. 그래서 휴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학교 안도 세상 어디서나 그렇듯 얼룩덜룩한 일들로 뒤섞인 곳이라는 것을 세월과 더불어 알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야자밥이 들어올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