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About Time
설날을 맞아 모처럼 아이와 뒹굴거리며 한가로운 한 때를 보내다 불쑥 아이가 묻는다.
"엄마는 돌아가고 싶은 때가 있어?"
"아니 없어!"
단호하다. 그러다... 딱 하루 돌이키고 싶은 날을 떠올린다.
"돌이켜 바꾸고 싶은 날은 있지만..."
영화감독을 꿈꾸던 아이는 고3 수능이 끝나고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아마도 그때쯤엔 영화를 먼저 내세우진 않았던 것 같고 그냥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불수능을 마치고 망해버림을 직감했는지 문예창작학과를 가겠다며 예체능 과외를 시켜달라고 했다.
시켜줬다.
뭐든 하겠다는 건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자고 있는 것보다는 나아서.
그 이후로 아이는 시나리오를 쓰기도, 영화를 만든다고 하기도 하면서 매주이다시피 상영관에서 개봉작 직관을 하곤 했다. 재수생이...
꿈에 그리던 재수생활 같아 보였다. 내가 대입을 치르고 전기를 떨어지고 나서 갈등할 때 생각 했던 재수생활과는 완전 다른 모습의 재수생활이어서 요새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러나 했는데 아니었다. 대부분은 독학재수학원이든 기숙학원이든 말 그대로 빡센 일정을 보내는 게 통상적이다. 재수생활도 저답게 했다.
‘적당히 잘하자!’는 중학생 때 인생의 모토는 본인의 기억에서 사라졌을지는 몰라도 삶으로 구현된 듯해 보였다.
그럼에도 아이는 고3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때때로 힘이 든 지 정신과 상담을 가곤 했다. 그마저도 열심히는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병원을 가 약을 받아오는 게 위안인 듯해 보였다. 약을 성실히 먹지 않았다. 내가 챙겨주지 않으면...
아이는 태어난 곳에서 영유아기를 거쳐 초등, 중학 2학년까지 이사란 걸 해보지 않았다. 자기가 태어난 산부인과 바로 뒤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니고, 자전거 타던 길 한편에 있던 중학교를 다니며 등교 거부 따위는 모르던 맑고 밝고 지나치게 긍정적이기까지 했다.
자기 우주 속에서 어떤 전쟁을 치르는지까지는 엄마는 알 턱이 없지만 어쨌든 아이는 어린이집, 학교를 스스로 가고 싶어 가는 몇 안 되는, 엄마에게 한없이 감사한 딸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급식 시간 떠들지 말고 바른 자세로 정해진 시간 안에 밥을 먹어야 한다는 규칙을 세워 놓은 선생님 반에서 아이가 그 규율을 제대로 따랐을 리 만무하고, 선생님의 엄함은 아이에겐 그냥 엄마, 아빠, 선교원 선생님들이 하던 타이름 정도였을 거였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전의 다른 어른들과는 차원이 달랐고 급기야 아이는 그 규율 때문에 선생님께 체벌을 받기도 했다.(그때는 약간의 체벌이 허용되었었나 보다) 아마 선생님도 참을 만큼 참다 안 되겠다 싶어 보란 듯이 체벌을 한 것일 게다.
나 또한 아이 앞에서 그런 순간 많이 무너져 내렸으니까.
그 이후 나는 아이가 어른을 두려워하고 선생님을 무서워하거나 미워할까 봐 주의를 기울여 아이를 살폈고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선생님이 친구들 앞에서 회초리로 때렸는데 밉고 무섭지 않아?"
"매 맞는 건 싫고 무서웠는데 선생님이 싫지는 않아. 선생님이 하지 말라고 얘기한 거 내가 계속 안 지켜서 선생님도 속상했나 봐."
의외의 아이 반응에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그 이후 아이는 내게 그런 아이였다. 쭈욱..., 그렇게 많이 긍정적이고, 상처받지 않는 성격으로...
유난히 겁도 많고 소심해서 처음 하는 일은 늘 두려워해 엄마, 아빠의 손을 빌어 먼저 하는 걸 보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시작할 정도였는데 그런 아이가 부모가 아닌 다른 공간, 새로운 사회에서 생각 이상의 모습으로 적응해 가는 게 신기할 정도였고 나는 아이의 그런 부분에 많은 것을 맡겼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어쩌면 내가 도울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해서 떠넘기듯 독립시킨 것일 수도 있겠다.
중2 2학기가 되며 아이는 처음으로 이사를 하고 전학을 하게 되었다. 울며 불며 이사고 전학이고 가지 않겠다던 아이였으나 어린아이에게 그런 선택권이 있을 리 만무하고 우리는 이사를 했다. 그리고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 곧잘 적응하는 듯해 보였다. 나보다 더 빨리...
그러나 그건 큰 사건과 책임감으로 마음이 황폐화되어 있던 엄마의 그저 믿고 싶은 바람 아니었을까?
전에도 그랬으니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아이는 믿었던 친구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고 불신을 키우던 때가 있었다. ‘살자, 살자!’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을 주변에 검은 연기처럼, 피곤한 얼굴과 지친 팔다리로 표현해 내던 엄마라는 사람은 그걸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 정도의 성장통이라고 방관했을지 모른다.
아이의 성적이 오르고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해내는 아이에게 마음의 어려움을 물을 만한 여유가 그때의 엄마인 내게는 없었다.
