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전환의 기술

"내 가치를 네가 정하지 마!"<이태원 클라쓰>(2020)

by 초이

낮엔 남의 속도에 휘말렸다.
밤이 되면 조용해졌다. 퇴근 후, 화면을 돌렸다.


어떤 날은 강의 한 편과 퀴즈 몇 개,
다른 날은 기출 한 회와 틀린 문제 한 줄 요약.
기록은 무엇을 했는지 / 어디까지 왔는지 / 내일 첫 줄만 남겼다.


현실은 쉽지 않았다.

빈칸이 많은 주도 있었고, 일주일을 통째로 놓치기도 했다.

그래도 다시 켤 날짜를 표시하고, 그날의 한 칸만 채웠다.

그렇게 자격증이 하나, 학위가 하나, 이력서에 한 줄씩 늘어났다.

기울기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내 쪽으로 옮겨졌다.


지원버튼이 애초에 회색인 회사들이 있었다.

최소 조건 미달.

그럴수록 내 화면을 더 선명히 했다.

자기소개서는 장식 대신 '내가 한 일의 순서'로 정리했고,

끝 문장은 복도 자리에서 배운 세줄로 통일했다.


어느 날, 회색이던 버튼이 색을 찾았다. 그날 밤, 제출.

다음 주, 탈락 메일이 왔다.

메일 탭을 닫고 노트 탭을 열어, 막힌 지점을 한 줄로 남겼다.

그 한 줄이 다음 지원의 첫 줄이 됐다.

반복할수록 자신감도 한 칸씩 커졌다.


받은 메일함이 바뀌기 시작했다.

‘탈락’보다 ‘합격’이 위로 올라왔다.

내 가치를 알아보는 곳들이 늘었다.


"내 가치를 네가 정하지 마!"

내겐 이렇게 들린다. 내 채널은 내가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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