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1: 내가 다시 나로 살아가는 법

‘내 마음을 다시 배우는 시간들’

by 신의주


14장: 내가 나를 혼내지 않기까지
엄마들과의 만남과 먼저 육아를 시작한 선배 친구들에 대한 생각은
나도 모르게 경쟁심을 자극했다.
학창 시절에도 피구에서 끝까지 살아남기, 여자 오래 달리기 1등을 했던 나는
언제나 ‘잘해야 한다’는 마음을 손에 쥔 채 어른이 된 사람이었다.
승부욕은 내게서 쉽게 떼어낼 수 없는, 민트초코 같은 성질이었다.

하지만 나의 첫 아이는 생각보다 입이 짧았고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또래에 비해 적은 몸무게인 2.8kg으로 태어난 아이는
6개월이 넘도록 모유만 먹었고
젖병을 거의 빨지 않았으며
이유식 시작 후에도 두 세 숟가락 받아먹는 게
고작이었다.

"왜 안 먹지…?"
"좀 먹어봐…”

작디작은 이유식 의자에 겨우 허리를 세워 앉은 아이에게 버럭 한 슬프고 미안한 기억이 남아있다.
나의 벅찬 감정과는 전혀 다른 곳에 서서
‘엄마 왜 그래?’ 하고 묻는 듯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돌이 지나 유아식을 시작한 지 한참이던 어느 저녁,
‘맛있게 잘 먹는다’는 레시피를 따라 정성껏 차린 밥상을
아이가 계속 입으로 뱉어낼 때,
나는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날의 죄책감이 오래, 아주 오래 가슴에 서려 있었다.

그런 아이를 받아들이기까지,
나의 욕심을 접기까지,
그리고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마음을 억지로라도 밀어내기까지
나는 꽤 많은 시간을 헤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내가 잘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 아이가 편안할 수 있게.”

그때가 내가 처음으로
‘나를 혼내지 않는 법’
어쩌면 '아이에게 버럭 하지 않는 법'을
아주 작게 배운 순간이었다.


15장: 엄마의 하루 뒤에는 늘 조용한 눈물이 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아홉 해가 되어간다.
거의 매일같이 적어 내려가던 나의 하루, 생각, 작은 사건들은
아이가 태어난 뒤 주 2회, 주 1회로 줄어들었지만
요즘도 한 달에 한두 번은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정말 미안했던 일,
체력이 바닥나는 저녁 무렵 아이에게 버럭 했던 순간들,
첫 단어를 말하고 처음 점프하던 날 같은
시간이 지나도 잊고 싶지 않은 장면들.
그런 날이면 오랜만에 볼펜을 들고 자연스럽게
‘지금의 내 마음’을 먼저 적게 된다.

“오늘은 꽤 잘한 것 같은데.”
“이번 주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는데…
이 반복되는 하루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숨이 나오고,
때로는 우울감에 눈물이 차오르기도 한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 산후우울증이 몇 번 스쳐 지나간 느낌도 있다.
차라리 눈물이 날 때는 다행이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축 늘어진 시선으로
닦고 치우고 정리하다가
현기증에 쓰러질 듯해 아이 옆에 누웠는데
정작 내가 먼저 잠들었던 날도 있었다.

도돌이표 같은 일상에 지치고 처질 때면
다시 아이에게로 마음이 돌아간다.
어제보다 더 잘 뛰고, 더 또렷하게 말하는 아이.
나와 달리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아이의 순간을 붙잡아 적는다.
그 기쁨의 장면들을 볼 수 있는 오늘이라는 여건에,
또 하루를 버티고 살아낸 나에게 감사하려고 한다.
파도처럼 밀려왔다 가는 감정들은
그렇게 조금씩 잔잔해진다.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은 마음은 늘 있지만
그걸 실천하기엔 나의 작은 룸메이트는 아직 너무 어리다.
30개월까지 가정보육을 하며
요리, 미술, 체육 같은 다양한 감각 활동을
집 안에서 준비하고 벌이고 치우는 일은
내가 해본 일 중 가장 고단하면서도 보람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감정의 결을 헤치며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둘째의 탄생이 가까워지고,
첫째를 기쁘게 등원시킬 어린이집도 찾아두었다.