아이는 자기 방에 홀로 갇힌 듯 거실이나 주방으로 잘 나오지 않았고 그게 청소년기의 당연한 표상처럼 여겨져 내버려 두는 게 그 나이에 대한 존중이라고 자족했다.
아이는 점점 나빠졌고 어느 순간 팽팽하던 아이의 텐션이 끊어져 버렸다. 코로나 속에서부터...
"엄마 나 죽고 싶어..."
<영화 : About Time>
아버지는 죽음을 앞에 두고 담담히 아들과 이야기 나눈다. 좋아하는 책을 보고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때때로 아들과 격렬한 탁구를 하며 죽음의 시간을 기다린다.
주인공 팀네 집안은 대대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설정이지만 그 외에 이들에게 어떤 뛰어남 같은 것은 없다. 그 능력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지도, 사리사욕을 채우지도 않는다. 속물적인 나는 이 대단한 능력이 저렇게 밖에 쓰이지 못하는 설정의 이 영화에 한동안 매료되었다.
아이의 아빠와 사별한 이후...
영화는 로맨틱코미디, 멜로쯤의 장르를 표방하고 있으나 내게는 가족영화에 더 가까웠다.
팀은 시간 여행 능력을 인생의 위기마다 돌아가 돌이키고, 그 돌이킴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족을 꾸린다. 그리고 원가족인 그의 아버지를 조금은 덤덤히 떠나보내기도 하는, 그의 인생을 보여준다. 인생의 순간순간 마다 팀은 선택을 해야 했고, 다른 사람의 잘못된 선택의 순간도 보아야 했다. 그가 시간 여행을 하는 순간에 그는 자신의 원함으로 바뀐 시간이 때로 주변 사랑하는 사람의 불행으로, 때로는 존재 자체의 부정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험하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 더는 시간 여행을 하지 않게 된다.
시간 여행이라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그가 가지게 된 건 매일매일 특별하지만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었다.
어떤 것은 또 다른 어떤 것을 위해 포기되어야 할 순간이 오며, 떠나보내야 할 인연과도 적절한 인사로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온다. 그리고 설령 인생에 딱 한 번뿐인 결혼식날 폭우가 몰아치더라도 그 인생 또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주해야 한다는, 시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팀이 너무 잘 생기지 않아서 좋았다. 너무 특별해 보이지 않아서 더 몰입하게 되고 팀의 선택과 결정에 공감하게 되었다.
특별할 것 없는 보통날들의 연속인 시간에 대한 순응, 역행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은 때로 아주 중요한 것들을 잃게 할 수도 있으며 그리고 그 일은 그때에 일어나야 했으며, 우리가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으로 앞으로의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는, 아주 지극히 간단한 시간에 대한 태도. 그러나 너무 어렵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깨닫게 되는, 죽기 직전까지도 체득하지 못할 진리.
나에게 돌아가고 싶은 추억이란 없다.
행복했던 어느 때가 없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행복하지 않았던 다른 시간을 반복할 만큼의 에너지가 내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돌이키고 싶은 순간은 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아마 우리는 다른 삶에, 또 다른 공간에 있을 것이다.
아마도...
아이는 아프지 않고 건강한 청소년기를 거쳤을지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아이는 그럴 만한 힘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받아들여야 한다. 시간의 불가역성을... 믿고 싶은 내 세계관, 우주관이 있으나 나의 우주는 내 유한한 시간을 그저 걸어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돌이킬 수 없음으로 후회와 자책이 켜켜이 쌓이지만 그렇게 단단해진 벽에 무수히 부서져 깨지는 또 다른 시간의 파편들을 그대로 떨어지게 놔둘 수는 없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 그 시간임을... 놓치면 안 됨을 보여주는 영화를 보며 왜인지 나도 담담히 내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 떠나보내야 하는 것은 떠나보내라고, 그런다고 그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팀의 아버지는 두 번째 손주의 탄생으로 더 이상은 시간 여행을 할 수 없어 다시 못 보게 될 아들에게 담담히 산책을 제안한다.
아주 평범하고 소소한 어느 하루의 특별함을 그의 아들에게 시간으로 선물하며 아버지는 아들의 시간을 더 이상 함께 걷지 않게 된다.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잊히진 않겠지만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우주를 받아들이자.
거센 폭우로 몸을 못 가눌 정도의 날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날은 너무 힘겨워 돌이키고 싶은 순간이겠지만, 어쩌면 그날은 인생에 딱 한 번뿐인 누군가의 결혼식날일 수도... 그러니 우리가 함부로 돌이킬 수도 돌이켜서도 안 되는 것 아닌가.
그저 지나가자.
가능하면 서로 바라보며 한번 더 웃어주자.
그럼 조금 더 쉬울 테니까.
새해가 되어 나누는 덕담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이다.
우리는 시간과 싸울 수도, 역행할 수도 없이 시간과 함께 지낼 뿐이다. 그 시간을 얼마나 들이고, 어떻게 쓰느냐로 우리의 내일이 달라짐을 매일매일 보고 살뿐이다.
그래서 복될 뿐인 유한함을, 모른 척 받아들이고 사는 시간의 순례자들에게 새해 복이 깃들기를...
또, 생의 폭풍우 속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통과하고 있는 나의 소우주에게도, 한번 더 웃으며, 새해 복 많이 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