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당하는 모유수유 <모유수유 마지막>
모유수유를 잘하려면,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일단, 모유의 양이 많아야 한다.
근데 이건 원래 가지고 있던 가슴의 크기랑은 절! 대! 상관없다.
작아도 잘 나오고, 커도 안 나올 수 있다.
모유의 양이 적다면, 늘리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모유수유하면서 다이어트? 말도 안 된다.
무조건 세끼 꼬박꼬박, 간식도 챙기고, 물도 왕창 마신다.
이렇게 먹어도 살 안 찔 만큼 모유수유는 정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렇다고 살이 빠지는 건 아님. 유지어터 느낌이랄까…ㅋㅋ)
엄마가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면, 이제 아기도 힘을 내야 한다.
‘젖 먹던 힘까지 낸다’는 말이 진짜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온 얼굴이 빨개지도록 빨아댄다.
근데 이때 엄마 젖이 원하는 만큼 안 나오면? 말짱 도루묵이다.
반대로 엄마 젖은 팽팽 도는데 아기가 입 짧거나, 유두를 거부하고 젖병만 찾으면?
또 우리의 관계는 위기에 빠진다.
나는 이 위기, 아니 이 밀당을 정말 많이 겪었다.
남편과 연애할 때도 이렇게 밀당하진 않았던 것 같다…
처음은 초유가 돌기 시작할 무렵.
아기가 열심히 먹어서 양을 늘려야 하는 타이밍에,
갑작스러운 두드러기로 직수를 멈추게 됐고,
3일 뒤 직수를 재개했을 땐 양이 줄어있었다.
그 덕에 아기는 성에 안 차서 짜증을 내고,
내가 다시 양을 늘려놓으니 그새 편한 젖병에 익숙해져 버렸고…
다시 먹이지 못하는 스트레스에 젖은 금방 말라버렸고, 두드러기는 또 재발했고…
이렇게 타이밍은 안 맞고, 마음은 계속 엇갈리는
끝없는 모유수유 밀당이 시작되었다.
집에 와서는 새벽수유도 해보고,
한 시간마다 먹여도 보고,
그러다 또 두드러기로 약을 복용하면서 다시 중단.
그 와중에 아기는 유두혼동까지 겪고,
나는 지쳐서 울고, 화도 내보고,
그런 내 모습에 또 자책하고…
‘내가 준비도 안 된 엄마인데, 아이부터 세상에 꺼내서 둘 다 망친 게 아닐까’ 하는 후회도 했다.
그렇게 지쳐있는 나를 보며, 남편도
‘나는 힘이 못 돼주는 것 같아’ 하며 같이 울고,
우리 둘 다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고,
“왜 다들 포기하라고만 해? 나는 견디고 있는데!” 하며 참 많이 싸우기도 했다.
그 시기는 진짜 전쟁통 같았다.
세상이 나에게 “모유수유 하지 마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나는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내 몸을 혹사하며 고집을 부렸다.
어느 날은 유두혼동 극복을 위해
도우미 선생님과 단호하게 수유 교육을 했는데,
아이는 한 시간을 발작하듯 울었고,
나는 누굴 위한 수유인지 모르겠다며 울고,
그걸 지켜보던 선생님도 울고…
결국 셋이 부둥켜안고 울었던 날도 있었다.
누굴 위한 모유수유였는지, 이젠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호르몬 변화와 괴상한 모성애는
모유수유 집착으로 자라났고,
나는 아프고 힘든 걸 다 참고 견뎠다.
하지만 결국,
통키가 태어난 지 80일째 되던 날.
아기의 체중이 뚝 떨어졌고,
그 순간 나의 고집도 꺾였다.
내가 아픈 건 참아도,
아이가 아픈 건 참을 수가 없었다.
그건 더는 참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단유를 선언했고,
모유수유를 끝내게 되었다.
단유하고 나서 3일쯤은
새벽마다 쇼파에 앉아 혼자 울었다.
이젠 내 젖을 먹는 아이 얼굴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아쉬움,
그리고 몸을 잘 챙기지 못해서
100일도 못 먹였다는 죄책감이 오갔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통키 160일 차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모유는 엄마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앞으로도 줄 수 있는 사랑과 선물은 무궁무진하다.
그때는 그게 전부 같았고,
그래서 미련하게, 눈물 나게 힘들게 했던 거겠지.
물론, 모유를 줄 수 있다면
1년이고 2년이고 주는 것도 좋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못 준다고 해서
그게 아기에게 못할 짓은 아니다.
80일간의 모유전쟁을 3편으로 정리하려니
매일의 눈물까지 다 담긴 건 아니지만,
정말 고난의 길이었다는 건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모유수유,
좋다.
하지만 엄마 혼자 하고 싶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정말 복합적인 이유들로 인해
안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못했다고, 포기했다고 해서
나쁜 엄마, 준비 안 된 엄마라는 뜻은 아니다.
그땐 그게 최선이었고,
우리는 그때도 지금도
충분히 최선을 다하는,
성장 중인 엄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