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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Mar 22. 2022

극한 직업

엄마라는 이름

"엄마. 나 할 말 있어. 집에 가서 이야기해 줄게."



학교를 마친 큰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수고했다고 조심해서 오라고 하는데 아이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좋지 않다.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일까. 아이를 기다리는 몇 분이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놀이터에서 작은 아이를 놀리고 있는데 큰아이가 왔다. 손을 잡고 함께 걸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쉬는 시간에  OO가 다른 친구를 막 밀면서 노는 거야. 내 옆자리 친군데 계속 밀더라고. 그래서 OO한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했거든. 그랬더니 OO가 나한테 네가 무슨 상관이냐면서 팔꿈치로 가슴 부분을 팍 쳤어."



OO라는 아이는 유명하다. 1학년 때부터 행동이 거칠어 이름이 오르내리던 아이다. 그 아이와 직접적으로 부딪힐 일이 그동안은 없었기에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도 좋게 보려고 했다. 우리 아이에게도 친구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된다고, 그 친구에게도 장점이 있을 거라고 얘기하곤 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오늘 우리 아이에게 거친 행동을 한 것이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애써 담담한 척했다. 많이 놀랐지만 아이 앞에서 크게 반응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침착하려 노력했다. 가슴 부분에 통증이 있는지 살폈다.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아이는 많이 놀랐던 것 같다. 무서웠던 모양이다. 아이를 꼭 안아주며 "깜짝 놀랐지? 근데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달래주자 아이는 안정을 찾아갔다.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OO라는 아이가 어떤지에 대해서도 듣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들었다. 이런 일이 처음인지라 놀라고 당황했다고 말씀드리자 선생님은 앞으로 신경을 더 많이 쓰겠다고 하셨다. 그리곤 OO 엄마에게 연락을 취하겠다고 하셨다. OO 엄마도 알아야 할 상황인 것 같아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다. 



"안녕? 엄마. 얘가 OO야."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는데 엘리베이터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나는 두 번이나 더 놀랐다. 첫 번째는 OO라는 그 아이가 너무 커서 놀랐다. 키가 나와 비슷하고 덩치도 컸다. 두 번째는 우리 아이의 쿨하고 대범한 모습에 놀랐다.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남자아이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용기와 그런 일이 있고 나서도 그 아이를 미워하지 않고 먼저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네가 OO구나. OO야. 우리 봄이랑 사이좋게 지내. 알았지?"


솔직히 화가 났다. 그래서 혼을 낼까 어쩔까 고민했다. 그러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아이 눈을 보고 말했다. 내 말을 듣고 그 아이는 "네." 하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그 아이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그 아이 엄마는 미안하다고 나에게 사과를 했다. 신경 쓰고 있는데도 아직 부족한 면이 많다면서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과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마음이 계속 좋지 않다. 아이가 오늘 겪은 일로 얼마나 놀랐을지 계속 신경이 쓰였다. 저녁 내내 살뜰히 아이를 챙겼다. 다행히 아이는 많이 웃었고 편안한 모습으로 잠이 들었다. 계속해서 그 아이와 그 아이 엄마 생각이 났다. 화가 난다기보단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그 아이 엄마도 얼마나 마음이 괴로울까. 얼마나 속이 상할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중에서 가장 힘든 일은 아이를 키워내는 일인 것 같다. 엄마라는 직업이야말로 극한 직업이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있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앞으로도 수많은 일들을 겪을 것이다. 그 앞에서 부디 평정심을 잃지 않기를. 아이도 나도 매사에 유연하면서도 단단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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