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소거의 기술

“모든 일이 그래, 항상 네가 먼저야.”<나의 아저씨>(2018)

by 초이

새 회사 로비를 지나 사원증을 걸었다.

내 자리는 프린터 옆 복도, 창가는 공채 몫이었다.

가장자리는 소식이 늦고, 추천과 기회는 창가에서 먼저 돌았다.

나는 종이가 토해내는 열과 분진을 들으며 한두 박자 뒤에 확인했다.


사수의 라디오는 서늘하게 정확했다.

회계일자 입력실수는 '사건',

마침표 하나 빠지면 '기본기 부재'로 정리됐다.

"부장님 말씀이지."로 시작해 "다시는 없어야지."로 끝나는 멘트가 아침 공기처럼 깔렸다.


회의실의 공기는 또 달랐다.

문장보다 수치, 과정보다 결과.

발언의 순서가 곧 위계가 되는 순간이 있었다.

소수 여성 사이엔 자리 하나, 기회 하나 사이를 두고 긴장이 맺혔다.


이 채널들이 한꺼번에 켜지면

하루는 시작 전부터 기울었다.

그래서 나는 버튼을 배웠다. 음소거.

남의 소리를 낮추면 내 하루의 소리가 들렸다.


퇴근 10분 전, 그 세줄을 적었다.

오늘의 첫 줄, 멈춘 지점, 내일의 주소.

하루가 또렷해지자 비교는 작아졌다.


자리 재배치가 있던 날, 공채 후배가 창가로 갔다.

나는 다시 복도. 그때 알았다.

해낸 일과 배정되는 일은

서로 다른 표로 관리되고 있다는 걸.


점심 뒤 팀장이 물었다. "하고 싶은 업무 있어?"

망설이다 메신저로 한 줄을 보냈다.

"매출업무, 제가 해 보고 싶습니다."

안 될 줄 알았는데, 그날 오후 내 할 일이 바뀌었다.

벽은 두꺼웠지만, 틈은 메시지 한 줄 크기였다.


그 뒤로 작은 변화가 이어졌다.

아침 첫 문장이 퇴근 전 '완료'로 바뀌는 날이 늘었고,

회의록은 '오늘의 결론 1줄'로 시작해 짧아졌다.

사수의 라디오가 켜져도 나는

먼저 도착-멈춤-다음을 적었다.


"모든 일이 그래, 항상 네가 먼저야."

내겐 이렇게 들린다.

먼저 내 채널을 켜고, 남의 소리를 낮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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