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러브

by 밈하

CD의 입지는 줄었다. CD를 사는 사람은 있겠지만 음악을 듣기 위해 CD를 사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나도 요즘은 Spotify를 애용하고 있다. CD를 파는 곳에 어쩌다 들리게 된다면 내가 좋아하는 앨범도 있는지 찾아보기는 하지만 살지 말지 오래 고민하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려고 산다기보다는 순전히 소장욕에 가깝다.

한 때 CD로 노래를 듣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낭만보다는 기능에 치중하기로 했다.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감성에 너무 심취하는 것도 멋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단보다는 음악이 더 중요한 것 아닌지.

CD로만 음악을 듣는 것은 진지한 연애를 하는 것과 닮았다. 나는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CD를 사는 사람은 아니다. 모험적인 CD 사기도 몇 번인가 했지만 누구인지도 어떤 음악인지도 모르고 산 건 딱 한 번뿐이다. Satoko Fujii Orchestra의 ‘Jo’라는 앨범을 사서 처음 한 번을 들어보고 다시는 듣지 않았다. 이후로는 적어도 아는 가수의 음악만을 사게 되었다. 한 번의 CD 고르기 실패를 거치고 신중한 사람이 된 것이다.

경험해 보지 않았거나 오래되어 잊어버린 사람도 있겠지만 CD의 1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이 모두 마음에 드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앨범을 만드는 사람은 앨범 하나를 매개로 장편의 줄거리나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어떤 트랙은 자꾸 넘겨버리게 되기도 한다. 영화 속 모든 장면이 관객에게 다 인상적일 수는 없고 모든 관객이 같은 감상을 가질 순 없다. 게다가 한 앨범을 듣고 나서 또 다른 앨범으로 넘어가는 것은 CD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분명 번거롭다. 외출 시 CD를 몇 개 챙겨 나갈 건지도 고민스럽다. 여러 앨범이 듣고 싶다고 가방에 CD를 열댓 개 넣는 건 그렇다 쳐도, 3번 트랙까지 들은 뒤 앨범을 바꾸는 건 성가신 일이고 성가시다는 이유로 모든 트랙을 다 듣는 건 미련한 짓이다.


스트리밍 어플은 가벼운 만남일지 모른다. 1분 정도 듣다가 ‘에이 뭐야 별로네’ 하고 다음 노래로 넘기는 일도 다반사니까. 이 앨범 저 앨범 뷔페처럼 찍어 먹어본다. 정작 어떤 곡은 어쩌다 두 번을 듣게 되어도 처음 들어보는 것처럼 느낄지도 모른다. 매일 여러 앨범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음악이 차고 넘쳐서 시시한 앨범들 천지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사이에, 눈에 띄는 곡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이곳에서 나는 신중하지 않다.

드라마 ‘Sex and The city’ 속 2000년대 초반의 뉴욕 사람들은 여러 사람과 가볍게 데이트하고 있었고 2025년의 나는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음악을 듣는 나의 태도는 미래적이라고 느낀 뉴욕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2025년 내가 음악을 듣는 방식의 혀를 내두를지도. 더 이상 요즘의 사람들은 한 사람과 갈등을 참고 오래 살거나 20대에 들어간 직장에 정년까지 다니거나, 앨범을 끝까지 듣지 않는다고 한다. 확실히 이 시대의 사람들은 예전과는 다른 감각으로 살고 있다. 그렇지만 너무 가벼운 음악 듣기를 한 탓인지 한때 많이 들었던 어떤 노래의 제목은 잘 떠오르지 않게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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