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죽음을 돌아보며
"엄마. 외할아버지한테 갈 거지?"
아빠의 기일이다. 해마다 아빠 기일에 맞춰 아빠가 계신 납골당에 간다. 연고가 없는 지역에 모신 터라 장거리 여행이 따로 없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남편은 운전에 지쳐했고 아이들은 언제 도착하냐고 끊임없이 물었다. 왜 이렇게 먼 곳에 모셨는지, 왜 납골함은 보이질 않는지, 왜 무덤으로 하지 않았는지.. 작년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내게 구체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어떻게 돌아가신 건지 묻진 않았다. 대충 둘러댔지만 언젠가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 내가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이해하는 날이 올까. 조금은 두렵다.
2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내가 21살에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그때 내 나이만큼의 세월이 지난 것이다. 아이들의 물음에 나는 그저 "그땐 엄마도 너무 어렸었어. 어려서 아는 게 없었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사실이다. 그때 난 너무 어렸고, 모르는 게 너무 많았으며, 가진 게 너무 없었다.
아빠 납골함 앞에 서서 아빠 이름을 한참 동안 쓰다듬었다. 아빠의 이름이 낯설다. 이젠 내게 아빠가 있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빠의 얼굴도 목소리도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빠에게 말했다. 나는 아빠처럼 세상을 등지지 않겠다고. 살겠다고, 살아내겠다고 말했다. 엄마와의 관계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도. 그러니 제발 나를 도와달라고, 우리 가족을 지켜달라고도 말했다. 아빠는 여전히 답이 없었지만.
하늘이 파랗다. 아빠가 가던 날도 이렇게 하늘이 파랬다. 눈이 부시게 예뻤다. 그래서 아빠의 죽음이 더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아빠는 자살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랬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제 세상에 아빠가 없다는 슬픔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더 신경 쓰였다. 아빠가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까 봐 겁이 나고 두려웠다. 원래도 아빠의 존재가 크지 않았기에 어린 마음에 나는 아빠의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낼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더 강한 척, 단단한 척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렇게 버텨냈다. 정말이지 열심히 살아왔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아빠의 죽음은 내게 너무나도 큰 일이었고 무식하게 버티기만 했던 나는 병들어가고 있었다. 충분히 애도하고 마음을 챙겼어야 했다. 아빠의 죽음을 그냥 쉬쉬하며 숨길 일이 아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때도 난 아빠의 마음을 몰랐고, 지금도 알 길이 없다. 아빠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 나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저 내가 우울증 환자가 되고 보니 아빠도 그랬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 뿐이다.
아빠. 내년에 또 올게.
나도 편안해질게. 아빠도 편안하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