이제 곧 또 다른 변화가 찾아온다.
새로운 시작이 될지,
혹은 신생아 육아의 반복이 될지 모르지만
나는 조금 덜 흔들리면서
그 시간을 맞이하고 싶다.

16장: 마음이 부서지는 날, 다시 일으킨 사소한 위로

원래도 커피를 마시면 가슴이 두근거리던 나였지만,
모유 수유 중이던 어느 날 초코라테 한 잔을 마시고
아이가 낮잠을 못 자는 걸 보고는 몇 달 동안 카페인을 끊었다.

그러던 내가 어느 순간,
아침에 띵―동 하고 도착한 커피나 카페인 음료가 없으면
오전부터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래서 거의 매일 배달을 시키거나
집 밖으로 나가 시원한 한 잔을 사 오는 게 버릇처럼 굳었다.

문화센터에 조금 일찍 도착한 날엔
근처 카페에서 음료를 하나 들고 들어가야만
노래도, 율동도, 활동도 '견딜 수 있는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육퇴 후나 잠깐 틈이 날 때면
습관처럼 폰을 들고 유튜브나 넷플릭스에 접속했다.
죽이나 침이 바닥에 떨어지는 현실의 장면이 아닌,
예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나오는 화면만 보며
‘잠깐 다른 세계’를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고는 또 다음날,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반복됐다.
아이에게 집중하기보다는
내 기분에 따라 하루가 요동쳤고,
감정의 폭발과 추락이 이어졌다.
그 잦은 파동들은 결국 우울감을 데리고 왔다.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 생각이 반복되던 어느 날,
힘들어도 지금의 무기력한 생활 방향을
어디론가 돌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만 할 것 같은 방향,
그건 바로 독서였다.
수험 기간에 들었던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그때 다시 살아났다.

세상의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독서를 말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책이라면 이 구렁텅이에서
나를 끌어올려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지금,
1년 넘게 꾸준히 책을 읽고 있는 나는
그때의 선택이 옳았음을 다시 확신한다.

나는 이제
돌 무렵 육아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처럼
우울하지도, 지치지도 않는다.
커피 한 잔 없이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이와 집에서 충분히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틈만 나면
재미있는 책을 손에 쥐고 있는 내가 있다.



17장: 아이가 아니라 ‘나’도 자라고 있었다.

독서는 분명 나를 성장시켰다.
시선을 영상에서 책으로 옮기고,
글자를 읽어도 의미를 붙잡지 못하던 내가
문맥을 이해하고 문단을 속독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다른 사람의 삶을 따라가며
다른 시야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소설이 가장 좋지만,
책에는 자극적인 광고도,
나를 흔드는 쓸데없는 유혹도 없다.

육아 퇴근 후,
집안일을 마치고 잠깐 앉아 있을 때,
혹은 식사 중이나 화장실의 짧은 틈에서도
책이 자꾸 생각났다.
읽던 책이 떠오르고,
또 다른 책이 궁금해져
도서관을 자주 찾았다.

그때 깨달았다.
아이만 자라는 게 아니라
나도 자라고 있었다는 것을.

18장: 이상적인 엄마를 포기하고 나답게 사는 법
지금도 ‘이런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모습은 있다.
말로 설명할 수 있고, 그리라고 하면 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욕심이 없다.

목표를 정해 하루를 끌고 가기보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아이와 집에 집중하며
생각 없이 놀고, 치우고, 웃고, 잠드는 그 하루가
어떤 화려한 육아체험보다
나에게 훨씬 단단한 결을 남긴다는 걸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알게 되었다.

둘째는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정말 둘째가 찾아왔다.
임신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라는 걸
처음으로 깊이 느낀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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