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접기- 너의 유니버스

영화 :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by 리움

밤 12시가 넘어 tv 모니터로 유튜브를 보며 빨래를 접다가 소파 한쪽에 비스듬히 누워 휴대폰을 보며 히히덕거리는 딸아이에게 마른 수건을 밀어 본다.
“접어!”
아이의 삐죽한 시선을 옆으로 느끼며
“빨리하고 자게 접어!”

한참이 지나도 움직임은 없고, 아마도 그냥 하는 엄마의 장난쯤으로 받아들이며 속으로 빙긋이 웃고 있을 아이가 그려진다.
밀리고 싶지 않다.
“접으라고!”
"귀찮아!"
아이도 만만치 않다.
“늦게 까지 일하고 와 자는 딸 깨워 밥까지 해먹이고, 치우고, 과일까지 챙겨 준 엄마가 접으라면, 좀 접지!”
“내가 왜? 엄마 일이잖아.”
......
그 뒤는 안 봐도 비디오!
분한 엄마의 마음과 자다 날벼락을 맞은 것 같은 아이의 억울함 사이 오고 가는 눈빛엔 독기가 어리고 유치 찬란한 말들이 탁구공처럼 오간다.
지랄발광 고3 시기를 걸어오며 아이는 코로나 블루 시기부터 시작됐을지 모르는 우울증 시기가 겹쳐 있었다. 그런 아이를 두고 더 왈가왈부를 피하려고 어느 때부턴가 그냥 미친 x다 여기고 그 자릴 이탈한다.
이탈... 다른 공간으로 가지 않고서는 미친x를 상대하기란 쉽지 않다.
침대에 기대어 휴대폰으로 나에게 보내는 문자에 구구절절 딸에게 보내는 분함과 훈계를 늘어놓고는 이걸 보낼까 말까 망설이다 다시 문자를 훑어 내린다.
나는 미친x를 키우는 중이다.

빠르면 1시간쯤, 거의 대부분은 하루쯤은 지나야 주고받은 매서운 눈길이 부끄러워 무서워진다.
노여움은 거둬지고 기대하지 않던 장면 전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한다.

나는... 평균 이상 깔끔한 편이고, 아이는... 평균 이상 지저분을 방치하는 편이다.
나는... 어려운 숙제를 먼저 해놓고 쉬는 게 마음이 편하고, 아이는... 많은 때 “아직 시간 충분해.” 하며 미루기를 잘한다.
나는... 양말을 발끝부터 그대로 당겨 형태를 잡아 벗어 놓고, 아이는... 발목부터 잡아 뒤집어 당겨 휙 벗어놓는다.
나는... 택배 상자를 실내에 두면 온몸이 간지러운 것 같고, 아이는... 택배 상자는 물론 그 속에 알맹이 빼낸 비닐까지 욱여넣어 제 방에 자리 한켠을 만들어 두고도 아무렇지 않다. 며칠이 지나면 때론 택배상자로 마트료시카 인형을 만들 수도 있다.
나는... 무서운 영화 보기를 싫어하고, 아이는… 장르물을 찾아서 본다.
나는..., 아이는...

너무 달라 같이 사는 게 이리 힘든 거겠지, 하며 아이와 나의 다른 점을 찾아보다 내가 어렸을 때는? 그때도 지금처럼 아침 알람에 바로 일어나 알람을 끄고, 밖에 나갈 일 없는 데도 머리를 감고, 유혈이 낭자한 컬트 무비를 무서워 못 보는 사람이었나?

상당 부분 범생이형 인간이긴 했지만 내 질풍노도의 시기 또한 인생무상, 허무주의, 귀차니즘이 뒤엉켜 맥락 없이 나른했다. 여기서 아이가 ‘거봐... 엄마도...’ 하며 득달같이 달려든다면 단호히 '너랑은 차원이 달라!'
라고 밀어내고,

서로 성향이 달라 지금까지 살며 많이 힘들었고 그래서 아이를 독립시킬 날을 꿈꾸며 그것이 괘씸한 저 아이의 믿음에 복수하는 것이라며 상스러워지는 나는... 저 아이를 미워하는 걸까? 그래도 사랑인 걸까?
모성이란 뭘까?에 까지 내 궁금함이 다다른다.

