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워해도 괜찮아
부잣집 막내딸이 꿈이었던 적도 있었지.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인 척 노력하며 산다. 좋은 강의도 찾아보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허투루 살지 않으려 한다. 나름 소신을 갖고 살려고, 흔들리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채울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태생이 선한 사람, 고생한 흔적이 없는 맑은 사람,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부모 밑에서 자라 넓고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따라 할 수 없는 부류의 사람이다. 가끔씩 그렇게 티 없이 맑고 착하고 선한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은 걱정도 없고 시간에 쫓기는 것 같지도 않고 평화로워 보인다. 그런 사람을 보면 고된 육아를 해도, 암만 독박 육아를 해도 항상 웃고 있다. 어쩜 저럴까. 불만도 없고 신기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돈이지 않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항상 내 발목을 잡던 돈. 그거다. 원래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고생 한번 안 해보고 곱게 자란 사람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서 질투가 나고 배가 아팠다. 세상 불공평하다 툴툴대며 그럼 대체 저 사람의 단점은 무엇일까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곤 했다. 나보다 못한 점을 찾겠다는 배배 꼬인 심보를 가진 게 바로 나였다.
대학교 때 매 학기 등록금이 없어서 방학이면 알바를 했다. 스무 살 여름, 친구들은 배낭여행을 갔을 때 난 깨 공장에서 깨를 볶고 담고 포장을 했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 밤새 끙끙 앓다 40도를 찍고 응급실에 실려갔던 날, 아 인생 참 불공평하다, 더럽다 생각했다. 알바 한 번을 안 하고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친구들 사진을 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본능적으로 가진 것 많은, 여유 있는 그 사람의 단점을 찾기 시작한 게. 그리고 난 그 사람을 슬금슬금 피했다. 부러움을 넘어선 질투, 신세한탄으로 이어지는 똑같은 레퍼토리를 거듭하면서 그런 온실 속 화초 같은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게 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놀고 헤어진 후에 밀려드는 씁쓸함이란.. 주눅 드는 내 마음이 참 초라하다 느꼈던 것 같다.
병원을 다닐 때도 집이 좀 사는 친구들은 힘들면 병원을 그만뒀다. 다른 일을 찾았고 혹은 부모님의 권유로 공부를 더 하거나 좀 더 나은 자리로 옮겨갔다. 서울에 방 한 칸 얻을 돈이 없어서 고시원에 살면서 3교대를 하고 몇 달 일해 조금 모은 돈으로 난방도 되지 않는 방을 얻었을 때 추위에 벌벌 떨면서 인생의 쓴맛을 알았다. 왜 나는 여유 있는 집안에 태어나지 못했을까.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나. 믿지도 않는 신을 탓해가며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을 했다. 그렇게 난 밑바탕에 우울감이 깔려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결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집에서 10원도 보태줄 수 없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속이 상했다. 퇴직금으로 받은 돈 중에 일부를 엄마에게 드리고 결혼을 했다. 나 멋지다, 요즘 이런 사람 드물다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처음부터 넉넉하게 빚 없이 시작하는 사람들과 출발부터 차이가 났다. 결혼생활이 이어질수록 그 차이는 더 벌어졌다. 신축 아파트에 전세로 몇 년 살았던 적이 있다. 집이 너무 잘빠졌고 단지도 조용하고 참 좋았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동안 마음이 참 불편했다. 나만 빼고 모두 부자인 것 같은 느낌, 내가 제일 못 사는 것 같은 그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면서 그곳에 사는 게 버거웠다. 결국 아이 학교 문제도 있고 해서 이사를 했다. 20년 가까이 된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곳이 나에게 맞는 옷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뒤로도 나는 너무 잘 사는 사람을 만나면 적당히 거리를 두고 내 마음이 공허해지지 않게, 너무 깊은 우울로 빠지지 않게 노력하며 살았다.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나 스스로 담을 쌓았던 것 같다. 나와 사는 게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만나는 게 마음 편하고 좋았다.
얼마 전 새로운 사람을 사귀게 됐다. 작은 아이 친구 엄마인데 사람이 참 선한 느낌이다. 여유가 있고 곱게 자란 느낌이 든다. 오늘 아침 함께 산책을 하면서 대화를 나눴는데 역시나 내 느낌이 맞았다. 경제적인 문제에 발목 잡힐 게 없으면 사람이 저렇게 맑을 수 있을까? 마흔 살 먹고도 난 또 이런 생각 중이다. 참 바보 같다. 부럽다는 마음이 든다. 예전에 비하면 살짝 스쳐가는 마음 정도로 가벼워졌지만 그래도 그 마음이 부러워하는 것임을 나는 안다.
암만 노력해도 태생이 그런 사람은 따라갈 수가 없다. 그 사실에 속이 상한다. 언제쯤이면 나는 이런 마음들에서 자유로워질까. 돈이 다가 아닌데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아직도 지난 내 인생이 가엽게 느껴지는 걸 보면 나이를 좀 더 먹어야 하는가 보다.
그래도 이젠 나를 보호한답시고 미리 피하고 담을 쌓지는 않으려 한다. 바보 같던 내 마음도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은 나아지나 보다. 글을 쓰면서 좀 더 단단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본래 그런 환경에 태어나 자란 사람을 쫓아갈 순 없지만 나는 나만의 장점, 나만이 가진 것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잊지 말아야겠다. 어린애처럼 배배 꼬인 마음이 살짝 올라왔던 오늘. 그래, 그런 마음 올라와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부러워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