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닐라라떼 Oct 11. 2023

아무것도 묻지 말아요.

그래도 괜찮잖아요.

긴 연휴를 보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운동을 했다. 덕분에 가라앉을 시간이 없었다. 이는 붕 떠 있는 시간들이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나에게 지난 2주간 그 시간이 없었다는 건 심적으로 또 다른 문제들을 야기시키기에 충분했다.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아니, 쓸 시간이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남편이 휴가로 집에 있는 동안 남편 눈을 피해 글을 쓴다는 건 불가능했다. 남편이 알면 좀 어떤가 싶기도 하겠지만.. 지금은 남편에게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지가 않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내 글을 읽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잘 쓴다며 칭찬을 해주던 남편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의 칭찬과 응원에 힘을 얻은 나는 그 뒤로 글을 쓰면 제일 먼저 그에게 보여주었다. 고민되는 부분도 함께 나누었다. 글로 큰 성공을 꿈꾼 것은 아니지만 한창 좋아서 글을 쓸 때는 희열을 느끼기까지 했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모르고 산 지난 세월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걸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기뻤고, 의미가 있었으며,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다른 내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자기, 글로 유명해지면 좋겠다."

"자기 덕 좀 보면 좋겠다."


기대에 찬 그 목소리가 부담스럽다. 무언가를 해내길 바라는 그 눈빛이, 말투가 무겁기만 하다. 그의 말이 부담으로 다가온 순간부터 나는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었다. 글쓰기에 흥미를 잃었다. 타고난 재능이 없다는 걸 잘 아는 나에게, 현실을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캐치하는 나에게 그의 칭찬과 응원은 독이 되었다. 내가 쓰기만 하면 무언가 될 거라는 말은 마치 나를 놀리는 것처럼 느껴졌고, 글을 돈으로 연결시키는 그 문턱을 넘지 못하는 현실을 자각하면서 나는 또 한 번 주저앉는 경험을 하게 됐다.


생각해 보면 늘 그런 식이었다. 아주 잘하는 것도 그렇다고 아주 못하는 것도 없는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이면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좀 더 나아가질 못했다. 나아갈 수 있는 뒷힘이 부족했다. 무작정 나아가기엔 나는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렸고, 가진 게 없었으며 용기가 부족했다. 그럴 때면 늘 현실을 탓하곤 했다. 일찍 철이 들 수밖에 없었던 내 환경을 원망하고 도전하지 못하는 내 소심함에 치를 떨면서도 어쩔 수 없이 지금 생을 살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내겐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우울증 진단을 받고 다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결심했다. 남편에게는 말하지 말아야지. 아니,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야지. 이런 모순된 말이 어디 있겠느냐 마는, (남편도, 친구들도, 나를 아는 어느 누구도 마음만 먹으면 내 브런치를 찾아 글을 볼 수 있을 텐데)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유롭게 글이란 걸 쓰고 싶다. 뭘 잘 써내겠다는 것이 아니고 쓰고 싶을 때 내 이야기를 그저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을 뿐이다. 



"다시 글 쓰는 거야?"


제발, 묻지 말아 주라.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 주라. 지금 내겐 그저 기다림이 필요할 뿐이다. 뭘 하라고, 해내라고 재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었으면..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고, 쉬어가도 된다고, 그래도 된다고 해줬으면 좋겠다. 그냥 아무 말 없이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그게 오로지 내 바람이란 걸 나 자신만이 알기에, 그렇기에 지금은 이렇게 몰래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살고 싶어졌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란 존재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