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교에 정식으로 등교하던 날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검은 아스팔트 군데군데에 흙 부스러기들이 물방울을 튀기고 있었고 사위는 깊은 한숨에 내려앉았다. 교문을 들어서자 운동장 가운데 비만 가득 내리고 있었다. 이미 아이들은 교실에 다 들어가 있는지 조용하고 쓸쓸했다. 흔들리는 마음을 겨우 붙잡고 교무실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교무실 문을 열면서도 떨리지 않았다. 그저 ‘이곳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어머니의 간곡한 설득에다 면제받았던 대학 수업료를 되갚을 현실적인 능력이 내겐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연구자를 꿈꾸다 중지하게 된 대학원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무엇보다 난생처음 낯선 곳에서 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무거웠기에, 첫 출근을 하면서도 설렘은커녕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교감 선생님께 인사를 했다. 교원이 증원된 자리라 학교 아저씨가 급하게 책상 하나를 날라왔다. 기존에 있던 선생님들이 책상이며 의자를 조정해서 내가 위치할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과학과였다. 내 앞 좌석엔 나이든 생물 선생님이 앉아있었다. 얼굴이 거무튀튀해서 아파 보였으나, 부드럽고 편안한 인상이었다. 그분에게서 생물 수업을 더러 넘겨받았다. 남자 과학 과장님이 친절하게 선생님들 소개도 하고 이것저것 설명도 해주셨다. 과장님이란 말이 낯설었지만, 당시는 그렇게 불렸고 그 후로 몇 년 지나고 나자 부장님으로 존칭이 바뀌었다. 그냥 평교사지만, 직위를 좋아하는 우리나라의 문화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오후 6교시 첫 수업! 교실에 들어섰다.
진도가 어딘지도 모르고 아무런 준비가 없던 터라, 자기소개하고 질문을 받기로 했다. 어떤 아이가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첫사랑 얘기해주세요.”
대신 나는 그동안 대학원 연구실에서 무엇을 했었는지 얘기했다. 어떻게 모기를 키우고 번데기를 채집하는지, 소간은 어떻게 장구벌레의 먹이로 둔갑하는지, 제 때에 채집하지 못하고 날려버린 모기 때문에 어떻게 선배에게 혼이 났는지 등 겪었던 상황들을 말해주었다.
60여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하나같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서는 온통 집중해서 내 말을 들었다. 갑자기 교실에 있는 온 존재가 순수하게 눈을 빛내며 나를 힘껏 빨아들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중심에 연구실에서보다 훨씬 생기있는 내가, 펄펄 살아있는 내가 있었다. 아이들이 급작스럽게 좋아졌다. 그렇게 한 시간 만에, 나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것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아이들은 결코 무섭게 되바라지거나 제 또래 젊은이라고 나를 얕잡아 보는 게 아니라, 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잘 따라주었다.
교감 선생님은 집을 구했냐며 개인적인 일상사에 관심을 보여주어 고마웠다. 선배 교사들은 서글서글하고 친절하게 다가왔다. 다만 다들 바빠 보였다. 오후 모든 수업이 끝나고 학교가 파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젊은 선배 교사가 하는 낯선 말이 느닷없이 내 귀에 들어왔다.
“야자밥이 들어올 시간이 되었네. 내일부터 선생님도 먹어야 할 거예요!”
야자밥이 야간 자율학습을 지도하는 교사에게 제공하는 밥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우리 고교 때와는 달리 매일 아이들은 야자를 한다는 것도.
신 참 교사의 학교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