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희와 나무와 지렁이

by 비바리우다

사진 속의 그녀는 생기 넘치는 20대 청년이다. 졸업식 가운이 잘 어울리네! 참 다행이다. 그녀의 이름은 난희, 그녀와 이별한 것은 9년 전, 그녀가 고2 때였다. 난희는 과학부장을 맡아서 숙제를 걷는다던가 노트 검사 도장을 대신 찍어주던가 등의 일로 나를 도와줬었다. 게다가 그녀는 과학동아리 부장을 맡고 있었고 열심히 맡은 일을 잘했다. 활달하진 않았어도 마주치면 늘 웃는 얼굴이었다.

그해 초여름, 하늘에 구멍 난 것처럼 비가 퍼붓던 날, 학의천의 냇물이 도로에 넘쳤다. 며칠 후 산책 때 보니, 냇가의 풀들은 더러 휩쓸려 내려갔고 더러는 하류로 몸통을 꺾인 채 헝클어져 있었다. 걷다가 학의천 중간에 뿌리가 거덜난 것 같은, 온몸이 패대기쳐진 듯한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버들인지 뭔지 이름도 잘 모르겠는, 그저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였다. 두껍지는 않았으나 키가 1m는 돼 보였다. 어쩌다 냇물에 조그만 모레톱이라도 생겼는지, 개천 중간 볼록하게 나온 곳에 씨가 떨어져 용케도 커왔던 놈인듯 싶었다. ‘에이 곧 죽겠구나!’ 고 생각했다.


매일 해가 지기 전의 산책길이라, 뒷날도 또 뒷날도 나갔다.

‘어라, 아직도 뽑혀 나가지 않고 그곳에!’

나무는 흐르는 물에 머리를 처박고, 여전히 붙어 있었다. 가상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그 녀석이 내 희망이라도 되는 것마냥, 그곳을 지나치기 전 개천을 향하여 서서 누워있는 녀석을 바라보며 맘속으로 외쳤다.


‘일어나라, 일어나! 힘내자, 잘하고 있어!’


마치 내 말이라도 알아들을 것처럼 내 눈에다, 배에다 힘을 주며 속으로 외쳐 대었다. 나무는 내 말을 들었는지, 조금씩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하더니 두 달쯤 지났을까? 물속에서 몸을 일으켜서는 당당히 온몸을 곧추세웠다.



언제부터인가 난희가 가끔 지각이나 조퇴를 하기 시작했다. 성실한 그녀가 이상하다고 여기던 중 담임으로부터 의외의 말을 들었다. 그녀가 자신의 팔목을 면도칼로 긋는다는 것이었다. 성적에 대한 강박이 심해져서 불안하면 제어하지 못하고 자해를 하나 보았다. 안타까웠다. 어째야 좋을까? 나한테 털어놓은 것도 아닌데 불러다 대놓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동아리 시간에 사진 몇 장을 들고 갔다. 학의천에 있는 그 나무 사진이었다. 나는 동아리 아이들 앞에서 그 나무가 폭우에 어떻게 쓸렸었는지, 그리고 다시 어떻게 붙잡고 일어섰는지 얘기하면서 ‘살다 보면 힘들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고 힘주어 말했다.


그래도 난희의 조퇴는 계속되었다. 그때 나는 아침마다 나자로 마을에서 미사를 보고 학교로 출근했었다. 아침 미사 가던 길, 아파트 화단 근처에서 지렁이를 보았다. 발을 떼고 가려던 찰나, 뭔가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지렁이 등이 더러 터져있었다. 그런데도 지렁이의 앞몸은 필사적으로 어디론가 가려고 움찔대고 있었다. 시멘트 블록들이 깔려서 쉽지 않은데도! 아무래도 그곳에 있다가 누가 더 밟기라도 하면 끝장날 것 같아 풀 잎사귀를 이용해서 담아다가 화단 흙이 보이는 곳에 내려놨다. 잠시 후 지렁이 머리가 땅 쪽을 향하여 움직이는 것 같았다. 미사를 끝내고 돌아올 무렵, 혹시나 해서 다시 봤더니 지렁이 몸은 거의 땅속으로 들어가있었다. 옳지! 살았구나! 신바람이 나서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뒷날 난희를 불러 지렁이 사진이 들어있는 편지와 묵주를 주었다.

“건강이 좋아지면 다 잘될 거야. 내 편지 읽어보렴. 힘내!” 하면서.


그리고 다음날 난희는 교무실로 나를 찾아와서는 불쑥 말했다.

“선생님, 저 자퇴해요.” 라고.


자퇴하는 날, 나의 오후 수업에 난희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책 읽기를 시켰다. 그리고 난희는 식혜 1병과 엽서를 내게 선물로 주고 갔다. 그렇게 힘들어하던 학교를 떠난 것이다.


세월이 흘러, 학의천이 정리되면서 그 나무도 모래톱도 파헤쳐져 버렸다. 그 지렁이도 지금은 죽고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난희는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엘 가서 원하던 과학도로 멋지게 성장했다. 지금 내 앞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그걸 보여준다. 증류수를 들고 활짝 웃는 모습이, 들로 나가 작업하다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씩 웃는 모습이, 온실에서 실험에 열중하는 모습도 모두.


학의천의 나무와 지렁이가 어떻게든 살아내던 모습이 난희에게 용기를 주었던 것처럼, 이제 청년 난희가 용기를 주는 것 같다.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당당하게 선 그 모습 자체로 내게 말하는 것 같다. 늙어간다고 너무 기죽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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