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입학식 날은 춥고 낯설었다. 게다가 크고 헐렁한 교복을 입고 얼차려를 엄하게 자꾸 시키는 바람에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따뜻하고 안락했던 국민학교 때와 달리 낯선 곳에서 온 친구들이 많아 정이 안 갔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6학년때 삼총사였던 선영이와 옥희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고 셋이서 교사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체육실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 탁구대가 빈 것을 발견했다. 빨간 라켓과 동그랗고 하얀 공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탁구 쳐 보카?”
그렇게 해서 탁구를 치게 되었다. 처음엔 한번 공을 넘기는 것도 어려웠다. 탁구대에 공을 튀겨 상대편으로 보낸다는 것이 공중을 날아 탁구대를 넘어 저만치로 떨어졌다. 그러면 부지런히 뛰어가서 공을 잡아다가 다시 반대편으로 보낸다. 또 공이 탁구대를 넘어 도망간다. 다시 잡으러 간다. 이건 달리기 운동을 하는 것인지 탁구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또각거리는 탁구공 소리도 달리기 하는 것도 셋이 하다 보니 재밌었다.
우리는 다음 날도 또 다음날도 탁구장으로 갔다. 드디어 공을 튀기고 넘기면 탁구대 안에 떨어졌고 받아서 상대편으로 보낼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자 점점 더 재미가 들렸다. 수업이 끝날 즈음엔 탁구 선수인 친구가 짬을 내어 우리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때 비로소 탁구 빠따(라켓을 그렇게 불렀다)를 어떻게 잡는지, 서브는 어떻게 넣는지 등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드디어 우리는 후보선수처럼 매일 학교 체육실에 들러서 연습도 하고 함께 게임도 했다.
4월 중순이었을까? 그날도 점심시간에 재빨리 도시락을 해치우고 우리 세 사람은 탁구장으로 갔다. 신나게 탁구 치는데 5교시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할 수 없이 교실로 돌아가 부리나케 책상에 앉아 과학책을 꺼냈다. 그런데 과학 선생님이 들어오지 않으셨다. 한 10분쯤 후에 반장이 선생님이 지금 바쁘니 자습하라고 했다. 내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그렇게 재미있는 탁구를 놓고서 할 수 없이 기어들어 왔는데, 수업을 안 하다니! 책을 펴봐야 탁구공이 눈앞에 왔다 갔다 해서 눈에 들어올 리 만무였다. 참을 수 없었다. 옥희 옆으로 가서 귓속말로 얘기했다.
“우리 탁구장이나 가카?”
옥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선영이 자리 쪽으로 살살 걸어갔다. 선영이도 찬성하였다. 조용히 탁구 빠따와 공을 챙겨가지고 체육실로 갔다.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싱긋 웃었다. 우리가 탁구 치면서부터 다른 친구들도 늘어나서 탁구를 치려면 순서를 기다려야 했는데 우리뿐인 것이다. 셋이서 돌아가며 심판을 보고 시합을 하면서, 한 시간이 후루룩 흘렀다. 볼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마음은 부풀어 올랐다. 이렇게 학교가 재미있을 줄이야. 그래도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열을 식힐 겸, 재빨리 교실로 돌아왔다. 신이 나서 그런지, 6교시 수업도 더 열심히 참여했다. 공부 내용이 쏙쏙 머리에 들어왔다.
그런데 6교시 수업이 끝나고, 반장이 내게로 왔다.
“과학 선생님이 너네 교무실로 오래.”
갑자기 쿵하고 가슴이 울렸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우리 셋은 같이 교무실로 갔다. 나이 지긋하신 과학 선생님은 항상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짓는 분이셨다. 그런데 그날은 한껏 엄숙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선생님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왠지 부끄러웠다. 일단 인사를 하고 나서 우리 셋은 고개를 수그렸다. 선생님은 우리더러 꿇어앉으라며 일성을 질렀다.
“아니, 니네는 A반에서 공부도 제일 잘하고 행동도 바른 모범생들 아니어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무슨 뜻이지?’
선생님은 우리더러 수업시간에 탁구를 쳤냐?고 물었다. 그리고 탁구 빠다와 공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그때쯤 우리 셋은 각자 열심히 용돈을 모아서 개인 탁구 라켓과 공을 가지고 있었다. 선생님은 우리 앞에서 탁구 라켓의 빨간 고무판을 떼어버리고 난로 안으로 그걸 집어넣어 버리셨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내 볼 따귀가 벗겨져 나가는 것 같았다. 얼마나 고생해서 모은 돈인데 새 빠따를 아깝게 망가뜨려 버리다니!.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교실을 빠져나가는 것은 대단히 큰 잘못이며 규칙 위반이라고 하셨다. 규칙 위반이라는 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다. 수업이 없어 그저 탁구 친 것뿐인데, 규칙 위반이라니! 규칙 위반은 매우 엄중한 것이라고 생각 했었는데, 그렇게 내가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걸 어떡한다? 어머니가 남한테 손꾸락지 받을 일을 하면 안 된다고 늘 얘기하셨는데 혹시나 어머니가 아시면 어떡할까? 걱정되었다. 다행히 과학 선생님은 따뜻한 목소리로 내게 늘 열심히 수업 듣는 모습이 보기 좋았었다고 하면서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어깨를 다독여주셨다. 나는 그 말에 감동 받아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규칙을 어기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다른 두 친구도 울고 있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자신이 수업에 들어오지 않은 불찰로 일어난 해프닝을 잘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 후 우리는 체육실에 가지 않았다. 그러자 웬일인지 점점 각자 앞뒤의 다른 친구들과 점심을 먹게 되면서 셋이 몰려다니던 일도 옛말이 되었다. 누가 누구에게 화가 나거나 싸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좋았던 탁구가 사라지면서 끈끈했던 우정도 서서히 식어간 것이다. 게다가 중학교라는 학교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나는 옥희와 공부라는 날 선 경쟁 속으로 들어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