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아버님 생신

by 바닐라라떼

아이들의 손 편지를 읽으시곤 눈가가 촉촉해지신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목구멍도 뜨거워진다. 고맙다는 짧은 인사를 어색하게 건네시지만 나는 안다. 아버님은 지금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하고 계시단 걸. 평소 어머님과는 전화 통화를 자주 하지만 아버님에게 전화를 드린 적은 거의 없다. 전에는 문자를 한 번씩 보내드리곤 했는데 그것도 이젠 거의 안 하고 있다. 어머님에게 드린 전화를 어쩌다 한 번씩 아버님이 대신 받으실 때가 있다. 아버님은 "엄마 잠깐 나갔는데 오면 전화하라고 하마." 하신다. 말주변 없는 나는 무슨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몰라 한다. 어색하기만 한 짧은 대화를 나누곤 이내 전화를 끊고 만다. 살갑게 다가가 이런저런 말동무가 되어드림 좋으련만 그게 참 어렵기만 하다. 결국 아이들을 앞장세워 한 번씩 영상통화를 하는 일로 대신한다.



오늘 눈물을 가득 머금고 환하게 웃으시는 아버님의 모습을 보았다. 아이들이 크는 속도만큼이나 아버님의 시간도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몇 달 전보다 더 마르신 모습에 마음이 쓰인다. 혹시나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날씨 탓을 하시는 아버님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벽에는 11년 전 우리의 결혼식 사진이 담긴 액자가 걸려 있다. 한참 동안 말없이 사진을 바라본다. 사진 속엔 몇 년 전 돌아가신 할머님도 계시다. 남편과 나는 앳되어 보인다. 어머님은 고우시고 아버님도 건강해 보이신다. 흐르는 세월에 자연스러운 변화를 겪는 우리지만, 그렇지만 조금은 속이 상한다. 할아버지 생신 축하를 하던 아이가 묻는다.



"엄마. 근데 외할아버지 생신은 언제야?"



아이 덕분에 떠올려 본다. 그리고 상상해본다. 아빠가 생신 상 받고 빙그레 웃으시는 모습을. 아버님을 보며 할아버지가 된 아빠의 모습을 그려본다. 오늘도 잊지 않고 기억해본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혹시나 내가 잊을까 봐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아이의 따뜻한 마음이 너무나 고맙다. 어쩌면 이 아이는 아빠가 보내 준 선물일지도 모른다.




아버님이 힘차게 촛불을 부신다. 촛불이 꺼지는 순간 소원을 빌어본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무뚝뚝한 아들이지만, 매번 아버님과 의견을 달리해 열띤 토론을 벌이는 아들이지만, 그 누구보다 그것을 바랄 것이다. 몇 년 전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 무뚝뚝한 아들이 몹시 흔들리는 걸 봤다. 무너지려는 걸 봤다. 마흔이 넘은 아들에게도 아버지는 힘이 되는 존재란 걸 안다. 그래서 나는 바라고 또 바란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게 우리 곁에 계셔주기를. 한 가지 더 바란다면, 나처럼 지나고 나서 후회하고 그리워 몸부림치지 않는 그가 되길. 너그럽게 아버님을 받아들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