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참 넌 유별나다. 배고프다면서 서서 먹는 것이 창피하다고, 이 맛있는 오뎅이랑 떡볶이도 안 먹는 다는 거지. 어디 한 번 쫄쫄 굶어봐라 그래야 정신차리지, 넌 대체 누굴 닮은 거니?”
아들이 초등학생 시절, 거리를 다니거나 외국 여행을 할 때마다 길거리 음식을 먹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걸어 다니며 먹는 것은 거지들이나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서, 배가 고파도 길거리에서 초콜릿이나 사탕을 줘도 먹지 않는 아이였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어린 시절 거리에서 핫도그나 뻔데기도 먹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도 밤늦게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친구들이 “오뎅 하나 먹자”고 하면 “길에서 무슨 음식을 먹냐”며 핀잔을 주곤 했다.
조상이 양반 집안도 아니었고, 부모님께 그렇게 배우지도 않았는데, 내가 유별났던 유전자가 아이에게도 닮아버렸다. 게다가 아들 앞에서 내가 거리 음식에 대해 유별나게 구는 모습을 보인 적도 없는데, 부모와 자식 간의 닮아감은 참으로 묘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럭셔리한 식당보다 허름한 식당 문 앞에 놓인 자리를 보면, 음식보다 그 분위기에 입맛을 다시곤 한다. 술을 좋아하기에 더 그럴지도 모른다. 내게 식사는 곧 술안주였다. 비가 오면 파라솔 아래 자리를 잡고 거리에서 먹는다. 사람들의 소리와 자연의 냄새를 느끼며 먹는 길거리 음식은 미각을 넘어 시각과 후각으로 맛을 즐기는 경험이 된다.
15년 전쯤, 회사 근처에서 몇몇 동료와 함께 포장마차를 동업으로 운영한 적이 있다. 압구정의 유명한 한식 포차 주방장을 섭외해 개업했지만, 초기 몇 달 동안만 지인들과 고객들이 매상을 올려주었고, 그 이후로는 거의 파리만 날리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결국, 동업자들과 새벽까지 식당 밖 파라솔 아래에서 매일 주방장의 요리를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1년 만에 모든 투자금을 잃고 쫄딱 망했다. 위치가 좋지 않았고, 당시엔 고급스러운 샤케와 와인집이 유행하던 시절이라 포장마차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웠다. 나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허름한 분위기를 너무 따졌던 것이다. 지금이라면 그런 곳이 오히려 인기를 끌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포장마차 사업은 실패했지만, 그 시절 함께했던 동업자들과의 우정은 남았다. 새벽까지 싸우고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던 그 기억들이 지금까지도 우리를 이어준다.
요즘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으려 한다. 가끔 시장 근처 허름한 자리에서 옛 추억을 떠올리며 소주 몇 병을 마시기도 하지만, 예전만큼 자주 마시지는 않는다. 음식보다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던 나는 어쩌면 ‘꼰대’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찬바람이 분다. 글을 쓰다 보니 뚝도시장 동태 전집에서 막걸리 한잔이 생각난다. 그러나 이런 추억은 과거로 남기는 게 좋겠다. 나는 지금 맑은 정신으로 살고 있고, 지금의 내가 행복하기에 20년 후의 나는 오늘의 나를 그리워하며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할지 기대해 본다.
“20년 전의 써니, 어떻게 사람이 180도 바뀐 삶을 살았나 모르겠다. 젊어서는 열정을 다해 일했고, 50이 넘어서 부터는 새로운 것을 배우며 꾸준히 성장하고 발전해 지금의 멋진 나로 만들어 줬으니,
고맙다. 사랑한다, 써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