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2: 마음을 다시 배우는 중입니다

‘엄마의 일상, 작지만 단단한 세계’

by 신의주

19장: 작은 하루가 나를 살렸다
세끼 식사 사이로 반복되는 빨래, 설거지, 바닥 닦기, 아이 씻기고 입히기.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다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매일의 작은 조각들은 조금씩 달랐다.
어떤 날은 문화센터를 갔고, 어떤 날은 아이 친구 엄마가 집에 왔고,
또 다른 날은 베란다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집 앞 놀이터에 다녀왔다.

즐거움, 피곤함, 만족, 지루함이 하루에 다 들어 있는 이상한 시간들.
그런데 아이는 단 한 번도 ‘지루’라는 감정을 모르는 듯했다.
그 얼굴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크게는 비슷한 패턴이지만,
그 속에서 소소하게 달라지는 반찬 같은 하루들이
결국 나를 살리고 있었다는 것을.

20장: 남편과의 온도 차를 받아들이기까지
요즘 가끔 생각한다.
‘내가 왜 이 사람을 선택했을까?’

나는 집과 육아에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남편은 퇴근하면 양치할 힘도 없이 침대에 누워 버린다.
나는 아이에게 하루 한 권이라도 책을 읽어주길 바라지만
남편의 하루는 일하고 집에 와서 쉬는 것이 전부다.

여름이면 25도 에어컨 아래 누워 맥주 마시고
핸드폰으로 영상 보는 시간이 최고의 낙인 사람.
나는 아이와의 추억을 위해 갈 곳을 찾고,
남편은 ‘오늘도 뭐 배달시킬까’를 고민한다.

다투기도 많이 다퉜다.
하지만 요즘은 그저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두는 편이
내 마음이 덜 닳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 엄마도 아빠에게 힘들었다고 말했지만
나는 여전히 아빠가 좋다.
그걸 생각하면, 우리 아이도 결국 그럴 거라고 믿어본다.
나의 기대와 바람은 잠시 내려두고.

21장: 혼자 먹는 점심이 가장 안전했던 시간
남편의 잦은 회식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나와 아이 둘만 있는 날이 많다.
아침을 같이 먹는 날도 있지만
대화할 여유는 거의 없고,
출근 준비에 바쁜 사람과의 식사는 늘 어딘가 허전하다.

때로 외식이 더 피곤한 날도 있다.
시끄러운 식당, 낯선 의자, 위생 걱정, 과하진 않을까 하는 간 걱정…
돌아서면 또 밥 차리고 또 치우는 집이 지겹지만
그래도 ‘내 집’이 더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래서 혼자 먹는 점심은 내게 오히려 안정감이었다.
아무도 묻지 않고, 아무도 평가하지 않는 그 시간.
돌밥(돌아서면 밥)의 반복 속에서도
점심 한 끼는 나를 조금씩 되찾게 해주는 조용한 순간이었다.

22장: 엄마가 되는 중에도 나는 한 사람이다

아이의 하루에 맞춰 숨도 조심스레 쉬던 나날들.
걱정과 불안, 끝없는 집안일 속에서
나는 잠시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러다 임신 중 찾아온 새벽 깸이
오히려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갔다.
그때 손에 쥔 책은
내가 나로 돌아오는 숨구멍이었다.

새벽마다 읽던 소설과 에세이들.
남극 이야기, 아무튼 시리즈, 젊은 세대를 다룬 소설,
홀로코스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
책 속 세계를 오가며 나는 ‘엄마’가 아닌 나를 다시 만났다.

잠들 듯 책장을 넘기다
무심코 시선을 돌렸을 때
어둠 속 옅은 빛에 비친 아이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내일도 같은 하루를 살겠지만
그럼에도 살아갈 힘을 다시 얻었다.

23장: 나만의 조용한 세계를 지키는 법
남편이 출장 가는 날이면
그 방의 2인용 책상에서 내 자리에 앉았다.
고요한 새벽,
혹은 드물게 찾아오는 낮의 빈틈에서
그 자리만큼은 온전히 나의 세계였다.

좋아하는 책을 책상 위에 펼쳐두고
손바닥 닿는 나뭇결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 집이 참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읽을 책이 한 권도 없으면
허전하고 불안하기까지 했던 날들.
그래서 책은 내 세계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피곤해지면 아이 옆에 누워 잠들며
“내일도 이런 순간이 잠깐이라도 찾아오면 좋겠다”
그렇게 바라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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