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키우자. 똑바로 키우자고.
이제는 말하고 싶다. 무려 5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아이 친구 엄마사이로 만나 5년이 넘는 시간만큼 서로 마음을 나눴다. 아이 친구 엄마는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 말이 와닿지 않을 만큼 매 순간 진심을 다했다. 천천히 그리고 깊게 관계를 맺는 나는 그 관계에 있어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결국 이렇게 될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 아이가 우리 아이에게 문자로 심한 말을 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였다. 처음에 그 문자를 보고 우리 아이는 문자내용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를 잃을까 봐, 그 아이와의 관계가 끊어질까 봐 걱정했었다. 고작 열 살짜리가 어디서 이런 모진 말들을 배웠을까. 엄마인 나 역시 그 아이가 우리 아이에게 보낸 문자를 보고 손이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직접 자기 아이를 끌고 우리 집 앞까지 와서 사과를 하는 그 아이 엄마 모습을 보고 용서하기로 했었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에, 그 아이 엄마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을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 당시 나는 화나는 마음을 꾹꾹 누르고 그 아이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너희 엄마에게 네가 소중하듯이 우리 아이도 나에게 소중하다고. 함부로 대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듯 말했다. 열 살이었기에, 악의를 가지고 한 짓이 아니었을 거라는 믿음이 컸고, 어른이 나서서 아이가 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아이는 그렇게 말하는 내 눈을 당돌하게 똑바로 쳐다보면서도 끝까지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우리 아이에게도 직접 말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일을 시작으로 그 아이는 주기적으로 우리 아이에게 분풀이를 했다. 잘 지내다가도 본인 기분이 안 좋으면 입을 닫고는 우리 아이에게 문자로 공격을 했다. 그러곤 그 문자를 싹 지워버렸다. 이제 열 살이 갓 넘은 아이가 어찌 그럴 수 있는지, 그 아이 엄마를 보면 도통 상상이 안되었다. 선한 얼굴을 하고 자기 계발을 위해 늘 애쓰던 그 아이 엄마말이다. 나를 통해 자기 아이의 그런 모습을 알게 된 그 아이 엄마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게 미안해했다.
그렇다고 안 좋은 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좋은 날들이 더 많았다. 아이들끼리 잘 맞는 부분이 많았고 서로를 아꼈다. 베프라며 항상 붙어 다녔다. 나 역시 그 아이 엄마와 많은 것을 공유했다. 운동, 독서, 글쓰기.. 아이 친구 엄마로 만난 인연이 나와 생각과 가치관이 비슷하다는 건 축복이라며 항상 감사했다. 깊은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가까워진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좋아했다.
그 아이가 한 번씩 우리 아이에게 함부로 대할 때면 내 속은 말이 아니었지만, 그 아이 엄마가 미안해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때마다 넘겼다. 색안경을 끼고 그 아이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우리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였고, 나 역시도 그 아이 엄마를 친언니같이 의지하고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그 아이의 상태를 걱정했고 함께 고민했다. 도움이 필요하다 할 때마다 발 벗고 나섰고 그 아이를 챙겼다. 그 아이의 상태가 나아지길 누구보다 바랐다.
그러다 올해 들어서 문제가 터졌다. 같은 반이 된 두 아이의 관계가 위태로워졌다. 번번이 자기 기분 변화에 따라 입을 닫아 버리고 문자로 심한 말을 하고 말을 시켜도 대꾸하지 않고 째려보는 행동을 하는 그 아이. 한 번도 먼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아이. 그런 아이를 보면서 우리 아이도 이 관계가 정상적인 친구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또다시 우리 아이에게 심한 말을 하고 입을 닫은 그 아이는 심지어 교실에서 자기 노트에 우리 아이 욕을 쓰기까지 했다. 그 아이가 쓴 욕을 우리 아이가 직접 보았다. 우리 아이가 그 아이에게 사과를 하라고 요구했지만 그 아이는 못 들은 척 무시했다. 한 달이 넘도록 입을 닫고 째려보기만 할 뿐 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아이 엄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기 아이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집에선 도무지 말을 하지 않는다면서 자기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미안해하고 난처해하며 내게 기다려달라고 했다. 우리 아이만 생각하면 이미 학폭을 걸었어도 충분한 일이었지만 그 아이와 그 아이 엄마를 진심으로 생각했기에, 그동안 쌓아온 시간들이 헛되진 않았다고 생각했기에 한 달이란 시간을 기다렸다.
그 사이 우리 아이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잠을 잘 자지 못했고 불안한 마음에 손바닥 살을 다 뜯어 놓았으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래도 믿었다. 기다렸다. 그 아이가 진심으로 반성하기를. 우리 아이만 한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그리고 사과해 주기를... 만약 그랬다면 우리 아이도, 나도 그 아이를 용서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아이 엄마는 나에게 아이들 사이에 일어난 일을 가지고 유난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본인은 아이들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며 아이가 속이 상해서 혼자 분풀이로 욕을 쓴 게 뭐 어떠냐는 말을 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구나.. 내가 뭐에 홀렸었구나.. 진즉에 이 관계를 정리했어야 했는데 내가 미쳤었구나..
우리 아이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몇 날 며칠을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넘겼다. 화가 났다가 속이 상했다고 우울했다가 또 분했다가... 힘든 시간들이었다.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불쑥불쑥 화가 난다. 차라리 만나서 할 말 다 하고 끝냈으면 지금보단 나았을까. 학폭위라도 열었으면 덜 답답했을까. 혼란스러운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다. 가끔씩 그 아이도 그 아이 엄마도 우연히 길에서 볼 때가 있다. 지금도 나는 그 아이와 그 아이 엄마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다. 용서할 수가 없다.
이 일을 겪으면서 아이도 나도 정말 많이 힘들었다.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며 내 아이를 더 단단하고 인성 바른 아이로 키워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적어도 다른 사람 마음에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은 하지 않는, 잘못한 일이 있으면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보통의 상식이 통하는 그런 사람으로 키울 것이다.
불행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살면서 가끔 아니 자주 불편한 순간을 만났으면 좋겠다. 불안한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