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끓인다. 밥사발에 달걀을 까서 그릇째 끓는 물에 넣는다. 보글보글 김이 오르는 냄비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적당히 익기를 기다린다. 꺼내어 잡곡밥 한 숟갈에 간장과 참기름을 넣어 섞는다. 에이 이 맛이 아닌데...... 분명 어머니 표 부빈밥(비빔밥이 아니다. 간장과 참기름과 달걀이 전부인 밥이다)은 윤기가 좔좔 흐르고 노란 달걀빛이 돌며 입안에 미끄러지게 들어가는, 고소하고 향긋한 밥이었다. 그냥 보리밥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달걀 부빈밥의 냄새는 내 침샘을 한없이 자극했었지. 예전처럼 밥 짓는 도중에 솥뚜껑을 열고 달걀 종지를 넣을 수는 없어도 끓는 물에 비슷하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 냄새와 그 맛이 안 나는 걸까?
우리 집에는 달걀을 낳는 암탉이 한 마리 있었다. 닭이 꼬끼오하고 울면 나는 달걀을 찾아 나섰다. 지푸라기가 어지럽게 흩어져있는 헛간을 뒤지다 짚풀 사이로 봉긋한 달걀이 보였다. 그러면 나는 거대한 보물을 발견한 듯이 기쁨에 차서 달걀을 두 손에 안고 어머니께 달려가곤 했다. 대여섯 살 난 내 손 가득 들어있는 달걀은 늘 신기한 무엇이었다. 어떤 때는 아직도 말랑하고 따듯해서 놀라와했던 기억이 있다.
이 닭이란 놈도 그렇지만 오리라는 것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알을 낳으려고 얼마나 애쓰는지 모른다. 우리 집 밖거리(바깥채)에 집을 빌려 사는 처녀 회장님(성당 사무원)은 오리를 방목하여 키웠는데 그 오리들은 강당 밑바닥에 네모지게 뚫려있는 공기 구멍으로 들어가서 알을 낳았다. 구멍 안은 시컴컴했고 구멍 폭이 좁아 어른은 들어갈 수 없어서 회장님은 날 보고 들어가서 오리 알을 꺼내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나는 뱀이 나올지 모르니까 무서워하면서도 어떻게든 기어들어가 껌껌한 바닥을 손으로 헤집으며 알을 꺼내오곤 했다. 그렇게 부탁을 들어주었는데도 오리 알 하나를 얻어먹은 기억이 없는 걸 보면, 그녀 또한 자신의 단백질을 채우느라 여유가 없었으리라.
누군가 결혼식이라도 올리면 그 집에 모여 음식을 만들었는데 음식을 만들러 가는 엄마께 아이들이 했던 말이 “독새기(달걀) 받아다 줍서 예~(달걀 좀 싸오세요)” 였다. 그랬는데도 달걀을 얻어오는 경우는 흔치 않았을 만큼 내가 살던 제주도의 시골은 달걀이 귀했다.
어머니는 유일한 달걀로 부빈밥을 만들었다. 부지깽이를 달그락거리며 보리밥이 다 익을 즈음, 솥 가운데에 달걀을 깨어 넣은 밥공기를 들인다. 잠시 뜸이 들고 나면, 거기에 갖 지은 보리밥을 넣고 간장과 참기름을 섞으면 완성되는 부빈밥은 막내인 남동생 차지였다. 어두룩한 정지(부엌)에 서서 어머니의 부빈밥을 쳐다보며 침을 꼴깍꼴깍 삼키면서도 나는 부빈밥을 달라고 떼를 쓰거나 보채지 않았다. 남동생은 딸 부잣집의 유일한 아들이었고 나는 그가 우리 집안에 너무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새기며 철이 들었다. 그러니 그렇게 귀한 음식은 내 차지가 될 수 없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 대신 나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한껏 향기를 들이키고는 밥솥 가운데 공기가 얹혀있던 자리의 밥을 먹었다. 동그랗게 표시된 그 밥은 다른 자리의 밥보다 어쩐지 선택된 자의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맛이 남달랐던 것 같다. 어쩌다 착한 남동생에게서 부빈밥 한 숟갈을 얻어먹었던지, 내게는 그 부빈밥의 향긋하고 맛있던 기억이 가슴 깊이 새겨져 아직도 지워지지 않나 보다.
부빈밥을 만들어보면, 추억 속의 그때가 떠오르고 대여섯 살의 내게로 되돌아가 맛있는 부빈밥을 먹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한 가닥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부빈밥을 한 입 먹어본 순간, 달걀맛 나는 그저 그런 밥이었을뿐, 아무런 감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추억의 맛도 여섯 살 아이도 거기엔 없었다. 그저 내 눈앞에 보이는 건 초라하게 비벼진 달걀 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부빈밥을 먹으며 잘 먹어보지 못한 결핍을 채우려던 것은 사실 어머니의 충분한 애정을 받아보지 못한 것에 대한 어린 나의 갈구일지 모른다. 그런 결핍은 어쩌면 나를 성장시키는 촉매였으리라. 그러나 내 안의 길은 깊고 오묘해서 들여다보기 아득한가 보다. 그저 가만히 달걀 밥에서 흘러나오는 참기름 냄새를 맡으며 그 옛날의 추억 속으로 걸어가 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