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 <있잖아, 누구씨>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정말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첫 장을 넘기면 단란한 가족사진 속 엄마와 사별하고,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는 아빠로 인해 혼자 남은 고양이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딘가 다르다는 이유로 학교에선 이유 모를 배척을 당하지만, 고양이는 그저 묵묵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곤 혼자가 더 좋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즈음 늘 혼자인 고양이를 위로해 주는 검은 생명체가 나타났다. 고양이는 검은색 존재에게 '누구씨'라는 이름을 지어주고는 그동안 너무나 필요했던 말벗이 생긴 것에 기뻐했다.
그림책에서 고양이가 누구씨와 함께 그림 그리고,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노는 장면에서 아이의 솔직한 바람이 처음으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했다
책에 등장하는 ‘누구씨'를 보며 유아기 아이들이 심심할 때 만들어내는 상상친구가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논다는 것‘은 생존이기 때문에 실제로도 혼자 있는 아이들은 놀이 대상을 창조해 내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이는 사람의 생존시스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점점 고양이에게만 보이는 '누구씨'와 이야기하는 모습을 어른들과 주변 고양이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고 비난하기 시작한다. 고양이는 누구씨에게 화를 내며 '거짓말쟁이'와 '이상한 고양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누구씨를 쫓아내고 생각 속에서 지워버린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이후 어린 시절과 비슷하게 남 들과 다르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다가 결국엔 어딘가 잘못되어 버린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리곤 결국엔 '누구씨'를 처음 만난 장소인 어린 시절 자신의 방으로 찾아가 '누구씨'와 다시 마주한다. 그리고 더 이상 두렵지 않다고 말을 건넨다. 그리곤 누구씨의 얼굴에 두 눈과 웃는 입을 그려주었다.
이 그림책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내면의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했다. 그리고 또다시 보았을 땐 정신증의 증상인 환각에 관한 이야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몇 번을 보면서는 어느 외로운 아이에 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원치 않던 때에 대상의 부재를 경험한 어린아이들이 경험할 수도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어른이 된 내가 외로웠던 어린아이였던 '나'의 마음을 만나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심리치료 과정과 매우 닮은 여정이어서 내담자들을 만날 때 이 그림책이 가끔 떠오르곤 한다. 과거 어린아이였을 때 미처 다루지 못했던 마음이 불쑥 말을 걸어올 때 이 그림책이 나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말벗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