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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Sep 13. 2023

우울증 환자가 되었습니다.

첫 진료후기

"어떤 점이 힘들어서 오셨나요?"



첫 질문에 대답을 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눈물이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나 같은 사람이 찾는 병원답게(?) 바로 앞에 티슈가 준비되어 있었다. 티슈는 참 부드러웠다. 나는 연신 눈물을 닦아가며 질문에 대답을 했다. 무덤덤하게 대답을 시작 했지만 그 과정은 아슬아슬했고 곧 댐이 터지듯 온몸에 힘이 빠져버렸다. 



내 눈물샘은 참 열심이었다.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좀처럼 멈추질 않았다. 모자와 마스크를 준비해 간 게 참 다행이라 여겨졌다. 짧은 시간 동안 주요 사건들을 이야기하며 든 생각은 그동안 참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구나였다. 일생을 살며 누구는 한 번도 겪지 않을 일들을 나는 참 많이도 겪었구나. 그것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일찍 철이 들게 만들었다 생각하며 버텨왔는데 그만큼 나는 병들고 있었구나.



여기 오기 싫었다고, 잘 알면서도 그랬다고, 인정하기 싫었다고.. 아빠처럼 될까 봐 무섭고, 엄마처럼 될까 봐 겁이난다고.. 나는 고백했다. 




"잘 오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여기 오는 것 자체가 용기 있는 결심이고 행동이라며 좋아질 거라고 하셨다. 약이 도움이 될 거라는 말과 함께 앞으로도 시간을 들여 좀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셨다. 



그동안 쉽지 않았겠다는, 그럴 수 있겠다는 위로 섞인 한마디에 나는 더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 적어도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는 것 같아서 고마웠다. 일주일치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조금은 편안해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우울증 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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