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만에 고객 킥오프로 접대 자리가 있는 날이다. 보통 이런 프로젝트는 SI 업체가 주사업자로 나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사업은 예산이 부족해 우리 회사가 직접 주사업자로서 프로젝트를 이끌게 되었다. 사업 시작을 알리며 관계자들 간의 소통과 협력을 다지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예전에는 이런 자리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모든 참석자와 돌아가며 술잔을 나누며 친목을 다지곤 했다. 한 명 한 명에게 술을 따라주며 정성을 담아 인사를 건네던 그 시간이 떠오른다.
오늘 저녁 식사에 무려 30명의 고객이 참석할 예정이다. 회사 대표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나는 오랜만의 공식적인 만남이라 살짝 긴장되기도 한다. 예전 같았더라면, 참석한 모든 사람과 한 잔씩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하지만 술은 이제 낯선 음식이고 싶다.
진심..
어느 나라를 가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즐겨 먹는 나는 대학 입학 후 OT에서 처음으로 술을 마시게 됐다. 선배들은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채워 돌렸고, 나는 별생각 없이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맛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순간은 새롭고 낯선 경험이었다. 주변의 몇몇 친구들은 술을 먹다 속이 뒤집혀 밖으로 나갔지만, 나는 새벽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때 한 선배가 내게 말했다.
“써니야, 넌 화장실도 안 가니? 내가 본 사람 중에 너만큼 술 잘 마시는 사람은 손에 꼽힌다. 대단해!”
그 말 이후로 나는 과 선배들에게 사랑받는 후배가 되었고, 술은 내게 단순한 음료를 넘어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처음 맛본 진로 소주는 마치 물 같았지만, 이후 술맛은 음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어떤 날은 달콤했고, 또 어떤 날은 쓰디썼지만, 술은 언제나 밥과 함께하는 든든한 친구였다.
과 모임, 향우회, 자취방 파티 등 어느 자리에서든 술은 나와 함께했고, 소개팅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첫 만남의 장소가 술집인 경우가 많았는데, 상대 남자가 먼저 취해버려 내가 그를 집에 데려다준 적도 있었다. 이 때문에 연애는커녕 좋은 술친구로 남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편, 나는 대학 시절 기독교 동아리인 CCC에 들어갔다. 사실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기타 치는 잘생긴 선배에게 반해 들어간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관심은 여전히 ‘주님’보다 술‘주님’에 있었다. 동아리 선후배들은 새벽마다 캠퍼스 동상 앞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며 말했다.
“우리 써니 자매가 하나님을 만나 술을 끊고 새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멘.”
그들의 진심 어린 기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술을 찾았다. 결국 미안함에 동아리를 떠났지만, 그때 나를 위해 기도해 주던 친구들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이후 IT업계에서 2개월간 인턴으로 일하며 술과 더욱 가까워졌다. 아침에는 모닝주, 점심에는 국밥에 소주 반주, 저녁엔 진정 술자리....영업부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써니야, 다른 회사 가지 말고 우리랑 같이 일 하자. 너처럼 술 잘 먹고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면 최고의 영업인이 될 거야.”
술과 사람을 좋아했던 나는 영업사원이 되었고, 29년 동안, 한 길을 걸어오며 내 인생과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그동안 안 마셔본 술이 없었다. 그러나 유독 싫어하는 술이 하나 있다면 위스키다. 위스키는 보통 3차에서 단란한 곳에서 마시는 술로, 끝없는 파도처럼 마셔야 했기에 그다음 날이면 속이 뒤집어졌다.
얼마 전, 대학로의 위스키 바에 가서 젊은이들처럼 위스키를 음미해 보려 했지만, 결국 과거의 기억과 함께 미식거림만 남았다. 나와 위스키는 끝내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요즘 들어 술맛이 예전 같지 않다. 술을 마시면 머리가 아프고 즐겁기보다는 공허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한때 술은 내 최고의 음식이자 친구였지만, 이제는 그 총량의 끝에 다다른 것 같다.
지금까지 나에게 최고의 맛과 소중한 추억을 선사해 준 술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채워준 반가운 동반자였으니 말이다.