내 우주에 저 아이는 빌런인가? 히로인인가?
저 아이의 우주에 나는 최악인가? 최선인가?

<영화 :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영화는 주성치가 떠오를 정도로 B급 코미디가 난무하는 듯해 보이지만 곳곳에 아이디어가 넘쳐 난다.
아이디어들이 기상천외해서 자칫 주제를 놓치느냐 하면, 신기하게도 영화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끝까지 놓지 않고 간다.
이 우주에서 어쩌면 엄마와 아이는 서로 빌런, 가장 영향력 있는 빌런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또 다른 멀티버스에서도 환경이 다르다고 다른 역할은 아닌 것 같다. 나와 아이처럼.

서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에블린(엄마)은 딸을 위한다는 이유로 독한 말들로 딸을 몰아붙이고 조이(딸)는 그런 엄마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지만 둘의 시선은 다정하지 않다.
현재의 우주는 최악의 에블린과 조이가 만난 세계이며, 인물 개인적으로는 최선인 듯 보이는 다른 멀티버스에서도 결국 서로에게 최악인 것은 같다.
아, 비극적이다!
결국 미친x와 난 다른 세계에서도 이 짓거리를 반복해야 하다니...

영화에서 에블린은 모든 것이 마땅치 않아 이혼할 뻔한 남편의 싸움의 방식을 자신에게 장착하고 히로인이 될 수 있었다.
그 싸움의 방식은 '다정함' 이다.
연약하고 힘이 없어 보이는 다.정.함.

내가 저 아이를 두고 복수, 미친, 따위의 미운 말들로 내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빌런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세계 속의 무수히 많은 에블린을 경험하며 능력치를 쌓은 최강의 에블린이었지만 그 세계에서 마저도 에블린은 조이를 빌런으로 만드는 또 다른 빌런이었다.
많은 에블린 중 가장 형편없고 실패한 최악의 에블린의 깨달음, 선택, 변화가 허무와 소멸의 베이글(자멸)로 향하려는 조이를 끌어낼 수 있었다.
과연 나는 어떤 깨달음, 또 선택, 변화를 해야 미친x의 영역을 소멸의 베이글로부터 떨어뜨려 놓을 수 있을까?

I Love You!

나.는. 너.를. 사랑한다.

갑자기? 그러나 이것밖에는... 이것 말고는... 답을 찾을 수 없다.

너의 어이없는 말들과 싸가지 없는 행동을 싫어 하지만 너를 싫어하지 않고,
3일을 안 감은 머리 냄새를 향기라 할 순 없지만 숨을 참고 너를 끌어안을 수 있다.
나는 너에게 캡틴 아메리카는 될 수 없지만 '너 살쪘어!'라고 말하고 난 후 빙긋이 이마를 맞대는, 수많은 실패와 실수가 만든 세계 속 최악의 에블린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최악의 에블린은 조이의 손을 결코 놓지 않았다.

손을 놓고 도망치고 싶은 최악의 세계 속에서 지금까지 니 손을 놓지 않은 엄마에게 한 줌이지만 함께 하는 이 세계의 시간은 소중하다.

오늘도 지랄발광의 시기를 12시간의 숙면으로 누그러뜨리고 있는 나의 최선이며 최악인 조이(조부 투바키)…
슬픈 작은 돌멩이 하나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려고 할 때 부질없을 것 같지만 조금 큰 돌멩이 하나 그저 함께 낭떠러지 끝에라도 존재하고 싶은 그 마음으로, 그 다정함으로,

언젠가는 너의 모든 시간이 소중하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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