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릴 적부터 나이에 맞게 무언가를 성취하고 잘해야만 인정받는다고 배워왔다. 그래서 너무 힘든 책임이나 과한 의무를 잠시 내려놓고 쉰다는 사실에 어색함을 느끼고 죄책감을 가진다.
나는 수험생 엄마다.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하고 챙긴다. 나태함과 게으름을 즐길 여유도 없다. 내 나이 회갑이 지났지만 아직도 고시생 딸과 함께 사니,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바쁜 엄마 같이 산다.
지금은 격세지감으로 회갑잔치를 하지 않는다. 작년 나의 회갑에 우리부부도 잔치까지는 아니지만, 결혼 하고 분가 해 사는 아들이 일본여행을 보내 주어서 다녀왔다.
하지만 딸은 하고 싶은 꿈이 확실해서 아직도 공부 하는 중이다. 공부 한다는 당사자는 힘들겠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는 마냥 부럽다. 공부 한 결과가 원하는 대로 금방 나오는 것도 아닌데도, 엄청 노력해야 되는 길고도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되는데도 말이다.
인생은 장거리를 달리는 마라톤과 같아서 조금 늦었다고 끝이라 판단하긴 이르다.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룬 사람의 가슴 속에는 항상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동력이 있고, 언제나 그것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내 앞에 놓인 코스를 완주할 생각만 하면 된다. 중간에 쉬어도 되고, 뛰어가도 되고, 천천히 걸어가도 된다. 자신에게 따스한 마음을 갖고 힘든 일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은 현명하다.
나의 또래들은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홀가분하게 자기만의 삶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직장 생활 하는 미혼인 딸과 함께 사는 경우도 있다. 드물지만 나의 경우같이 딸이 아직도 공부 중인 엄마로 살고 있기도 한다.
근데 왜? 나는 나이에 맞는 정해진 삶이 있는 것 같을까?
인생이 나이에 맞게 해야 되는 정해진 “무언의 순서”가 없는데·····.
나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나아가 성인이 되면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 하고, 자리를 잡으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것이 정해진 순서 같다. 그런 생각인 나는 나이에 맞춰서 정해진 순서가 있는 것 같이 살아 온 거 같다. 정상이라 간주되는 범위에서 벗어나면 자책하고 괴로워한다. 정작 나이에 맞게 정해진 순서가 있는 것같이 열심히 살았지만, 천천히 쉬면서 꿈을 살피면서 사는 여유를 부리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부러운 딸은 자유롭게 살고 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금도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하고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천천히 즐기면서 공부하는 모습"이 정작 당사자인 딸은 힘들겠지만, 왜 엄마인 나는 수험생 딸에게 부러움을 느낄까?
전업주부로 아이들을 열심히 키우고 살면 괜찮은 삶이라 생각 했었는데, 나이가 회갑이 지나보니 그냥 나를 만족 시킬 수 있는 사소한 루틴이라도 만드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이 모여 삶의 형태가 완성되는 순간, 후회가 아닌 만족을 맛보고 싶다면 신경 써서 나만의 인생 퍼즐을 맞춰가야 한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것이 필요한지 알고만 있다면 쉬는 시간을 가져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렇다. 자신의 마음을 살필 줄 아는 사람에게 휴식은 바닥난 에너지를 정비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