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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재 Feb 05. 2023

아이 키우는 사람은 죄인인가요

회사에서 육아시간 한 달 쓴 후기

작년, 올해 1월부터 육아시간을 쓰기로 결심했다.

공무원이니만큼 사용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상급자들에게 육아시간을 쓰겠다는 말을 하고 허락을 받았다. 근무지 특성상 같은 팀에서 일하는 2명(한 팀에 3명이다)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나는 그렇게 팀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하게 되었다.


처음엔 매일매일 육아시간을 결재받는 것이 조금 어려웠다. 어쨌든 같이 일하는 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니까. 그래도 꿋꿋이 썼다. 내가 놀러 가거나 쉬려고 육아시간 쓰는 건가. 어차피 집에서 일(육아)하려고 일찍 가는 건데. 쓰다 보니 만족스러웠다. 4살 딸아이와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고 저녁시간도 좀 더 여유로워졌다. 육아를 도와주시는 장인어른, 장모님께도 덜 미안해질 수 있었다. 2시간 일찍 퇴근하는 것은 생각처럼, 생각만큼, 생각보다 괜찮았다. 물론 6시에 퇴근하고 집에 가서 아이를 돌보는 것도 힘들었지만, 4시에 퇴근해서 아이를 돌보는 것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회사에서 합법적으로 일찍 나올 수 있으니 육아시간이라는 제도를 꼭 이용하고 싶었다.


육아시간은 만 60개월(만 5세)이 되기 전까지 최대 2년 동안, 하루에 2시간 내에서 출, 퇴근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제도이다.

우선 나는 최대한 육아시간을 많이 쓰고 싶었다. 아이가 곧 만 3세가 되기 때문에 그전에 쓰기 시작해야 2년을 채워서 쓸 수 있다. 그리고 늦게 출근하는 와이프가 아이의 등원을 책임지고, 내가 일찍 퇴근함으로써 직접 어린이집 하원은 못 시키더라도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아이를 돌보시는 데에 짐을 덜어 드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육아시간을 한 달 정도 사용하고 나니, 일터에서 내가 '미안해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하는 곳의 특성상 6시까지 적어도 직원 한 명은 상주해야 한다. 세 명 중 두 명이 없는 것은 괜찮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나도 혹시 나 말도 나머지 두 사람이 일이 있다면 그날은 육아시간을 쓰지 않고 6시에 퇴근하기로 했다. 그리고 실제로 하루는 그렇게 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나를 '배려'해준다는 명목으로 나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었다. '우리가 너를 이만큼이나 배려해서 매일 2시간씩 일찍 가고 있으니, 너도 우리한테 고마워하고 미안해해라.' 물론, 육아 지원 제도는 법적인 강제성도 물론 있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양해와 배려가 많이 필요하다. 육아휴직은 대체직을 뽑아야 하고, 업무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같은 팀 사람들이 좀 더 일을 해야 한다. 육아시간도 한 명이 2시간 동안 없으니 2시간 동안 일어나는 업무에 대해 나머지 사람들이 수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육아 지원 제도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사과를 요구해야 하는 일일까?

어린아이들처럼 '쟤 때문에 내가 더 힘드니까 쟤한테 화풀이할 거야!'라는 생각일까? 참고로 나에게 사과를 요구한 사람은 50대 중반이며 20대의 자녀도 있다. 만약 자기 자식이 그런 대우를 받으면 '괜찮아, 들어보니까 육아시간 쓴 네가 잘못했네 뭐. ^^' 이럴 것인가? 아닐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죄인이 아니다. 죄인은커녕 일을 아주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퇴근 후에도 밤새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면서도 출근해서 자신의 업무를 소화해 내는 열정맨들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죄인 취급한다면, 자신을 부양하는 세대가 과연 어느 세대인지, 자신이 우리나라의 저출산 고령화에 지대하게 이바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아니 여러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육아시간을 계속해서 쓸 것이다. 누가 뭐라건, 내 할일만 다 한다면 4시에 퇴근할 것이다. 기성 세대의 편견과 선입견에 당당히 맞서서 내 권리를 찾을 것이다. 의무를 다하고 찾는 권리는 잘못되지 않았다. 의무조차 지키지 않고 다른 사람을 탓하는 권리를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잘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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