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열여덟 번의 선물
중학교 동창으로 내 오랜 친구가 카톡으로 케이크 쿠폰을 보내주었다. 딸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내 생일이었다.
그런데 그날 종일토록 아이에게 선물은커녕 축하한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아이는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을. 재수생이...
아이가 느지막이 일어나 미안해하며 “나중에 좋은 거 해줄게”, 어쩌고저쩌고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변명 같은 사과를 할 때
“괜찮아, 나도 니 생일에 줄 선물 없으니까” 라며 저 밑바닥을 끌어 모아 바닥 보여주기를 시전 했지만 결국 난 그해 겨울 아이 생일에 아이가 갖고 싶어 하던 분홍색이 감도는 앙증맞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선물해 주었다.
재수로 바닥을 치며 보낸 한 해의 마무리 같은 12월에 아이 생일이 있고 아이는 기사회생하듯 대학에 합격했다. 흔히들 말하는 인서울로. 그러니 어쩌겠는가... 너무도 당연히 선물이 있어야 하는 생일날, 아이에게 잠깐이지만 기쁨을 선사하는 수밖에…
그 잠깐의 기쁨을 보는 게 왜 엄마에겐 보상 같은 것이 되어버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그 순간을 생일 선물 리본을 달고 날아간 폴라로이드가 기록해 줄 거라는 게 참 기특스러웠다. 속도 없이…
대학에 합격하고 아이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주 3회로 짧았지만 1달을 하고 아르바이트비를 받는 걸 보고 은근히 기대했었다. 그래도 첫 월급이나 마찬가지니 엄마에게 뭔가 선물을 하지 않을까 하고.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아이는 늘쌍 하는 그 귀차니즘을 자기 가족에게만 부린다. 덕질하는 아이돌이나 배우, 친구 선물은 어떻게 해서든 마련하는 것 같더니... 엄마와 다른 가족 선물은 나중에 시간 될 때 사러 나간단다. 겸사겸사 나갈 일이 생길 때... 그게 일주일이 걸릴지 한 달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경험상 그러다 ‘미안… 까먹었다’가 결론일 게 뻔해 용돈에서 빼고 준다며 다른 가족을 위해 내가 준비해 준 선물이 몇 번인지…
자기가 받는 선물은 너무 당연하며 자기가 준비해야 할 선물은 기회가 되면 하겠다는 아주 성의 없어 보이는 아이의 생각에 또 욱이 발동하고 아이에게 미운 마음이 생긴다.
<영화 : 열여덟 번의 선물>
꼬마 안나의 생일날 즐거워하며 모인 사람들 틈에 안나는 골이 잔뜩 나 있다. 급기야 선물로 도착한 피아노 뚜껑을 쾅 닫으며 주변을 놀라게 한다.
꼬마 안나가 자신의 생일날 안나를 낳고 돌아가신 세상에 없는 엄마의 피아노 선물을 받으며 어떤 마음일까 하는 그런 마음보다 그 선물을 하고 세상을 떠났을 엄마의 마음에 더 감정이 꽂히는 건 어쩔 수 없는 엄마이기 때문일까…
엄마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엄마로 아이와 시간을 함께 하며 나누어 주어야 할 사랑이었지만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엄마는 자신의 생명을 아이의 탄생과 맞바꾸었다.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18년어치의 생일 선물을 고르고, 고른 선물을 하나하나 구매하고, 준비해 줄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눈을 감아야 했던 그 엄마의 마음을 감히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엄마의 목숨으로 태어난 아이는 일찌감치 삐뚤어진다. 자신의 생일이 엄마의 제삿날인 것을 알게 되는 때부터 아이는 의문이 생겼을 것이고, 그 의문은 질풍노도의 시기 걷잡을 수 없는 의혹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과연 이런 선물에 어울리는가?
이런 선물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공허하고 쓸쓸한 생일선물… 그 앞에 늘 감사와 기쁨을 필요 이상 보여줘야 만족해 보이는 아빠와 주변 사람들…
영화는 안나를 타임슬립시켜 자신을 임신한 엄마의 곁으로 보낸다. 엄마가 자신을 낳음과 동시에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타임슬립한 자신과 함께 열여덟 번의 안나의 생일 선물을 고르며 선물의 의미와 엄마의 마음을 보여준다.
너는 그런 선물을 받을 충분한 사람이라고.
안나의 생일이 슬픈 날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충분히 넘치는 사랑을 담아 보낸 선물이라고.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할머니나 주변 친척들의 생일날 작은 것이라도 선물을 했다. 가난한 집안의 내게 그런 용돈이 충분히 주어졌는가, 아니다. 나는 돈이 없었고 그 돈은 역시 넉넉하지 않은 나의 엄마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돈을 주며 할머니 담배 한 갑을 사 오라고 시켰다. 그리고 할머니 생신날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그걸 선물로 드리도록 했다. 난 영문도 모르고 선물을 드리고 칭찬을 받았고…
그런 일들은 크면서도 계속되었고 용돈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 때부터 작은 거라도 주변 사람들 선물을 하나씩 준비하는 것은 내게 기쁨 이전의 의무 같은 것이 되었다.
‘나는 당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를 한 번씩 드러내는 장치 같은.
그건 할머니에게는 때로 담배 한 갑이었고, 덧버선, 양말 같은 작은 것이었지만 할머니는 두고두고 그걸 자랑스럽게 말씀하시고 꺼내 보이며 으쓱해하셨다. 내가 있는 앞에서…
나는 때로 부끄러웠고, 미안했고, 그리고 할머니가 진짜로 좋아하시는구나, 선물이 아닌 나를, 억지일수도 있지만 내 마음이라고 알고 기뻐하셨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다분히 억지스러움에서 시작됐을지 모르는 가짜는 어느 순간 진짜로 변했다.
살아 계실 때 나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돌아가시고 한참이 지나고 내 엄마의 늙음을 바라보면서 할머니를 이해하고 그리워한다. 그리고 그때 그 작은 선물이 할머니를 웃게 했고 아들을 일찍 보낸 할머니의 고단한 삶에 짧은 순간이지만 위로가 되었음에 감사한다.
선물은 그 사람의 기억과 함께 한다.
누군가에게 보내어진 선물은 이미 물질이 아닌 나의 마음이 되고 그 시간의 내가 된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억지스럽게 시작했던 선물하기지만 받는 사람의 미소와 어루만지는 손길이 되돌아와 뿌듯하게 차오름을 경험한 이후는 달라진다.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위로와 자랑이 되는 선물의 의미를 아이가 알게 되는 날 내가 이 세상에 있어 아이와 이야기할 수 있다면 참 따뜻할 것 같다. <열여덟 번의 선물>처럼.
세상에 나가 처음 제 힘으로 돈이란 걸 벌어온 아이를 종용해 난 끝끝내 내가 좋아하는 가방을 선물로 받아냈다. 참 모진 어미 같다만…
가방 하니 명품을 생각할까 봐… 그냥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자그마한 에코백!
언젠가 내 기억이 희미해지면 그 에코백은 그냥 아이가 내게 처음으로 돈을 벌어 선물한 소중한 기억으로만 남을 것이다.
아이도 자신이 깊게 생각지 않고 떠밀리듯 한 선물일지 모르지만 그날의 기억과 이야기가 어렴풋이 남을 것이다. 그 작은 선물이 엄마에게 전해지며 마음이 되고 위로가 되어 오래도록 미소지어짐을 그때는 아이가 알기를…
‘고맙다’
나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날 네가 했어야 할, 듣지 못한
‘생신 축하해요’를
이후에 라도 잘해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