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 너만의 숲

영화 : 리틀포레스트(한국판)

by 리움

"어제 아르바이트는 누가 대신 해줬어?"
"음... 엄마 말해도 모르잖아."

한파가 막바지였던 겨울 어느 일요일,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간식을 달라는 아이에게 호떡을 구워 주고 설거지를 하다 그냥 불현듯 지나가듯 한 질문에 느닷없이 퉁명스러운 아이의 반격… 잠시 물을 잠그고 숨을 고른다.

......

다시 물을 틀고 하던 일을 계속하며 내 질문 어디에 총알이 있었나 되짚어 본다. 고3은 고3이라서, 재수생일 때는 재수생이라서 불쑥불쑥 날카로워지는 자신을 뒤늦게나마 미안해하곤 하던 아이였는데 그날은 쉽사리 마음이 풀리지 않은 채로…

실은 어떤 시기가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때때로 엄마와 딸의 대화에는 알 수 없는 적의와 잔펀치가 불쑥불쑥 들어 있곤 했다.

내 질문 어디에 아이의 꼬임벨이 작동하는지 몹시 궁금했으나 그 이후로 입을 닫고 조용한 침묵의 막을 치며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는다.
엄마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자기 치장을 하고 인사도 없이 나가 버린다. 재활용 쓰레기 좀 들고나가라는 진즉에 한 내 부탁도 들은 바 없는 듯 무시하고... 쾅 닫히는 문과 함께 내 노여움도 목소리가 되어 공기 중에 분사된다.
‘저런…네가지…’

스무 살 언저리 자식은 양극단을 걷는 것 같다. 나 또한 아이를 두고 그런 양가감정에 혼란이 부쩍 많이 생기는 때다. 아이는 스무 살이 넘었고 아이가 어릴 때부터 아이 귀에 꽂히도록 주지 시킨 바가 ‘사람이 스무 살이 넘으면 자기는 자기가 책임지는 거야. 대학을 가게 된다면 목돈이 드니 학비는 대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지만(그도 형편이 안 되면 네가 알아서 해야 하고...) 나머지 니 용돈 정도는 스스로 마련하는 거라고’ 그게 독립의 수순이라고 생각하고 말해왔던 터였다. 그러면서 나 때는 말이야... 별수 없는 꼰대 마인드가 발동하면서...
그런 반면 동시에 나는 아이의 끼니를 챙기고 귀가 시간을 체크하며 누구랑 어디에 가는지 정도는 알리고 움직이라고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압박 아닌 압박을 넣었다. 그러면 아이는 자기가 받고 싶은 것은 받아먹고 받고 싶지 않은 것에는 ‘내가 알아서 해!’라는 선포로 여타의 잡음을 일축해 버리고 싶어 했고 그 클리셰 같은 멘트가 때로 귀엽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눈과 마음으로 욕을 쏟아내며 대화는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 줄다리기 같은 상황 속에 대화는 대화답지 못하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보고라고 생각되는 대화에 아이는 반감이 생기고 엄마는 선택적 성인 코스프레라고 아이를 얕잡아 보며 아이의 말에 무게를 두지 않게 된다.
그런 사이 대화의 어느쯤인지도 모를 알 수 없는 타이밍에 그 가라앉아 있던 적의를 말로 드러내는 것이다.

