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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재 Sep 01. 2022

당신의 직장 상사는 안녕하신가요?

나의 미친 상사를 소개합니다

나의 직장상사 명희 씨(가명)는 나이를 거꾸로 먹었다. 한국 나이로 쉰이 넘었지만 그의 말과 행동, 인성, 염치, 양심, 지적 능력 등을 보면 두 자릿수의 나이를 매기기에도 아깝다. 아직 그와 일한 기간은 1년이 갓 넘었지만 그 1년은 조선이 일본에 식민 지배당했던 동안의 1년 만큼이나 길었다.


내가 그를 최악의 상사로 꼽는 이유를 하나씩 대보기로 하겠다. 부디 이 글에 공감하는 직장인이 몇 없으면 좋겠다. 그렇다는 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평균 행복지수가 높다는 뜻이니까.




첫 번째로, 그는 절대 자신의 탓을 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이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지, 외부에 있는지 판단을 하기 마련인데 명희 씨는 절대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는다. 자신 외부에 있는 어떤 것, 어떤 상황, 그것도 안되면 불가항력의 탓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명희 씨 모니터에 모기가 앉았다. 명희 씨는 반사적으로 모기를 잡으려 손으로 모니터를 세게 내려친다. 그러자 모니터 화면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 명희 씨는 말한다. "어머, 이 모니터가 왜 이러지? 모니터가 중국산이라 잘 망가지네.(모니터 탓) 모니터 새 거 하나 가져와 봐." 그러면 나의 업무에 모니터를 새로 구해 오는 것이 추가된다. 물론 명희 씨는 3살 짜리 아기도 아니고 20년 넘게 일한 어엿한 공무원이다.


자신의 탓을 하지 않는 그의 입버릇 중 하나는 "정신이 없어서"이다. 그에게 고마운 점이 있다면 그의 그 말이 너무 싫어서 나는 요새 "정신이 없다"라는 핑계를 더 이상 대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자신이 사고를 쳤을 때 "정신이 없어서 ~했다."라고 말한다는 것은, 오늘만, 지금만, 정신이 없었던 잠시 동안만 내가 실수로 사고를 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본인은 잘못을 한 게 하나도 없다는, 그의 얄팍하고 졸렬한 자아가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금세 감추는 것이다.


두 번째로, 그는 매우 이기적이다.

말 그대로 '자기만 안다.'. 자기 중심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자기 중심적'이라는 말은 모든 것들 중에 자기가 중심에 있다는 뜻인데, 그의 좁디 좁은 유니버스에는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없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화나 짜증, 하소연과 푸념은 자주 한다. 상대방이 들어 주기를 바라면서 자신이 상대방의 고민이나 어려움을 들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코로나를 옮기는 건 싫으면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코로나를 옮기는 것에 대해ㅐ서는 거부감이 없다. 대단하지 않은가?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는 데에는 함께 일하는 다른 직원의 탓도 있다. 공무원들 중에는 너무 착해서 이렇게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들을 오냐오냐 하면서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없고 따끔하게 쓴소리하는 사람들만 있었으면 아마 어쩔 수 없어서라도 개선되었을 텐데, 불쌍하니까, 얼굴 붉히기 싫으니까, 좋게좋게 웃으며 무난하게 넘어가 주는 것이 하루하루 쌓이다 보니 이 사람 나이가 쉰이 넘은 것이다. 이제 이 사람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는 "싸가지 없이, 새파랗게 젊은 게 어디다 충고를 하냐"라고 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 말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그는 앞으로 한 달 뒤에 있을 승진 시험 준비를 위해 오늘부터 출근하지 않는다. 연차를 모아서 한 달간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몇 달 전부터 업무 시간에 시험 준비를 하느라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왜냐면 자기에게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이기 때문이다. 그의 몸무게만큼이나 묵직하고 두둑한 그의 이기주의는 그의 모든 행동에 대해 언제나 무죄 판결을 내린다. 이 글을 읽는 어느 누구도 업무 시간에 직장 동료나 상사가 일을 제쳐 두고 자신의 개인적 용무만 보는 것을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명희 씨는 가능하다. 그리고 그 업무들은 고스란히 부하 직원들에게 전가된다.


마지막으로 그는 책임감이 없다. 

아무리 월급 루팡인 직장인이라도 자신이 맡은 일,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라면 최소한 일을 끝맺음하려는 노력은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맡은 일을 과대평가한다. 그래서 항상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한 채 일을 흐지부지 끝내거나 주변 사람들이 도와줄 때까지 징징대기 시작한다. 인디언들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것처럼, 그도 누군가 도와줄 때까지 "미치겠네."와 "왜 안되지?" 라는 혼잣말을 수십 번씩 반복한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그 덕분에 우리 도서관 서비스의 품질은 저하되고, 이용자들에게는 엉터리 정보와 불쾌한 경험을 선사하며, 웃으며 끝낼 수 있는 일도 화내며 끝내게 된다.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 하는 일은 항상 이런 식이다. 자신에게 직접적이고 눈에 보이는 피해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그는 어떤 행동이든지 하니까, 조직에 해가 된다는 것도 모르고 민폐 행위를 계속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20년 넘게 세금을 열심히 낭비하며 살고 있다.




아직 한참 자라야 할 생후 600개월 넘은 명희 씨는 단점투성이인 듯 하지만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그를 보면서 나이듦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잇값'을 못 하면 어떻게 되는지, 내가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타산지석과 반면교사의 교훈을 (너무 많이) 주었다. 이제는 나 스스로가 남 탓을 하거나, 대책 없이 이기적으로 굴거나, 책임감없게 행동하면 '설마 나도 명희씨처럼?'하고 화들짝 놀라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내가 혐오하는 사람과 닮아가는 나의 모습이 죽도록 싫기 때문이다.


앞으로 조직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나에게 충고해주는 사람이 적어질수록 나는 꼰대가 되어갈 것이다. 그럴 때면 명희 씨를 떠올리며 그와 반대로만 행동하려 한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최악의 꼰대는 안 되겠지. 최악의 상사를 만나 최고의 가르침을 받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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