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온 가정환경이 중요하다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었다. 없는 집 애들은 뭘 해도 티가 난다는 말, 못 배운 부모 밑에서 자란 애들은 어딜 가도 눈에 띈다는 말을 가장 혐오했다. 그런 말이 듣기 싫어서 부지런히 살았다. 보란 듯이 이를 악물고 살았다.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어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가진 건 없어도 정신만은 늘 단단히 붙들어 매고 올바른 인성을 가지고 살고자 노력했다. 나는 결핍이 많은 사람이지만 내 자식들에게는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 단단하다 생각했던 내 다짐들이 무너지는 날이 있다. 일상에서 예고도 없이 제일 싫어하는 모습이 튀어나온다. 그 모습을 마주하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닮고 싶지 않았던, 절대 닮지 않을 거라 다짐했던 엄마의 모습을 닮아가는 나 자신이 치가 떨리게 싫다. 남편과 아이들 문제로 부딪히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 안에 눌려있던 것들이 올라온다. 그것들은 어릴 적 부모님이 다투던 모습과 오버랩돼서 나를 괴롭힌다. 그리곤 허락도 없이 한순간에 나를 지배해 버린다. 나는 힘을 못 쓰고 끝내 당하고 만다.
숨기고만 싶었던 이야기들. 어쩌면 그것들은 처음부터 숨긴다고 숨겨지는 게 아니었다. 숨기고만 싶었던 나의 악한 모습을 만날 때마다 그것들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내 안에 이런 모습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 같은 현실에서 살아남아 여기까지 발버둥 치면서 잘 버텨왔구나. 나를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숨기고만 싶었던 것들을 이젠 대놓고 꺼내놓기로 했다. 꺼내서 들여다보고 실컷 울고 나면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긴다.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태생이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닮아갈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 같은 사연을 가진 내가 이렇게 현실에서 잘 살아보고자 발버둥 치고 있다. 그런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 내 삶의 어느 순간 그런 노력을 놔버렸다면 어찌 됐을까. 악에 받친, 보기 싫은 내 모습조차 나다. 그게 없었다면 아마 나는 못 버텼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젠 나의 그런 모습까지도 사랑하고자 한다. 나에게 관대하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이내 무너지고 말 거란 걸 잘 아니까. 오늘처럼 말이다.
늘 그래왔듯 실컷 울었으니 나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또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 같은 내 인생을 해피엔딩으로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