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일로 오십 써.”
어리둥절한 우리를 끌고 조카는 리셉션 홀로 들어갔다. 혼주인 조카는 연신 싱글벙글한 표정이다. 결혼식장과 리셉션 홀이 연이어 있어서 먹다가 결혼식을 올릴 참인지, 여기저기 앉아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로 홀은 북적이고 있다. 조카가 이끄는 대로 나와 셋째 언니 그리고 셋째 형부가 테이블에 앉았다. 일단 결혼식 전이라 간단히 과일을 먹으며 언니의 얘기를 들었다.
“복자언니가 있으면 정말 좋아해실 껀데이......”
복자언니는 해녀였다, 80이 되도록 해녀 생활을 하던 언니는 1년 전에 갑자기 바다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물질(해녀 일) 나갔던 언니가 갑자기 심장마비가 왔는지 어쨌는지 둥둥 떠 있는 것을 경찰이 발견했을 따름이다. 매일 일만 하던 언니는 죽는 날도 일만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언니는 유순하면서도 근면한 사람이었고 일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불행하진 않았으리라. 다만 언니가 평생토록 쌓아왔던 재산은 새 아빠를 거쳐 언니와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그 아빠의 자식들에게로 이전될 것이다. 언니의 전 인생을 나타내는 유산인데 아들에게는 한 푼도 안 가다니, 좀 안타깝다. 그 돈에 인연이 없던 겐지......
복자언니는 갱생이네 신방(무당)집 밖거리에 빌려 살았어, 신방이 일본에 굿하러 간 동안에 그 아들 갱생이가 어머니의 신주 단지를 깨려했대. 그때 복자언니가 보고 말렸는데, 그 힘을 못 이겼대. 결국 갱생이가 마당으로 신주단지를 던졌는데, ‘팍’ 하고 터질 때 언니가 크게 놀랐나 봐.
왠지 그때부터 정배(복자언니 아들)가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귀신이 노여웠는지 말이야. 언니는 그 신주단지가 터지면서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나사로 병원엘 갔더니 뇌염이라고 하더래. 정배는 10일 넘게 거기 입원했다가 퇴원하고서도 누워있어야 했어. 그런데 그 후 복자언니가 갑지기 실성한 거야. 내가 수협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나는 언니를 우연히 봤어. 가슴을 벅벅 긁으면서 신발도 없이 걸어가는 것을 말야.
수협 직원이라 배가 출항했다가 들어오면 나가서 검사해야 해. 그럴 때마다 선주에게 사정해서 옥돔을 얻어다 죽을 쒀서 복자언니께 갖다줬어. 실성한 언니가 뭘 할 수 있었겠어? 그러다가 성당 수녀원이 비었길래 신부님 허락을 받아 복자언니네를 수녀원으로 이사시켰어. 아무래도 무당집에 있다 보니, 일이 생긴 것 같아서 말이야. 리어카를 끌고 언니네 짐을 옮기느라 고생깨나 했었지.
그러기 전에 제주 동문 성당서 성령세미나가 있었어. 귀신을 떼어야 정신을 차릴 것 같아서 복자언니를 신부님 차에 태우고 다른 청년 2명과 함께 성령세미나를 갔어. 첫날은 복자언니가 안 들어가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을 겨우 밀어 넣었는데 글쎄, 성당 안에 불이 가득 차서 무섭다고 하는 거야. 첫날 장퀘틀에 앉은 언니를 보니, 덜덜 떨더라. 그래도 이틀째는 좀 안정되었고 삼일째엔 잘 들어갔어. 마지막 셋째 날, 언니는 성당의 제단 쪽에 키가 똑같은 어린 학생들이 여럿이 모여 찬송가를 부르는 환상을 봤대. 그래서 마음이 평온해지더래. 이상도 하지. 신주단지 깬 사람은 가만있는데, 옆 사람이 갑자기 실성하지 않나, 나는 볼 수 없던 성령의 불이 활활 탄다고 하질 않나...... 실성한 언니는 보았다고 하니까! 아무튼 언니는 그 세미나 후에 정신이 돌아왔어. 그때 맨 처음 복자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가 생명이어이”
그래서 셋째 언니가 가끔 제주도로 내려갈 때면 복자언니는 어김없이 미역이며 톳, 전복이나 보말 등을 챙겨가지고 셋째 언니를 만나곤 했다. 복자언니가 죽을 때까지, 그런 관계가 끊임없이 셋째 언니와 복자언니를 이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복자언니는 우리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이다. 복자언니가 어릴 때 애기업개 노릇을 하면서 우리 집과 인연을 맺었고 그렇게 우리의 언니가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상주 노릇을 해서 비석에도 딸로 새겨져 있다. 어쩌다 맺어진 사이가 평생 인연으로 남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언니의 아들 정배도 우리의 조카가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조카 큰 딸의 결혼식까지. 어떤 인연은 이렇게도 대를 넘어서 오래 이어지는 것 같다.
신랑 신부 친척들 사진을 찍으라는 소리에 우리도 참여했다. 복자언니를 생각하며. 언니도 우리를 보며 기쁘게 웃고 있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