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김치

살아 갈 힘이 되어 주는 존재, 어머님.

by 바닐라라떼

어린 시절 엄마는 때가 되면 종류별로 김치를 담그셨다. 도와주는 이 하나 없어도 알아서 척척해내셨다. 손은 또 어찌나 크신지 양념을 듬뿍 넣은 김치를 넘치게 담그셨다. 없는 살림이지만 냉장고 가득한 김치를 보며 엄마는 든든함을 느끼셨을 거다. 그러던 엄마는 언제부턴가 드문드문 김치를 담그셨고,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엔 아예 담그지 않으셨다. 사서 드시고 얻어서 드셨다. 지금도 엄마 집 냉장고엔 누구네 것인지도 가물가물한 김치들이 들어있다.


스무 살 때부터 집을 나와 혼자 살았다. 엄마는 내게 김치를 해주지 않았다. 아니, 해줄 수 없었다. 엄마에게 김치를 기대할 만큼 나는 어리지 않았다. 이미 퍽퍽한 삶이었다. 엄마의 김치 맛이 기억나지 않을 때 즈음 결혼이란 걸 했다. 그렇게 어머님의 김치를 만났다.


"집에 김치는 있니?"


인사치레처럼 어머님은 묻곤 하셨다. 수줍어하며 답을 얼버무리는 나에게 어머님은 온갖 김치를 챙겨주시곤 하셨다. 김장김치, 겉절이, 동치미, 나박김치, 총각김치, 열무김치, 무생채, 오이김치... 어느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어느 하나 맛없는 것이 없었다.


결혼하고 1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어머님 김치를 받아오면서 한 번도 감사함을 잊은 적이 없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손이 많이 가는 일임을 잘 안다. 친정 엄마가 해주신 반찬, 김치에 대해 자랑스레 늘어놓는 사람들 속에 내가 설자리가 없음을 느낄 때마다 어머님 김치에 위안을 받았다. 어머님 김치는 내게 살아갈 힘이 되어 주었다. 그 속에 온전한 사랑이 담겨 있고 분에 넘치는 복이 있다.


어머님은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자 함께 김치를 담그기도 하셨다. 내가 해주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시는 어머님에게 감사했다. 아이들에게 할머니와 함께 김치를 만드는 일은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할머니 김치가 최고라며, 김치가 떨어져 가는 걸 아쉬워했다.


그랬던 어머님의 김치가 줄었다. 종류와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미리 혼자 다 담가 놓으시고 챙겨주시기만 하셨는데 언제부턴가 같이 담그자고 하신다. "할머니, 김치 같이 담그면 안 돼요?" 어머님은 해맑게 묻는 아이를 보고 말없이 웃으시더니 "김치 있니?" 습관처럼 물으신다. "아직 김치 있어요." 빈 김치통을 떠올리며 나는 대답한다.


어머님은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김치 담그는 법을 알려주신다. 벌써 몇 번이나 들었는데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얄미워 보일 만도 한데 어머님 목소리는 한결같이 부드럽다. 어쩌면 나는 김치 담그는 법을 애써 기억하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영영 배우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어머님이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