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돌아가지 못한지, 3년째이다. 교육 봉사를 한다고 빠져나왔다가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쉬고 있는 셈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가야 하는데, 가야 하는데, 하다가 목요일에 무슨 행사가 생기고, 이거 끝나고는 꼭 가야지 하다가 놓치면서 세월만 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냥 놔 버리면 되는데 그러지 못한다. 가야만 한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건 무슨 부채 의식일까?
가끔은 바오로씨가 생각난다. 처음 그가 호스피스 병동에 왔을 때는 매우 건장해 보였다. 다소 핏기가 없었을 뿐 걸음걸이가 너무나 씩씩해서 링겔병을 밀고 다니면서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암은 천천히 바오로씨를 좀먹어 갔다. 몸도 점점 말라갔고 목소리도 가늘어졌다. 어떤 날 그는 왜 빨리 나를 데려가지 않나? 라며 화를 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를 위해 ‘병자를 위한 기도’를 바치면, 공손히 손을 모으고 함께 기도를 올렸다. 역시 더 살고 싶은 것 같았다. 그러다 3개월이 넘어가자, 그는 다른 병원으로 전원이 되었다. 나보다 젊은 50대였다. 지금쯤 그는 하늘나라로 갔을 것이다.
그보다 훨씬 젊었던, 30대 후반의 미영씨는 유방암으로 들어왔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보던 날 그녀는 눈을 감은 채, 희미하게 몸을 뒤틀며 아기처럼 계속 칭얼대고 있었다.
“엄마, 아파, 엄마, 아파, 아... 힘들어”
......
“누구나 언젠간 하나님께 간단다. 아가야 먼저 가 있거라. 우리도 곧 따라갈테니~”
그녀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달래듯 말하는, 그녀 엄마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반짝하고 좋아졌을 때, 그녀는 발 마사지를 기쁘게 받으며 생기 있는 목소리로 돌아와 교회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 때의 그녀는 거의 건강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 달이 채 못되어 암 병동에서 그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 젊은 나이에.
동생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제 동생은 조카의 핸드폰에서나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좋아하는 술을 막 마시고 났는지, 딸의 팔에 감싸여 있는 동생이 참 기분 좋아 보인다. 그러면 나는 전화를 걸어 한마디 하고 싶어진다. ‘덕아, 많이 마시지는 마라.’라고. 조카는 외쳤었다.
“큰고모부는 암이긴 하지만 아직 시간이 있잖아요. 천천히 이별할 시간이...... 우린 끝났잖아요!”
그 말이 계속 생각난다. 맞다. 차라리 아파서 앓다가 죽어갔으면 덜 애통했을지 모르겠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별하는데 시간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조카가 원통하듯이 외쳤던 큰 형부(조카의 큰고모부)도 하늘나라로 갔다. 혈액암이었지만 방사선 치료 후 예후가 좋았었는데, 한꺼번에 독감과 코로나 백신을 맞던 날 갑작스럽게 호흡곤란이 오면서 사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살려고 애쓰던 노력이 더 빨리 죽음을 불렀던 걸까? (사후 부검을 하지 않아 정확한 원인은 알지 못하나 식구들은 그 탓으로 생각한다.)
이렇듯 죽음은 늘 내 주변에서 맴돌고 있다. 아직 찾아오지 않았을 뿐 보이지 않는 친구처럼 내 옆에 나란히 나와 함께 걷고 있다. 그러나 나의 욕망은 현재의 삶을 향해 있고 오늘도 나는 은행 이자를 계산하면서 어느 곳이 더 이자를 많이 줄까? 찾아 헤매는 데 다른 그 무엇보다 더 열을 올린다.
언제쯤 바뀌게 될까? 이런 나의 태도가......
예전에 남편과 부부 싸움을 심하게 했을 때가 생각난다. 그것도 돈 때문이었다. 아파트를 팔고 다른 것으로 갈아타려고 했는데, 맘과 뜻대로 안 되었다. 대신 남이 깍아 달라는 대로 더 싼 값에 남편이 아파트를 처분해 버렸을 때였다. 대판 싸움을 하면서, ‘이젠 이혼이야’라고 선언하던 때, 남편이 창백한 얼굴로 알았다며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날밤 씩씩대면서 십자고상 앞에 앉아서 원통하다고 억울하다고 기도랍시고 주저리주저리 맘속으로 퍼부어댔다. 그러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그 자리 아래서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커다란 칼이 내리꽂히듯 종이 하나가 내 가슴으로 떨어졌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있었다.
“ 네 이웃을 사랑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아라! ”
나는 금방이라도 죽음이 내게 닥칠 것처럼 공포에 질려, 남편을 깨우고서는 내가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 경험은 너무나 생생한 것이어서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때 느꼈다. 신에게 바치는 기도는 절절하기만 하다면, 정말 응답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신의 음성은 소리로만 오는 건 아니란 것도.
그런데 그 사건으로부터 15년이 지났다. 오래돼서일까? 나는 내 주변의 이웃을 돌아보는데 더 인색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헌금도, 기부도, 작은 마음 씀도 말이다. 그러는 동안에 내 주변에서 점점 죽어가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있다. 손잡을 시간이 점점 가까이 온다.
어쩌면 그 때문에 내가 ‘호스피스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