아이에게 엄마는 하나하나 알려주고 싶다.
‘겨울에 그런 바닥 길은 미끄러우니 피해 다녀.’
‘설거지할 때 그릇은 물에 헹궈 담가 놓아야 설거지하기 편해.’
‘여행 가방은 이렇게 쌓아야 여행 가서 꺼내기 쉬어.’
등등 자질구레한 것들까지… 아이가 실수해 낭패를 보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아이에게 쓸데없거나 잊히는 게 허다한데도 말이다.
엄마는 삶의 중간중간 아이에게 지나온 시간의 반성이나 회한 같은 말들을 하고 그 말들이 아이에게 심기기를 바라지만 많은 경우 잊히거나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게 되어 결국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일방적인 훈계나 잔소리쯤의 시간으로 남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그런 날…
늘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그 사람의 존재가 몹시도 그리운 어느 날은 인생의 후미진 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영화 : <리틀 포레스트>(한국판)
혜원이 엄마가 먼저 떠난 집을 떠날 때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은 집을 다시 찾을 때도 참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
혜원은 수능 시험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떠난 엄마에 대한 오기로 대학 합격과 동시에 도시로 떠나 생활한다. 도시에서의 삶이 짧은 영상으로 나왔지만 길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대한민국의 평범하게 가난한 대학생의 삶... 삭막하고 피폐하며 무엇보다 치열하게 열심인 삶.
남자친구와 함께 임용고사를 준비하다 혼자 시험에 떨어져 자존심과 오기 그 어디쯤이 찢긴 채 시골집에 돌아올 때 혜원은 몹시 허기가 졌다.
몸과 마음의 허기 중 먼저 채워진 건 몸의 허기였다.
차가운 눈밭에도 생명이 살아있던 겨울 배추로 끓인 된장국과 마지막까지 긁어모아 갓 지은 한 그릇의 밥. 그게 뭐라고 혜원은 시골집에 돌아와 도시에서 계속 느꼈던 허기를 면하게 된다. 혜원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렇게 자신의 허기를 알고, 허기를 달래줄 음식을 해낼 기운이 있는 아이였다.
혜원의 엄마는 그런 혜원이를 믿었기에 먹다 던져 놓은 토마토 꼭지처럼, ‘저렇게 던져 놓아도 그다음 해 토마토가 열리더라.’라는 믿음으로 혜원을 홀로 남겨 놓지 않았을까?
그리고 혜원이 홀로 돌아올 수도 있는 시골집을 가꾸고 추억하게 하고, 그리고 남겨 두지 않았을까?
시험에 떨어지고 번잡스럽고 구차할 것 같아 며칠만 피해 있자는 생각으로 내려왔던 혜원은 겨울을 지나 봄, 여름, 가을, 다시 겨울이 되어 서울로 떠난다.
혜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친구 영재는 그런 혜원의 떠남을 두고 ‘아주심기’라고 말한다.
혜원은 아주심기를 준비 하러 떠난 거라고.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아주심기를 한 작물은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죽은 것처럼 있다가도 어느 날 제 몸이 아무도 모르게 자랐음을 보란 듯이 농부에게 알려준다. 그 눈밭, 언 땅 속에서도 치열히 하늘을 향해 몸을 뻗어왔음을, 그래서 곧 달고 맛있는 양파가 주렁주렁 열릴 것임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며 아이가 크고 내 도움이 없이도 일상을 잘 살아내게 된다면 혜원의 엄마처럼 아이를 독립시킬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지만 과연 내게 혜원의 엄마 같은 용기가 있을까?

또 나는 혜원의 엄마가 혜원에게 보낸 감자빵 레시피가 담긴 편지처럼 아이에 대한 믿음이 있는 걸까?
영화를 보면서 사람이 자연에서 왔듯이 인간도 자연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여리고 따스한 봄과, 격정적인 폭우 속 여름, 제 팔과 다리에서 하나씩 입을 떨구는 가을, 그리고 다시는 봄을 맞이하지 못할 것 같은 혹한의 겨울은 우리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런 자연의 시간이 기름지고 단 열매를 맺게 하듯이 사람도 그런 시간의 흐름을 견디지 않고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혜원이 시골에서의 삶을 택할지 도시에서 도시인으로서의 삶을 택할지는 모르겠으나 혜원은 엄마가 심어준 자신만의 작은 숲을 찾아내었고 그렇다면 혜원의 아주심기가 어느 곳이든 혜원은 건강할 것이다.

아이가 먼저 제 스스로 자기만의 길을 가겠다고 내 곁을 떠나는 순간이 올지, 아니면 이제껏 불완전했던 내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 되어 아이를 바라볼 때가 되어 내가 아이의 길에서 잠시 사라져 줄지는 모르겠으나 왜인지 이제 아이가 아주심기 전이기는 하나 아주심기를 알고 있는 것 같아 보여 안심이 된다.
사건 발생(?) 몇 시간 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작은 케이크 상자를 내밀며 초승달 눈을 뜨고 딸이 말한다.
‘내가 짜증내서 미안... 내가 봐도 네가지 없었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손수 만들어 왔다며 딸기크림와플로 생색을 낸다.
어이없는 피식거림이 서로 오가고 엄마는 일어나 아이의 밥상을 차린다.
금세 깨질 평화로운 시간이지만 엄마의 깊은 걱정과 한숨을 늘 가벼운 웃음으로 돌려놓을 줄 알았던 너의 그 힘을 다시 한번 믿어본다.

다시 말하지만 너는 그럴 힘이 있다.
네가 지금까지 내게 보여준 것은 바로 그것이다.

네가 가지고 있는 힘으로 네가 아주심기를 하고 단단하고 튼실한 열매를 맺을 날을 엄마는 어디서건 지켜볼 것이다. 그 열매가 못생겼더라도, 흠이 많더라도 그게 온전히 너의 것이라면 네가 만족할 줄 알기를 바란다.
함께이면 좋겠지만 함께이지 않더라도 너만의 작은 숲에는 너의 모든 추억들과 너를 만들어준 많은 것들이 너를 외롭지 않게 할 것을 또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