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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재 Sep 06. 2022

주사위를 굴려라, 하나 둘 셋!

당신이 결혼 상대를 찾고 있다면 

얼마 전 군대 동기인 L을 만났다. L은 나와 동갑인 32살이고 여러 번의 이직을 통해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육아로 인해 시간을 좀처럼 내기 힘든 나와 회사 일로 눈코뜰 새 없는 L이 어떻게 시간이 맞아 오랜만에 회포를 풀게 된 것이다.


회사 일과 대학원, 자신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L은 나에 비해 '스펙'이 화려하다. 훤칠한 키에 옷도 잘 입고 잘 꾸밀 줄도 안다. 서울 4년제 대학을 나와 대학원도 다니면서 유망한 대기업에서 고액 연봉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말도 잘 해, 글도 잘 써, 장점이 수두룩하다.


그런 L과 한잔 하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가 '결혼'이 되었다. 나는 결혼 5년 차에 3살 짜리 아기도 있고, L은 연애는 많이 했지만 아직 결혼할 만한 상대를 찾지 못한 것이다. 아니, L의 말대로라면 지금까지 사귀었던 사람 중 몇 명은 휘성처럼 '결혼까지 생각했어'라고 했지만 휘성처럼 정말로 결혼까지는 못했다. 그가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주사위 이론' 때문이었다.


그는 상술했듯 상위 n%에 들 만한 신랑감이다. 외모 괜찮지, 학벌 괜찮지, 연봉 높지, 연애도 잘 하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평가가 주관적으로 객관적으로도 높은 상태이다. 그는 자신을 주사위 눈으로 쳤을 때 4.5정도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결혼을 하게 된다면, 자신과 같거나 더 높은 점수를 가진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친구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결혼 상대라고 생각하면 '?' 물음표가 띄워진다고 했다. 다음 주사위를 던졌을 때(헤어지고 다른 사람과 사귀게 되었을 때) 더 높은 주사위 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확실하게 눈앞에 있는 여자친구의 스펙보다는 앞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의 '가능성'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미래지향적(?) 연애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9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 다수의 남성, 소수의 여성으 플레이해 보았을 넥슨의 횡스크롤 온라인 RPG 게임 '메이플스토리'에서는 처음 캐릭터를 생성할 때 주사위를 돌린다. 힘, 지능 등과 같은 능력치의 분배를 주사위를 통해 랜덤으로 하기 때문이다.당시 가장 필요 없는 능력치를 최저값으로 맞추기 위해 캐릭터를 만드는 데에 몇 분에서 몇십 분이 소요됐다. 그만큼 주사위를 돌려서 원하는 값을 얻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당시 주사위를 굴려 원하는 스펙을 맞추는 것은 웬만한 인내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물며 인간관계에서의 주사위 굴리기는 더더욱 어렵다. 게임에서 몇 초면 한 번 굴릴 수 있는 주사위를 현실에서는 몇 개월에서 몇 년이 걸려 한 번 굴릴 수 있다. 썸부터 연애, 상대방의 내면을 알아가고 결혼까지 결심하려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소비되는데 다시 주사위를 굴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건, L에게 '완벽한 결혼'이라는 환상이 있어서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결혼을 하면 현재와는 다른, 드라마틱하게 행복한 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환상. 아래에서 위로의 도약, 또는 위에서 최상위로의 도약. 비약에 가까운 그 도약은 그의 이직처럼 한 번 회사를 옮길 때마다 직급과 연봉이 높아지는 그런 류의 것이었다.


내게 몇 없는 친구, 그 중에서도 가장 친한 친구인 L과 나는 많은 점에서 비슷하고 다르다.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싶어하며 그것을 증명해내고 싶어하는 점에서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는 삶의 러닝메이트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그 증명의 방식과 과정에서 다른 점이 뚜렷하다. 결혼에 있어서, 내가 그의 '주사위 이론'을 긍정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물론, 개인의 선택이고 성향이며 타인에게 무해하다는 점(본인에게 무해한지는...)에서 나는 그를 지지하고 앞으로도 지지할 것이다.


나는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었기도 하거니와, 상대방의 스펙을 점수로 매겨 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애초에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있지는 않더라도 나 자신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좋지 않기도 하고, 상대방에 대해 요목조목 세세하게 평가할 안목도 내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냥 좋아서 사귀게 되었고, 사귀다가 때가 되어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하고 보니 여러 가지가 잘 맞는다고 생각했고, 아이가 있는 지금도 아이 엄마 이전에 와이프로서, 둘도 없는 친구로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 주변에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비혼 제외) 친구들이 많다. 결혼 생각이 없는 사람보다는 아직 완벽한 결혼 상대가 나타나지 않아서 하지 못한 친구들이 더 많다. 32살이라는 나이는 이제 결혼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고민하고 결혼 상대에 대한 기준도 뚜렷해질 때이다. 하지만 누군가 만나기도 전해 정해 놓은 기준은 결국 만날 수 있는 '좋은'사람의 숫자를 현저히 낮게 만들어버린다. 현실적인 결혼에 대한 관념도 좋지만, 먼저 누군가를 만나면서 그 사람과 보내게 될 행복한 시간들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그림이 잘 그려진다면, 그 사람이다.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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