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희의 공책을 펼치면 단정하게 내려쓴 글씨로 볼펜 똥 자국 하나 없이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너무나 깔끔해서 흠 하나를 입히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나는 한 귀퉁이에 ‘사랑’이라고 슬쩍 적어 놓았다. 며칠 후 옥희는 어떻게 알았는지, 공책에 낙서를 한 게 너니? 라더니, 접힌 쪽지를 내게 건네주었다.
“경수가 이거 너 주래.
나는 옥희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한 짓이 쑥스럽고 창피해서 그냥 쪽지를 받아 들고 돌아섰다. 딱지 모양으로 접힌 쪽지를 펴보니 좋아한다며 사귀자는 연애편지였다. 경수도 나도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사이였는데, 이 무슨 일인가? 아무래도 옥희가, 자기 이름만 지우고 나로 바꿔 넣은 것 같았다. 공책에다 낙서한 것에 대한 복수로 나를 물먹이려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 잘못도 있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날부터 나도 정성을 들여 깔끔하게 공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옥희는 피부가 깨끗한 데다 콧날도 오똑하고 스마트 학생 복지로 만든 새 교복이어서 단정하고 예뻤다. 공부뿐만 아니라 글짓기도 그림도 우수해서 학교 대표로 뽑히는데도 단연 으뜸이었다. 나는 언니들이 입었던 교복을 물려받은 데다가 하얀색 칼라까지 후줄근해서 어머니께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밭일하랴 소 키우랴 자식 돌보랴 정신없는 어머니가 속상할까 봐 투정을 부릴 수가 없었다. 옥희의 엄마는 다진 양파를 섞은 달걀부침을 해서, 옥희가 예쁜 도시락 반찬 통을 열 때마다 늘 향긋한 양파 냄새가 나곤 하였다. 그에 비해 나의 양은 도시락에는 짠 마농지(마늘 장아찌)와 냄새나는 김치만 담겨있었다.
그래도 함께 잘 지내던 중, 가사 실습 과제로 후리아 스커트를 만들어 오란 때였다. 천을 끊어서 자기 몸에 맞게 재단하고, 세발 뜨기 바느질로 치마 단을 완성하는 거였다. 봄이라 어머니가 밤낮으로 정신없이 일을 해서 천을 끊어올 새가 없었다. 그런 나에 비해 옥희는 맏딸이라 엄마가 화사한 천으로 후리아 스커트를 만들어주었는데, 세발 뜨기 솜씨가 옥희 작품이라고 하기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너무나 가지런했다. 그러나 나는 천이 없어서 언니가 무늬가 서로 다른 보자기 2개를 붙여서 후리아 스커트를 만들어주었는데 보자기 천이 얇아서 세발 뜨기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밤늦게까지 겨우 작품을 마치고 학교에 가져갔다. 수업 시간에 검사를 시작하는데, 가사선생님은 옥희 것을 보더니 좋은 작품이라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내 작품을 보고는 웃으며 던지던 한 마디가 가시처럼 마음에 콕 박혔다.
“정이는 이거 입고 오일 시장통을 한 바퀴 돌아사켜!”
그 말이 그렇게 강하게 나의 콤플렉스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 후 나는 가사 실습 시간이 가장 싫은 시간이었고 과목 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이 가사였다. 얼마나 나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렸는지, 속으로 나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나랑 제일 친한 친구는 저렇게 이쁨을 받는데, 나는 웃음거리나 되다니! 그래서는 안된다. 나의 자존심을 세워 줄 뭔가가 필요하다. 나는 각오했다. 그래, 공부에서만큼은 옥희를 이기자, 해보자, 까짓꺼! 국민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공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던 내가, 옥희와 친해지면서 공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때부터는 옥희를 넘어설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에서도 초등학교 때처럼 역시 옥희가 전교 1등을 차지했다. 다시 결심했다. 안 되겠다. 시험 때만 공부해서는! 미리미리 공부를 좀 더 해둬야지. 그때부터 시험 때가 아니라, 평소에도 집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이든 적은 시간을 투여하고도 빨리 습득하길 바랐다. 다른 과목은 다 그렇게 되었다. 국어도 영어도 과학도 사회도. 그런데 수학만큼은 머리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풀기도 싫었다. 국민학교 저학년 때 학교에도 가지않고, 너무 실컷 놀았던 탓인지 숫자 계산이 자꾸 틀려서, 문제를 푸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잠이 많은 것도 역시 힘든 문제였다. 집에 와서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어머니 일도 도와드리다 보면 저녁이 되었고 저녁을 먹고 나면 이내 졸음이 쏟아져 공부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그냥 있을 수 없는 일, 나는 졸음을 쫓기 위해 볼펜으로 허벅지를 찌르며 공부를 했다. 드디어 기말고사가 돌아왔고 내 성적은 거의 옥희를 따라잡았다. 그러니까 전교에서 1, 2등을 다툰 셈이다. 그 정도가 되자 선생님도 아이들도 다 나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공책은 친구들이 빌려달라고 청하는 횟수가 많을 정도로 인기 있게 되었다.
겉으로는 한 번도 옥희와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친구들과도 무던하게 잘 지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옥희에 대한 경쟁의 칼날을 늘 갈고 있었다. 그에 비해 옥희는 중 2학년을 거치면서 사춘기를 헤매느라 성적이 떨어져 갔고 점점 안 좋은 소식이 내 귀에 들려왔다. 그러자 옥희를 앞질러도 기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친구가 맨 앞자리를 차지했고 나는 그녀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친구와의 추억도 내 가슴에 남아있지 않을 만큼 밋밋하게 생활하면서 그저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중앙 무대에 남아있기 위하여, 학교라는 경쟁의 무대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