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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재 Sep 02. 2022

육아는 함께? 천만의 말씀!

육아에서 남녀 간의 균형 맞추기

딸이 태어난 지 2년 하고도 4개월이 흘렀다.


와이프가 임신했을 때,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야 했다. 공무원인 나와 자영업자인 와이프는 일하는 시간도, 요일도 조금씩 달랐다. 육아에 공백이 생겨서는 안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현실적인 선에서 아기를 케어할 수 있을지에 대해 면밀히 검토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출산 예정일이 다가왔다.


와이프는 출산 예정일 한 달 전까지 일을 나갔다. 자영업자의 특성 상, 일을 쉬는 것이 그리 녹록지 않다. 공무원의 경우 출산휴가 90일을 쓸 수 있지만 내가 낳는 것이 아니니... 와이프는 그렇게 예정일까지 기다리다가, 일주일 후에 출산했다. 거의 20시간 동안 병원에서 진통하다가 겨우겨우. 진통이 오는 것을 하루 종일 옆에서 지켜보자니 내 마음도 무겁고 아프고 미안했다. 혼자 나가서 밥 먹고 오는 것도 미안했고, 아파 죽겠다는 와이프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없는 것도 너무 미안했다. 


다행히 건강하게 퇴원한 와이프와 아기는 산후조리원으로 가서 2주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코로나 때문에 방문도 안 되고, 들어갈 수도 없어서 혼자서 마지막 자유를 만끽했다. 잘 수 있을 때 많이 자 두라고 다들 그랬으니까... 와이프가 아기를 데리고 오자 집의 모든 것은 아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산후도우미가 있던 3주가 지난 뒤 정말로, 이제 우리 부부와 아기만이 남았다.


이제, 내가 나설 때가 되었다. 우리가 준비한 플랜대로 나는 직장에 출근해 육아휴직 의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육아휴직은 내게 약간 로망 같은 것이었다. 육아를 하면서 일도 쉬고, 심지어 월급도 일부 나온다니! 일단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너무나 끌렸다. 물론 집에 갇혀서 하루 종일 애를 본다는 것이 그렇게 힘들 줄은 미처 몰랐던 때였다. 그래도 어느 정도 각오를 했기에 회사에 11개월의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나는 11개월짜리 임기제 전업주부가 되었다.




서론이 길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자가 육아휴직을 한다고 하면 여자가 육아휴직 한다고 했을 때보다 더 많은 응원을 보내고, 더 기특해하고, 더 대단한 사람 취급해준다. 내가 육아휴직 한다고 했을 때 직장에서 내가 들었던 말은 "그래, 남자가 많이 도와줘야지."나 "요즘엔 함께 키우는거라며?"와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성원, 칭찬, 격려에는 뭔가 이질감이 있었다. 정말로 육아가 함께 하는거라면, 남자가 육아휴직 하는 게 그리 대단한 일일까? 


육아라는 단계 전에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 있다. 그리고 그 어려운 과업의 99% 이상을 여자가 혼자 감당한다. 임신 준비기간부터 하면 1년 가까이 술, 커피, 탄산 음료, 맵고 자극적인 음식, 회나 초밥과 같은 날 것 등등 맛있는 것도 못 먹고 참아야 한다. 잠도 똑바로 눕지도 못하고 항상 옆으로 누워 자야 한다.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을 하면 안 되는데 서울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한다는 것 자체가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이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을 수라도 있으면 한결 나을 텐데,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 중에 곱게 자리를 비켜 주는 사람이 없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임산부에게 무관심하고 무신경하다. 임산부 배지를 눈 앞에 흔들어대도 비켜 주지 않는 사람이 태반이다. 제발,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으면 주변에 임산부가 오는지 잘 살피다가 눈치껏 일어나든지, 자신 없으면 그냥 앉지 말자 쫌!!!!! 엄마 뱃속에서 나온 사람이라면 이건 지켜줬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면 인정. 안 비켜줘도 된다.


그렇다면 출산은 만만한가? 아니다. 빈약한 나의 경험과 언어로 표현하자면, 와이프가 고통스러워했던 21시간은 내 군 생활 21개월의 고통 총합과 맞먹어 보였다. 내가 군대에서 1개월 동안 받았던 고통이 1시간만에 몸에 가해지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출산 후의 회복 과정도 더디고 고통스러워보였다.


이렇게 (고통의) 출발선에서부터 저만치 앞에 가 있는 여자를 상대하려면 남자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임신과 출산에 있어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있으나 그것은 '도와주는'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남자가 임신과 출산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육아. 남자가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육아에 시간과 노력을 더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남녀 고통의 균형이 50대 50으로 맞춰진다.


물론 그렇다고 육아를 남자 혼자 다 하기에는 너무나 버겁다. 나도 육아휴직하는 동안 이유식도 직접 만들고, 집안일도 하면서 집안에 하루 종일 있어보니 우울증까지는 아니지만 답답함이 마음 속 가득했었다. 와이프가 퇴근하는 시간만을 기다리며 가지 않는 시간을 애써 버티곤 했다. 그 때 와이프가 퇴근하고 오면 아기를 돌봐 주고, 나를 챙기려고 애썼던 것이 기억이 난다. 내가 짜증 내고, 투정 부리고, 화내던 것도 받아 주었던 와이프가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고맙다. 


현실적으로 직장 때문에 주 양육자가 될 수 없는 남자들이 많을 것이다. 육아휴직 자체가 회사 분위기 상 어려울 수도 있고, 경제적 여건 때문에 불가능할수도 있다. 나의 경우 원래 월급이 쥐꼬리라 휴직수당을 받아도 괜찮았지만 외벌이거나 남자 쪽이 벌어오는 돈이 많아 쉽사리 육아휴직을 못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퇴근하고 집에 들아가면서 아기와 함께 고된 하루를 이겨낸 와이프에게 고생했다고, 내가 아기 볼테니 조금 쉬라고 말해주자. 그리고 최대한의 에너지를 끌어내 아기와 와이프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해주자. 육아는 함께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자. 육아는 '내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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